<지난호에 이어서>
“‘행복한 집 연극단’에서 공연하겠다면 언제든지 초청하겠습니다.” 

건물 창문마다 나환자들이 손 흔들고 있을 때, 병원장이 정문까지 따라 나와 작별 인사로 마리아에게 말했다.

연두색 미니버스가 서울로 가기 위해 병원을 출발했을 때 서쪽 바다에서는 수평선으로 붉은 해가 커다랗게 가라앉고 있었다.

“많이 늦었구나. 새벽이나 돼야 도착하겠어.” 

원장은 곧 밤길이 될 운전이 걱정되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얀 파도가 좋기만 했다.

“모두 안전띠 잘 맸어?” 

섬을 벗어날 때쯤 원장이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며 우회전으로 소록도 대교로 올라섰다.

“엄마, 웬 까치와 까마귀들이 이렇게 많이 쓰러져 있죠?”

“그러게 말이다. 별일도 다 많구나.” 

은교가 놀란 목소리로 말하자, 원장은 깔려 있는 새들을 피해가며 천천히 운전했다.

소록도 대교 끝까지 미니버스 한 대 겨우 지나갈 공간만 나있고 온통 쓰러져 있는 까치와 까마귀들로 빈틈이 없었다. 소록도 대교를 거의 중간쯤 지났을 때는 저녁 해가 수평선 너머 바닷속으로 거의 잠기고 어둠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 갈매기를 구하다
차 안에는 아이들이 무서워하며 몸을 푹 숙이고 엎드려 있을 뿐,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차가 조심조심 다리를 벗어나고 있을 때 오른쪽 난간에서 수리부엉이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갈매기가 보였다. 그냥 두면 갈매기가 죽을 것 같았다.

“엄마, 차 좀 잠깐 세워 주세요.”

“그냥 가는 게 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원장은 차를 세웠다. 기분 나쁜 분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은교와 같은 마음이었다.

“저리 가지 못해! 갈매기를 괴롭히지 마.” 

은교가 미니버스에서 내려 수리부엉이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애꾸눈인 수리부엉이는 갈매기를 툭 차버리고 은교에게 관심을 보이며 몇 걸음 다가왔다. 은교는 예감이 좋지 않아 돌아가려고 차를 향해 뛰었다.

“부엉부엉!” 

수리부엉이가 날아올라 미니버스 지붕 위에 가 앉아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그것은 신호였다. 쓰러져 있던 까치와 까마귀가 모두 날아올라 미니버스를 덮쳤다.

“무서워.”

“으앙~” 

문이 열려 있었다면 차 안도 새들의 공격으로 가득찰 뻔했다.

“다 죽여 버리겠어.” 

애꾸눈 수리부엉이가 운전석 옆 창문에 달라붙어 살기등등한 악귀 모습처럼 협박하였다.

“엄마, 빨리 달아나!” 

차 밖에서 은교 목소리가 들리는데 볼 수가 없었다. 사방으로 까치와 까마귀가 빽빽이 달라붙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창문이 조금씩 깨지고 있었다.

“안 돼, 애들을 살려야 돼.” 

원장은 두려움에 떨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언제 창문이 열리고 저 놈들에게 아이들이 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원장은 앞 유리 와이퍼를 움직이게 했다. 와이퍼가 움직이는 자리만 내다보였다. 원장은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며 차를 움직이려 했다. 은교에게 가려 한 것이다.

“빨리 안 꺼지면 이 차안에 애들 다 죽여 버린다.” 

깨진 유리 틈으로 주둥이를 들이대고 수리부엉이가 잔인하게 말했다.

“이 나쁜 놈!” 

마리아는 옆에 놓여 있던 성경책으로 수리부엉이 주둥이를 후려갈겼다.

“악, 내 코!” 

바닥에 나가떨어진 애꾸부엉이가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러 댔다.

“싹 다 죽여!”

“쨍!”

“엄마! 살려 줘.” 

뒷좌석 쪽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 비명 소리가 들렸다.

“엄마 눈에는 은교밖에 없냐구!” 

뒤에서 중학생 아이들이 어린 동생들을 껴안고 울부짖었다.

“빨리 도망가란 말이야!” 

밖에서는 은교가 애절하게 말하고 있었다. 원장은 눈물을 씹고 있었다.

“은교야, 이 엄마를 용서하지 마.” 

쌩! 차는 급출발하여 달렸다. 원장은 전속력으로 차를 몰았다. 새카맣게 달라붙어 있던 까치와 까마귀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갔다. 어느 길을 가는지도 모르고 사투를 벌이며 달리다 담양경찰서 앞에 멈추었을 때는 새들이 한 마리도 붙어 있지 않았다.

“무슨 말씀하시는지 못 알아듣겠네요?”

“얘들도 똑같이 이상한 소리만 하네.”

“단체로 정신 병원 탈출한 거 아니야?” 

마리아 원장과 아이들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경찰들은 믿지 않았다. 무슨 새들이 떼를 지어 사람들을 죽이려고 습격하느냐는 것이다. 부엉이가 사람 말로 협박했다고 하자 말도 안 되는 장난치냐고 화를 냈다.

“할머니 말동무해 드릴 시간 없으니까 가세요.” 

경찰서는 이런 저런 사람들과 말씨름하느라 많이 바빠 보였다.

“얘들아, 너희들도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모시고 가.” 

경찰들은 ‘행복한 집’식구들을 경찰서 밖으로 밀어냈다. 원장은 말이 통하지 않자, 은교를 구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몇 시간 정도 나타나지 않은 아이를 누가 실종 신고합니까?” 

무슨 말을 해도 귀찮아 할 뿐 누구 하나 들어 주지 않았다. 순천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를 했어도 마찬가지였다. 

“왜 남의 동네까지 오셔서 장난치세요?” 

밤길을 잘못 들어 경상도 함양 경찰서까지 가서 신고를 했는데 공무집행 방해죄로 몰릴 뻔했다. ‘행복한 집’ 식구들을 실은 미니버스는 밤새 경찰서를 전전하고 있었다.

“은교야!” 

마리아 원장의 가슴 찢어지는 슬픔이 어디서도 도움 받지 못하고 있었다.

■ 무전 여행자
까치와 까마귀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은 미니버스가 달려가자, 은교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새들을 두 팔로 휘저으며 떼어내려고 애를 썼다.

“그만해, 멍청이들아.” 

애꾸눈 수리부엉이가 소리 지르자 새들은 물러섰다. 그러자 시커먼 차가 여러 대 나타나더니 우주 해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네 이름이 데네브냐?” 

키드라의 행동대장이 물었다.

“제 이름은 은교예요. 우리 식구들에게 왜 그러세요?” 

은교는 떨리는 목소리지만 당당하게 따졌다.

“어이, 여섯그만. 얘가 이름을 왜 이렇게 대답하니?” 

퍽! 행동대장은 오른쪽에 있던 애꾸부엉이의 명치를 불시에 가격했다.

“허억, 은교가 데데데네브입니다.”

“호오, 이름도 숨기고 제법이구나. 내가 어떤 악당인지 알려 줄까?”  

짜작! 이번에는 왼쪽에 있는 도래까마귀 양 빰을 후렸다.

“제 잘못입니다.” 

도래까마귀는 빰을 맞고도 구십도로 고개 숙이며 말했다.

“가자.” 

행동대장은 그렇게 말하고 맨 앞의 시커먼 차에 올라탔다.

“나는 데네브가 아니라 은교란 말이에요!” 

그렇게 소리쳤지만 부하들이 은교를 두 번째 차에 강제로 태웠다. 남은 해적들도 각각의 차에 올라타고 마지막으로 타는 해적이 무엇인가를 내려놓자 시커먼 차들이 모두 출발했다.

“형님, 저 가시내가 뭔데 이 난리 블루스입니까요?” 

스노에게 부하들을 많이 잃은 소록도 까마귀들의 두목인 도래까마귀가 물었다.

“곰탱아, 너무 많은 것을 알면 다친다. 저걸로 남은 놈들 고기 좀 먹여. 가끔 내가 부르면 오늘처럼 무조건 충성해. 그게 내가 너에게 내리는 은총이야.” 

여섯그만은 마지막 해적이 내려놓고 간 물건을 가리키며 말했다.

‘또스또스’ 

여섯그만의 발톱에서 작은 불빛이 깜박이더니 소리가 났다.

“야, 임마. 빨리 안 따라와!” 

행동대장의 목소리였다. 여섯그만은 낮에 수원으로 올라가다 키드라 행동대장을 만나 다시 내려온 것이다.

“아 예, 갑니다. 얘들아, 가자!” 

여섯그만이 황급히 시커먼 차 일행을 뒤따라가기 위해 날갯짓하자, 살아남은 까치들도 모두 뒤따라 날아갔다.

“얘들아, 우리도 그 고깃덩이나 끌고 가자.” 

곰탱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고 다리 건너 소록도로 가려고 날개를 폈다.

“잠깐!” 

날아오르려고 하는 곰탱이의 한 쪽 날개를 밟는 발이 있었다.

“나 너한테 아직 볼 일이 있는데.” 

스노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노는 낮에 까치와 까마귀들과 키드라 해적들이 소록도 다리를 넘지 못하도록 전투를 해서 그들을 물리쳤다. 그래서 은교가 ‘행복한 집’ 식구들과 함께 안전하게 소록도 병원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해적 패거리들이 모두 도망친 것으로 알고 바이오껌을 받으러 우주 경비선으로 올라갔는데 시리우스가 물어보는 것이 많아서 금방 못 내려온 것이었다. 내려와 보니 은교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데네브 누나 어디로 갔어?”

“은교라고 하던데.”

“그래, 은교 누나 어디로 갔어? 모른다는 말만 하지 마.” 

곰탱이가 말은 못하고 북쪽으로 난 길과 스노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자존심이 부하들 앞에서 밀고자가 되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다.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스노는 북쪽으로 날아갔다.

“짜식, 내가 그렇게 쉽사리 가르쳐 줄 것 같아. 얘들아, 양아치도 모름지기 체통이 있는기라. 등급이 있다 그런 야그지. 나 먼저 가마.” 

곰탱이는 깃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는 소록도로 날아갔다. 이어서 까마귀 떼가 섬으로 날아갔다.

밤안개가 깔리고 있는 소록도 대교에는 달빛이 무전 여행자처럼 희미하게 건너가고 있었다.
“저기 가는 걸까?” 

빠른 비행으로 북쪽 하늘을 날던 스노가 밤안개 속을 이동하는 까치 떼를 발견한 것이다. 스노는 조금 더 내려갔다.

“어이, 애꾸눈. 물어볼 게 있는데 대답해 줄래?”

“스노놈이다. 공격해.” 

달빛 속에서 공중전이 벌어졌다. 어린 유니콘의 전투 능력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탁월해지고 있었다. 회오리로 돌며 까치들을 어지러움 속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폭포수처럼 다이빙하며 적들을 무찔러가기도 했다.

“행동대장님, 스노놈을 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바보 같은 놈!” 

여섯그만이 보고하자, 검은 차들에서 일제히 광선총을 쏘아댔다. 그것은 스노에게만 위치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 높이 떠 있는 우주 경비선에도 해적들의 위치를 노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노가 위험하니까 엄호해.”

“알겠습니다.” 

Nn11과 Nn12가 전투 비행선을 타고 출동하였다. 두 전사는 알마크 우주 군단 사령관이 파견한 최고의 용사였다.

“1차는 뒤앞 2차는 좌우 3차는 하상으로 공격한다.” 

두 전사의 비행쇼는 광선총 한 번 쏘지 않는데도 해적들이 스노를 공격하다 말고 넋이 나갈 정도였다. 총을 쏘지 않는 이유는 데네브가 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고고!” 

비행선이 그대로 차와 충돌할 듯이 낮게 날아들 때마다 시커먼 차 안에 있던 해적들은 창밖으로 몸을 던지며 탈출하기 바빴다.

“콰과광!” 

도주하던 차들이 저희들끼리 부딪치고 구르고 폭파되었다. 두 전사는 차들이 겁먹고 정지할 줄 알았는데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안 돼!” 

스노가 소리치며 땅으로 내려갔다. 폭파되는 차들마다 뒤지며 날아다녔다. 불 붙고 있는 두 번째 차 안에 쓰러져 있는 은교를 발견했다. 스노는 재빨리 꺼내어 날아올랐다.

“펑!” 

간발의 차이로 두 번째 차가 폭발하며 화염이 솟구쳤다. 

“아직 살아 있구나. 어디로 가지?” 

스노는 은교를 안고 기드로온에게 가야 할지, 시리우스에게 가야 할지 판단을 못하고 허공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피윳!”

“아.” 

차를 버리고 숲 속으로 도망치던 행동대장이 스노가 은교를 안고 있는 허공을 향해  광선총을 쏜 것이다. 그 광선을 스노가 맞은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저작권자 © 서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