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스노야, 올라오렴.” 

시리우스가 애기 부르듯 부드럽게 불렀다.

“맛있는 거 주려나보다.” 

스노는 쌩하고 우주 경비선으로 들어갔다.

“빨리 줘, 은교를 지켜야 해.”

“은교가 누구야?” 

시리우스는 스노가 좋아하는 바이오껌을 주려다 말고 물었다.

“몰라, 빨리 줘. 급해.”

“가르쳐 주면 줄게.”

“아이, 빨리 가 봐야 되는데” 

스노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자 시리우스는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궜다.

“스노야, 잘 들어. 네가 남쪽으로 갈 때 수원에서 해적들이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어. 여기를 봐. 그들이 남원까지 내려갔어.”

“교수 이모, 나 좀 내 보내 줘. 데네브 누나가 위험해.”

“데네브라고 했니?”

“아니, 은교가 위험해.” 

시리우스는 긴장하는 모습으로 스노를 바라보았다. 그 때 우주 국경 수색대장 알테어가 화상 대화를 신청해 왔다.

“웬일이지?”

“교수님, 오르트가 우리 은하 국경 가까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주 협곡을 통과할 때 태양계를 습격할 것이라는 정보입니다.” 

시리우스는 목이 탔다. 물을 한 컵 마신 후 화상 앞으로 돌아왔다. 오르트의 습격은 풀 한 포기의 뿌리까지 남겨 두지 않을 만큼 공세가 사막의 폭풍 같았다.

“카니스 의장은 알고 있어?”

“아시잖습니까? 우주 군단 출동 명령서를 재가 받을 때쯤이면 모든 상황은 종료될 지도 모릅니다.”

카니스의 의장 자리를 만들어 주다시피 한 시리우스는 후회하고 있었다. 카니스는 태양계가 초토화된다 해도 원인 분석 보고서 한 페이지 더 작성해야 하는 것에 골머리 앓을 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편향적이지 않은 이유가 탁월한 균형 감각으로 알았는데 덩치만큼이나 굼뜬 게으름이 외형적으로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딸깍.”

“어? 스노야. 잠깐 기다려!” 

시리우스가 알테어와 화상 대화에 집중하고 있을 때, 스노가 문을 열고 뛰어나간 것이었다. 스노는 벌써 저 아래 순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알마크 대총독에게는 보고되었겠지?”

“우주 군단을 움직이려 하는데 재가가 나지 않아 답답해하고 계십니다.” 시리우스의 시선은 스노에게서 떠나있었다. 우주에 밀어 닥칠 대재앙을 걱정하고 있었다.

“알테어, 수시로 상황을 나에게 알려줘.”

“네, 교수님.” 우주 국경 수색대장과 대화를 마치자, 카니스가 화상을 요청했다.

“시리우스, 지난번에 보내 준 1급 기밀 표시 자료를 다시 보내 주시오. 이게 어디 갔지?” 

카니스가 책상과 휴지통을 뒤지고 있었다. 보나마나 중간 보고서를 통째로 아무데나 쑤셔 넣고 못 찾은 것이 분명했다.

“다른 자료는 있어요?”

“아, 그것만 빨리 주시오. 사인해서 그것부터 아틀란티스에 보관하게 할 거요.” 
시리우스 입에서 격한 말이 나올 뻔했다. 카니스는 오르트를 제압할 방법을 궁리하기보다 성체 성운으로부터 문책 받지 않으려고 했다. 가장 먼저 1급 기밀 표시를 안전하게 우주 박물관인 아틀란티스별에 옮겨놓는 일을 통과시키려는 것이었다. 태양계의 별들이 초토화되고 지구의 모든 생명이 한줌 흙으로 모래사막이 된다 해도 카니스에게는 성체 성운의 눈치 보는 일이 더 급한 것 같았다.

“중간 보고서를 지난번과 동일하게 보낼 테니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마세요.”

“알았어요. 교수는 지구에 가서도 잔소리가 여전하오. 허허” 

카니스가 들어간 뒤 시리우스는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더 마셔 댔다. 

“Nn11, 알마크 대총독에게 화상 요청해 줘.”

“예, 알겠습니다.” 

시리우스는 두통이 오는지 지압을 하며 심호흡을 했다.

“교수, 나 알마크요.”

“대총독님, 성하의 재가를 받고 군단을 움직이시면 태양계는 우주에서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찌 하기를 바라시오.”

“제가 대총독님이라면 사후 재가를 받겠습니다.” 

시리우스의 청을 받고 알마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소.” 

알마크의 대답이 잠시 주춤했던 것은 대총독과 우주 군단 총사령관으로서 사령장을 받을 때 성체 성운의 사전 재가 없이는 우주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결정과 행동도 하지 않기로 서약했던 것이다.

‘대총독께서는 총사령관으로서 우주를 지켜 주세요. 대신 나는 당신의 아들을 지켜 줄게요.’ 

시리우스는 마음속으로 알마크에게 약속했다.

“또 연락합시다.” 

둘이 짧게 주고받는 끝말 속의 핵심은 기드로온 왕자라는 것을 교감하며 화상 대화를 마쳤다.

“Nn11, 서울의 움직임은 어때?”

“하델 해적들이 그동안은 고아원들 주위에만 있었는데 지금은 서대문 초등학교 빈 교실에도 모여 있습니다.”

“그곳이 아지트 같으니까 그들의 움직임을 수시로 나에게 말해 줘.”

“Nn12, 수원에서 떠난 키드라 해적들이 어디까지 갔어?”

“남쪽으로 움직이는 해적들은 순창과 순천의 중간쯤 내려가고 있고, 대부분의 병력은 아직 팔달산 동굴 속에 집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면 말해 줘.” 

시리우스는 두 우주 전사에게 지시한 다음 팔짱을 끼고 우주 경비선 안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며 묘안을 찾느라 골몰했다. 그러더니 지나간 영상 자료들을 재편집해 가며 서울과 수원을 중심으로 점들을 수없이 찍고 점을 따라 선을 그어댔다.

“모여 봐.” 

시리우스가 부르자. 두 전사가 가까이 왔다.

“계속 반복되는 위치로 그어지는 선들을 눈여겨 봐. 여기 A라는 곳과 B라는 두 곳이 무슨 관련이 있는 것 같아.”

“그렇군요. A라는 곳은 전에 우리도 한 번 갔었던 스노가 자주 가는 고아원입니다.”

“B에서 A로 그어지는 점의 이동이 누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각자 A와 B를 중심으로 셋이서 분석에 들어갔다. 한 시간 뒤 다시 모였다.

“B에서 A로 오고가는 사람은 열두세 살쯤 되는 눈빛보석이라는 남자아이입니다.”

“눈빛보석이라는 아이가 A에서 만나는 여자아이가 있는데 열두세 살쯤 되어 보이고 이름이 은교라고 합니다.”

“은교?” 

조금 전 스노가 횡설수설하던 것을 떠올리며 시리우스의 눈이 빛났다. 목소리가 짧고 강한 에너지로 발음되어 나왔다.

“스노가 지금 어디 있는지 빨리 살펴 줘.”

“소록도에 있습니다.” 

시리우스는 스노가 은교를 왜 지키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키드라 해적들이 은교를 왜 뒤쫓는지 예측하는 것이 매우 간단해졌다.

은교가 데네브라면 눈빛보석이 어쩌면 기드로온 왕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전류의 끝선처럼 시리우스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Nn12는 눈빛보석의 영상 자료를 모아 주고, Nn11은 은교의 영상 자료를 모아 줘.” 

시리우스는 갑자기 밀려드는 실마리들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B는 팔달문이라고 하는 성문인데, 눈빛보석은 그곳에서 다른 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아이입니다.”

“은교는 지금 ‘행복한 집’이라는 고아원 식구들과 다같이 연극 공연을 하러 소록도에 가 있습니다.” 

막상 자료들을 분석하고 조합하다보니 판단이 쉽지 않았다. 저 아이들이 기드로온 왕자와 데네브라면 지금이라도 데리고 우주로 나가겠지만 이제 발견한 정황들이 가능성을 가진 추측에 불과할 뿐이었다. 어쩌면 확실하지 않은 가장 어려운 방법으로 확인해야 하니 답답했다. 

설령, 두 아이가 기드로온과 데네브가 맞다 해도 기드로온은 자신이 왕자인 것을 숨겨야 하고, 은교는 자신이 데네브라는 것을 모르는데 저들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안타까웠다. 둘 중 하나라도 알아볼 수 있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는데 기드로온도 은교가 데네브라고 믿지 않고 있었다. 종종 착각한다며 자책하고 있을 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데네브와 기드로온으로 찾는 것은 아니지만 둘이 은교와 눈빛보석으로 서로 하나의 마음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수님, 스노가 까치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 녀석이 유니콘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려나 까치와 싸우고 다녀?” 

시리우스가 스노를 확대해 보니 소록도 대교라고 쓴 다리 위에서 스노가 이삼백 마리 까치 떼와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까치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까마귀까지 합세하고 있었다. 까치와 까마귀 여러 마리가 피라니아 식인 물고기 떼처럼 스노에게 달려들며 시야를 가리면 숨어 있던 해적들이 다리를 건너려고 전진하고, 스노가 까치와 까마귀들의 쑤세미 같은 포위를 무너뜨리면 광선총을 쏘아대며 다시 숨는 작전에 휘말리고 있었다.

소록도 대교 바닥에는 까치와 까마귀들이 스노에게 달라붙다 수없이 차여서 가을날 은행잎 쌓이듯이 여기저기 투두둑투두둑 떨어지면서도 어디서 날아오는지 자꾸 몰려왔다.

그 시간, 소록도 병원 대강당에서는 ‘행복한 집 연극단’이 나환자들 앞에서 한참 공연을 재미있게 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방귀 뀌기 대회

“와하하하.”

“방귀 뿡!” 

무대에서는 ‘방귀쟁이 며느리’가 공연되고 있었다. 방에서 시아버지가 문 열고 나오고, 시어머니는 솥뚜껑을 들고 있고, 아들이 울타리 문으로 나뭇짐을 지고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며늘아가, 얘가 또 어디 갔담?”

“예, 어머니 뒷간에 좀 다녀오느라고.” 

무대 왼쪽에서 며느리가 종종 걸음으로 나왔다.

“뒷간 출입이 잦구나?”

“아부지 눈치 보느라 방귀를 뒷간 가서 뀌느라 그래유.” 

아들이 며느리 대신 대답을 했다.

“아가야, 내 눈치 보지 말고 아무데서나 시원하게 뀌거라.”

“참말이유? 그럼.” 

시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며느리가 엉덩이를 쭉 빼고 돌아섰다.

“뿌우웅~!” 

며느리가 방귀를 뀌는데 효과음을 내어 소리를 크게 냈다.

“영감!” 

시어머니가 솥뚜껑을 안고 날려가는 시늉을 하며 무대 오른쪽으로 사라지고,

“마누라!” 

시아버지는 문짝을 안고 시어머니 뒤따라 날려갔고, 

“여보!” 

아들은 나뭇짐을 진 채 날려가는 시늉을 하며 사라지고 있었다.

”서방님~!“ 

그러자 방귀를 뀌고 있던 며느리가 아들을 붙잡으려고 오른쪽으로 촐랑촐랑 사라졌다.

“와하하하. 웃겨.” 

관객들인 나환자들이 문둥이라는 자신의 모습을 잊은 듯 구김 없이 웃고 좋아했다. 무대가 어두워지다가 다시 밝아지며 장면이 바뀌었다.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오른쪽 무대에서 아들과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뛰어나와 허둥지둥 왼쪽 무대 쪽으로 도망치고, 뒤를 쫓아 무기 든 오랑캐 군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왼쪽 무대에서 방귀쟁이 며느리가 나오는데 도망치던 가족들이 달려와 며느리 뒤에 숨었다. 그러자 며느리가 엉덩이를 오른쪽으로 쭉 뺐다.

“에잇, 방귀 폭탄 받아랏! 뿌뿌뿌뿌우우웅!”

“우악 냄새. 아푸아푸 똥보다 더럽다. 인간 스컹크다. 으아아아, 오랑캐 살려~” 

오랑캐들은 며느리 방귀에 엎어지고 자빠지고, 코를 쥔 채 도망치느라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이고 웃긴다. 배꼽 빠지겠네.” 

나환자 관객들은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깔깔댔다. 다시 무대가 어두워졌다 밝아지며, 현수막이 걸렸다.

‘임금님배 쟁탈 방귀뀌기 대회’

“험험험, 내가 왕이니까 제일 먼저 뀌겠다. 뽕!” 

임금이 웃기느라 품위 없게 뀌자, 신하 역할을 맡은 아이들이 줄줄이 엉덩이를 실룩 대며 나와서 방귀들을 뀌어 댔다.

“뿡, 빵, 삥, 뽕, 퐁, 뿌웅, 픽!” 

막내도 아장아장 걸어와 “뽀옹~” 끼었다.

갖가지 방귀 종류를 뀌어 대자 웃느라 난장판이 되었다.

“여러분도 방귀 대회에 참가해 주십시오.” 

방귀쟁이 며느리 역을 맡은 은교가 마이크를 잡더니, 나환자들을 향해 즉석 제의를 하였다.
처음에는 멈칫멈칫하던 나환자들이 한두 사람이 용기 내어 나오니까 많은 사람이 무대 가까이로 나와 방귀 뀌는 놀이에 참여하며 훌륭한 방귀뀌기 축제 마당이 되었다.

“누가 진짜로 방귀를 뀐 거야? 아 냄새!” 

소록도 공연은 흥에 겨운 나머지 예정 시간을 훨씬 넘겨 끝이 났다.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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