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으앗!” 

Nn11과 Nn12가 키드라의 행동대장을 발견하고 광선총을 퍼부어 사살했다. 그 사이 은교를 안은 스노가 숲 속으로 추락했다. 어둠 속이라도 흰 유니콘은 발광체가 있어 쉽게 찾아 Nn11이 우주 경비선으로 급히 옮겼다. 그러나 Nn12가 적외선 투시기까지 이용하여 살폈지만 떨어지며 어디로 굴렀는지 은교를 찾지 못했다.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어.” 

시리우스가 스노의 상처를 응급처치하며 말하자, 두 전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주에서 천 년에 한 번 태어나는 유니콘을 잃었더라면 지키지 못한 불명예를 평생 가지고 살 뻔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은교라는 여자아이를 꼭 찾아야 할 것 같은데.”

“다시 내려가 찾아보겠습니다.” 

Nn12가 땅으로 내려가려 했다.

“아니야, 스노는 안정만 취하면 깨어날 거야. 내가 내려갔다올게.” 

시리우스는 작은 탐사선을 타고 숲 속으로 내려갔다. 스노가 추락한 지점에서 흙과 풀들의 성분과 공기 조합의 변화를 역으로 계산하였다.

“이쪽으로 굴렀어.” 

시리우스는 비탈을 살피며 내려왔다. 휘어진 도로가에 쓰러져 있는 은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데네브와 많이 닮았어.” 

시리우스는 우선 체온을 유지시켜 주고 응급 치료를 했다.

“생명은 되살려 놓았는데,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 어렵겠어.” 

시리우스는 은교를 탐사선으로 옮기려다 멈췄다. 작은 돌을 가운데손가락 손톱 위에 올려놓고 튕겼다.

“아얏!” 

낙엽송 꼭대기에서 시리우스를 내려다보던 새 한 마리가 나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애꾸눈 수리부엉이었다. 작은 돌 하나를 맞고 왼쪽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한 쪽 다리를 끌며 겨우 퍼드덕퍼드덕 도망치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혹시나 해서 적외선 감지기와 망원경으로 주위를 살폈다.

‘이 쪽으로 오고 있어. 너무 가깝다.’ 

은교를 조금 더 안전한 곳에 눕혀놓은 시리우스는 탐사선의 등을 끄고 도로 반대편에서 돌을 굴리며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모퉁이까지 다 왔던 해적들이 소리를 따라 몰려 내려갔다.

“부릉부릉.” 

잠시 후, 휘어진 도로에 자동차 한 대가 덜덜거리며 오고 있었다.

“끼익!” 

차가 멈추더니 시동을 끄고 손전등을 비추며 스님이 내렸다. 보닛을 열어 살펴보고 운전석에서 물병을 가져와 냉각수로 채우고 다시 닫았다.

“사람 같은데?” 

운전석 문을 열고 타려다 말고 달빛에 어른거리는 모습을 발견하고 다가가 손전등을 비췄다.

“너 은교가 아니냐?" 

누워 있는 은교를 알아본 스님은 범진이었다. 범진은 놀란 눈으로 은교의 맥을 짚고 살피더니 들춰 업고 차에 태웠다. 차 안에 있던 쿠션과 담요로 편안하게 눕히고 안전벨트까지 확인한 다음 출발했다. 차는 덜덜거리며 휘어진 도로를 돌아 남원을 지나가고 있었다.

“없어졌어?” 

시리우스가 해적들을 따돌리고 돌아왔을 때는 범진이 은교를 차에 태우고 떠난 뒤였다. 탐사선을 타고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공기의 조합을 계산하기 어려웠다.

“은교라는 아이를 아무도 살피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나?” 

Nn11과 Nn12가 시리우스에게 질책 받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두 전사는 시리우스가 해적들을 따돌릴 때 해적들이 시리우스를 공격할 것을 염려해 그곳만 추적하고 있었다.

“끄응.” 그때 스노가 깨어나고 있었다.

간이의자

“왜 안 나타나, 왜?” 

하델 해적의 2인자가 등나무 아치문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이다. ‘행복한 집’ 주변에서 이천이 넘어 보이는 하델 해적의 그림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구인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구에 와 있는 하델의 부하들이 이곳으로 총집결한 것이다.

“어쩌면 내일 나타날 수도 있겠습지요.” 

2인자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왕눈깔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너 또 눈탱이 밤탱이 만들어 줄까? 그걸 말이라고 해? 지금 당장 잡고 싶단 말이야! 지금 당장!” 

2인자는 오전에 왕눈깔로부터 도청 내용을 보고 받자마자 이곳으로 병력을 모두 이동시켜 놓고 진을 친 것이다. 어느덧 오후 해가 기울며 서대문 언덕을 넘고 있었다.

“저어.”

“이건 또 뭐야. 화장실 가고 싶어? 더듬지 말고 말해!” 

퍽! 

우물쭈물 말하려던 부하가 2인자의 앞발에 차이며 나뒹굴어졌다. 그러자 2인자는 무지막지하게 짓밟으려 했다.

“저어, 수녀를 잡아서.” 

2인자는 짓밟으려던 발을 멈춘 채 물었다.

“수녀를 잡아서 뭐?” 

말 잘못하면 초주검이 될 불쌍한 부하가 덜덜 떨며 말했다.

“왕자가 어디 사느냐고 물으시는게.”

“호오. 하하핫. 으하하핫” 

2인자는 발을 거두고 웃어 제켰다. 영문을 모르는 부하들도 똑같이 웃어주었다. 똑같이 안 웃어주다간 2인자가 퍼붓는 폭력을 고스란히 당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뚝! 2인자가 웃음을 갑자기 멈추자, 부하들도 일시에 멈춘 것이다.

“타타타타타 탁!” 

가까이 도열해 있던 부하들의 머리를 지휘봉으로 연주하듯 지나가며 두드렸다.

“야 이 대가리들아, 이거 뭐가 들어있는 깡통이냐? 여기에 똥만 들었지? 느그들은 왜 그런 생각 못했어. 왜 못했을까?” 

지나가며 때리다 말고 휙 돌아서더니 말했다.

“나한테 맞은 놈들이 가서 잡아와!”

“예옛!” 

잠시 후, ‘행복한 집’ 식구들보다 먼저 서울에 올라온 엘리사벳이 잡혀왔다.

“안녕하쇼, 수녀님. 나는 한 마디만 넘어가면 고통 주는 것을 작품으로 즐기는 행위예술가랍니다.”

“왜 왜 그러시죠?” 

엘리사벳은 두려움에 혼이 나간 표정이었다.

“기드로온 어디 살지요?”

“기드로온이 누구지요?” 

엘리사벳이 되묻자, 순간적으로 2인자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아아 잠깐만이요. 2인자님, 눈빛보석이라고 물으시지요.” 

왕눈깔이 나서서 말했다.

“너 이리와. 네가 수녀야? 네가 왜 말해. 네가 하델군하야? 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해. 이 새키 이거 많이 컸네.” 

퍽퍽퍽! 

2인자는 침을 튀겨가며 왕눈깔을 구타했다.

“야, 2인자! 너 거기서 뭐해?”

“응?” 수신기에서 하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임마, 내 목소리 안 들려!”

“아이고, 군하님. 아니 각하. 부르셨습니까?” 

2인자는 왕눈깔을 때리다 말고 목소리 앞에 납작 엎드렸다.

“너 싸이코지? 너 하라는 건 안 하고 맨날 애들 패는 재미로 시간 때우지?”

“아닙니다. 곧 임무 수행하고 복귀하겠습니다.”

“웃기지마. 너는 앞으로 싸이코라고 부를 거야. 따라해. 싸이코.”

2인자는 죽을상이 되어 따라했다.

“싸이코.”

“하하하하.” 

2인자가 싸이코라고 따라하자 해적별에서는 하델과 20인자들이 웃고. 지구에서는 기립해 있는

2천 명의 해적들이 웃었다.

“넌 해고야, 거기 하모니카 있지? 하모니카가 이제부터 지휘해. 기한은 한 달.”

“각하, 아직 이틀 남았습니다.”

“내 시계로는 오늘이 만료일이야. 이상.” 

하델이 수신기에서 사라지자 2인자는 다시 접속하려고 허둥댔다. 계산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기드로온 왕자를 납치하기로 기한 준 날에서 하델은 하루 전을 말한 것이고, 해고된 2인자는 그 다음 날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 싸이코. 내꺼 가지고 뭐해?” 

하모니카가 다가와 수신기를 압수했다. 조금 전에 말 더듬다가 짓밟힐 뻔한 뻐드렁니가 심한 부하였다. 하모니카라는 별명도 뻐드렁니로 하모니카를 잘 불었기 때문에 얻은 것이다. 
퍽! 하모니카는 당한 대로 해고된 2인자를 앞발로 차서 자빠뜨렸다. 그리고 짓밟는 시늉까지 흉내내며 말했다.

“얘들아, 이 싸이코에게 할 말 있으면 회포 좀 풀어.” 

왕눈깔이 가장 먼저 해고된 2인자에게 달려들어 할키고 쪼았다. 그러자 안 당한 부하가 없는지 모두가 달려들어 그동안 당한 분풀이를 해 댔다. 싸이코는 성한 곳이 없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내던져졌다.

“위치로!” 

이천이 넘는 하델의 부하들은 다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오와 열을 맞추었다. 새로운 해적 지휘관된 하모니카는 간이의자를 가져와 앉더니 점잖게 말했다.

“싸이코처럼은 안 하지만 나도 악당입니다. 그러니 두 번 묻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예예.” 

조금 전 해적들이 하는 것을 본 엘리사벳은 어떤 질문에도 순순히 답할 것처럼 보였다.

“눈빛보석은 어디 삽니까?” 

엘리사벳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눈빛보석은 자신이 유일하게 마음으로 아껴 주는 아이였던 것이다. 이들이 누구인지 몰라도 눈빛보석에게 나쁜 짓할 것이 분명한데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허. 여생을 바꾸시겠습니까?”

“잠잠깐만요.” 

하모니카의 억양이 달라지자 엘리사벳은 질겁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수녀원장이 되는 꿈을 안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베리따스 수녀 회장을 맡게 되어 그 꿈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는데 이 자가 목숨까지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안 되겠다.” 

하모니카는 간이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냉정한 어투로 명령했다.

“얘야, 훌륭한 수녀님이시다. 고통 없이 보내 드려라.” 

그러자 독주사기를 든 부하가 다가와 엘리사벳의 팔을 잡았다.

“수원성이에요.” 

엘리사벳의 말과 동시에 하모니카는 손짓으로 독주사를 중지시켰다.

“흑흑흑.” 

엘리사벳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어 울었다.

“수녀님을 성당까지 정중히 모셔라.” 

몇 몇 부하가 동행하려 하자, 엘리사벳은 혼자 가겠다고 말했다. 빽빽하게 서 있는 해적들이 길을 터주는 사이로 쓰러질 듯 걸어갔다.

“왕눈깔, 안내해.”

왕눈깔은 하모니카의 명령을 받고 남쪽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모두 수원성으로 간다!” 

하모니카가 입 밖으로 나온 뻐드렁니를 한껏 드러내며 해적들을 향해 소리쳤다. 2천 명이 넘는 해적들이 발을 맞춰가며 남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은교가 생각나면 날수록 데네브가 더욱 더 생각났고, 데네브를 생각하고 있는데도 은교의 모습이 떠올라 혼란스러웠다. 눈빛보석은 걷다말고 서서 머리를 흔들었다.

“눈빛보석, 왜 그래?” 

백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 많이 걸었지? 내 등에 탈래?” 

오늘은 아침부터 은교의 모습이 떠올라 눈빛보석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데네브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그의 가슴을 더욱 짓눌렀다. 서대문은 여러 날 샅샅이 살펴서 안 가 본 곳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은 곳인 수원성 서문 쪽으로 가서 저녁이 될 때까지 골목과 마주치는 사람들을 빠짐없이 살폈다.

‘이제 데네브를 어디서 찾지?’ 

눈빛보석의 얼굴에는 절망감마저 보였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 속에서 오른손이 조약돌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데네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조약돌에서 손을 떼려고 하였다. 

“은교가 나를 부르고 있어.” 

조약돌에서 은교가 손톱으로 긁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오고 있었다.

“은교가 부르다니? 여기는 수원이야.” 

백구가 의아해 하며 주변에 은교가 왔나 하고 두리번거리다 물었다.

“백구야, 나 좀 태우고 급히 은교에게 가 줄래?”

“응? 알았어.”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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