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지원에 포함되도록 시에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한금정 수원특례시 가두 구두수선협회 총회장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반도체를 필두로 한 수출강국, K-POP과 한류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문화강국 등. 준선진국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어려운 상황 속에 부딪혔을 때도 꿋꿋하게 극복해낸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이를 발판으로 우리나라는 각종 악재 속에서도 당당히 강소국으로써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발전 속에서도 여전히 힘들고 사정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이 우리 사회 내에 여전히 많이 존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얼마 전 수원 권선구에서 세 모녀가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들은 국가나 지자체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다 극단적인 선택을 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인 한금정 수원시 가두 구두수선협회 회장은 전라남도 보성 출신으로 생전에 아버지를 뵙지도 못하고 어머님은 몸이 불편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일찍부터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기 위해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수원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동생의 권유로 상경해 은사의 도움으로 구두수선업에 뛰어들게 된 그는 매일 쉬지 않고 일 해오면서 잡초처럼 힘들지만 꿋꿋하게 버텨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래 구두수선업의 사정이 좋지 않아 걱정이 크다고 전했는데, 한 구두수선협회 회장은 “구두수선을 하시는 분들 모두가 매우 힘들고 그중 절반은 월 100만 원도 벌기 힘들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며, “시나 여러 단체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해줄 수 없다’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고 속상한 심정을 밝혔다.

 

 

구두 수선점 전무한 광교에 점포이전 가능하게 해줬으면…
좌우명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말자’

 

▲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올해로 만 65세가 된 한금정이라고 합니다. 녹차밭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보성이 고향인데요. 몸이 불편하셨던 어머니, 그리고 저를 포함해 4남매를 부양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갖은 머슴살이와 쟁기를 들며 농사를 짓고 일하다가 82년도에 중매 결혼을 하게 됐는데요. 여러 고생을 하다가 89년 12월에 동생의 권유로 수원으로 상경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 구두수선 일을 배우게 된 계기는.
알루미늄 샷시 사업을 하는 동생과 1년 같이 일하다가 나오고 생계 유지에 막막함을 느끼던 찰나, 교회 목사님이 구두 관련 일을 해보라는 조언에 무작정 해보겠다고 했는데 평생 구두를 만져본 적도 없고 신어본 적도 없는데 하려니까 두려움이 들더라고요. 목사님이 “그래도 하실 수 있을거에요”라는 말에 아내랑 같이 구두일을 시작했죠. 구두수선업을 배우기 위해 소개받은 분에게 어깨 넘어서 배웠는데 한 달여만에 기본적인 것은 따라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저희 집안이 목수집안이여서 한번 본 것을 따라하지 못한 적이 없을 정도로 손재주는 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아내는 시청 안에서 일을 하고 저는 현재 이 점포에서 시작했는데 그때 당시에 누가 여기에 박스만 갖다놓고 일 조금 하다가 박스값만 해서 넘겨준다는 제안에 일수로 시작해서 1000만 원 정도를 날마다 빠짐없이 일하면서 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일수랑 애들을 키우기 위해 미친 듯이 살았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오니까 자주 지나다니던 몇몇분들이 저를 보고 “오늘도 나오셨어요?”하면서 안타까워하시는 분들도 계셨구요. 
아내와 함께 하루에 10만 원을 벌고, 반은 일수로 내고 나머지를 생활비로 썼는데 일수는 금방 채웠는데요. 당시만 하더라도 공직자들이 자율복장이 아니라 양복을 착장해야했을 시기여서 먹고 살기가 지금보다 훨씬 수월했죠.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겼던 시기가 일을 시작하고 10년이 지났을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 수원시 가두 구두수선협회는 어떤 단체인가.
수원시 가두 구두수선협회는 이 분야에 처음 뛰어들고나서 5~6년 후에 총회장을 맡게 되었는데요. 그때만 해도 욕 잘하고 술 잘마시는 사람들이 많아 너무 어수선했었죠. 조직 구성은 각 구별로 지역장이 있고, 총회를 1년에 2~3번 정도 개최해 모이고 있습니다. 총회에서는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면서 일거리라든지, ‘어렵더라도 남 돕는 일에는 소홀히 하지 말자’ 등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곤 합니다. 수선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겉은 거칠어도 마음만은 다들 따뜻한 사람들이라 어렵게 살아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있겠네요.

▲ 수원시 내에 가두 구두수선점포 현황은.
과거엔 160여 개 정도까지 점포가 있다가 지금은 80여 개정도가 못미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더 많아져야하는 일 아니냐고 물어보시는데 쉽게 말하면 일이 많이 줄어들어서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복장 자율화 때문에 구두 수선업이 그때부터 서서히 사양화된거죠. 한 70%정도 일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겠네요.
사무실 근처나 번화가에 있는 점포, 예를 들어 시장 근처나 인계동 쪽은 그나마 사정이라도 나은 편이지만, 변두리에 있는 구두수선 점포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루에 3~4만원도 벌기 힘든 실정이니까요. 한 달에 100만 원의 수입도 안되는 사람이 반 정도일 겁니다.

▲ 구두수선 종사자들의 고충이나 어려운 점은.
일이 안되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특히나 사업자 등록이 되지 않은 점포가 태반이라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게 크죠. 시에 공식적인 도움을 받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고요. 시에다가 건의라도 하면 어떻게라도 도와주실 줄 알고 기대해봤지만 전혀 받을 수 없었고,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많이 봤는데도 재난지원금 받을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이럴 때 단체행동이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했으나, 다들 당장 하루 일해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분들이라 불가능한거죠.

▲ 수원시에 바라는 점은.
지원도 지원이지만 시에서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일한다지만, 어려운 사람들도 이웃이니까, 제발 조금의 관심이라도 주셔서 저희 사정을 헤아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에 동수원사거리에 수원 소상공인들 지원해주는 것이 있다고 해서 수소문해 찾아갔더니 도와줄 수 없다고 거절하더라고요. 어떻게하면 받을 수 있는가 방법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집행부인 수원특례시도 관심이 필요하겠지만, 특례시의회에도 찾아가 의장님에게 여쭤봤더니 힘들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광교에 점포가 왜 없는지에 대해 물어봐주셨는데요. 저희도 전 수원시장이었던 염태영 시장님에게 물어봤지만, 광교는 청정지역이라 길거리 적치물은 안된다고 말하더라고요. 건물 안으로 들어가라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죠. 광교주민들도 불편함을 토로하는데 조금이라도 개선 방안을 찾아야하지 않나 싶어요. 제 생각으로는 새로 점포를 만드는 건 바라지도 않고 기존에 너무 어려운 분들을 옮겨주시면 좋겠다는 것이죠. 연세도 있으시고 다른 일도 하실 수 없는 어르신들도 있어서 그분들이라도 점포를 이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지 새로 점포를 만드는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 개인적인 꿈이나 바람이 있다면.
노후준비가 아직까지 하나도 안되있어서 그게 좀 목표이자 걱정거리입니다. 아프지만 않으면 조금이라도 벌어서 자식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네요. 다른 것은 몰라도 건강하게 수명 다할 때까지 사는 것이 제 꿈이자 마지막 바람입니다.

▲ 좌우명은.
모나게 살지 말자. 남에게 튀지 말고 조용히 내 할 일하며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말자’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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