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문학상 대상 뜻 깊어… 정조정신 살아숨쉬는 ‘홍재문학관’ 만들고파”

임성자 제9회 홍재문학상 대상 수상자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지난 10월 7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제9회 홍재문학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올해 제9회 홍재문학상 대상의 영광은 임성자 수필가·시조시인이 안게 됐다. 임성자 수필가는 1981년 수원문인협회에서 개최한 제1회 주부백일장에 참여해 입선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임 수필가는 수원문인협회에 입회하여 수필집 ‘오늘 아침에 까치가 울었거든요’, ‘하얀 목련이 창가에’를 집필하는 등 왕성한 문단활동을 펼쳐왔으며, 경기 문학인상, 경기 예술인상, 수원시 문화예술상, 수원 자랑스런 문학상, 경기여류대상, 경기 수필 대상, 한국예총 예술문학상, 수원시 문화상 등을 받았다. 특히, 이번 홍재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화성의 내력’과 ‘정조의 효’를 통해 정조에 대한 깊은 이해를 작품에 담아내면서 본인의 문학활동에 방점을 찍었다.
임성자 수필가는 1943년 화성시 서신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3년 제부도에 있는 학교에서 2년간 교직생활을 했다. 당시 학생들을 전부 합쳐도 40명도 안되는 작은 학교였다. 그 모습을 본 한 기자는 그를 ‘살아있는 상록수’라 표현하기도 했다고 한다. 1965년 임 수필가는 화성군청에서 일을 시작했고, 1970년 지금의 남편과 만나 결혼하게 됐다. 이후 1971년 육아를 위해 사직 후 자녀들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
이후 임 수필가는 경기도 여류문학회 회장, 경기 한국수필가협회 회장, 수원문인협회 수석부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으며, 수원예총예술학교 교장을 지내며 후학양성에도 힘써왔다. 현재는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정조사상연구회(사)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그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20여 년 동안 자원 봉사를 하였으며,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때는 매일같이 서울로 올라가 자원봉사 활동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올림픽기장증을 받기도 했다.

 

 

수원 문학계 지켜온 원로 여류작가, ‘홍재문학상 대상’ 수상
정조사상연구회 활동 20여년… 정조에 대한 애정 글에 담아내

 

▲ 문학 활동을 시작하신지 40여년이 지났다. 문학계에 몸담게 된 계기는.
제가 태어나 자랐던 서신면은 옛날에는 오지였습니다. 보리밥을 먹지 못하는 날도 있었고, 수수버무리를 해먹던 시절이었죠. 당시 제가 다녔던 중학교는 천막을 치고 공부를 할 정도로 열악했을 뿐더러, 남학생만 30명이고 여학생은 2명 밖에 없어 학교를 다니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 때 학교 국어선생님이 계셨는데, 선생님께 시를 써서 보여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그 선생님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어 당시 최고의 명문 학교로 손꼽히던 수원여고에 진학하게 됐고, 문예반에 들어가 문학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졸업 후 결혼을 하게 됐고 수원 문협에서 개최한 제1회 주부백일장에 참여해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문학에 몸담게 되었습니다.

▲ 수원예총예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시는 등 후학양성에도 힘쓰셨는데.
경기대학교에서 독서 논술 글짓기 과정을 수료한 뒤, 동사무소와 여성회관 등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글짓기 강의를 위한 관련 책자를 만들기도 했죠. 수원예총예술학교 교장으로 역임하던 시기에는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가을이면 학생들의 글을 모아 사비를 들여 책자를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주부, 회사원 등 일반인들에게 예술에 대해 가르치며 학생들이 스스로 글을 쓰는 보람을 느끼고, 또 시인으로서, 수필가로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 중 몇분은 문인협회 회원이 되기도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뿌듯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 수원시 예절교육관 초대 관장으로서 예절 교육에 앞장서셨는데.
한국 전례연구원에서 예절 공부를 시작하여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서 예절학 공부를 마친 뒤, ‘효의 도시’ 수원에 예절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2003년 화성행궁 복원식 때 6개월 동안 행궁에서 예절 관장으로 있었습니다. 예절 교육이 방문객들로 하여금 인기가 많았지만,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한계가 있어 2004년 2월 수원시에서 예절교육관을 만들었고 그곳의 관장으로 임명돼 활동하였습니다.
수원시 예절교육관 초대 관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예절 공부에 부흥이 일어났었을 정도로 예절 교육에 진심으로 임하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시 공무원부터 유치부, 초·중·고·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예절 공부를 위해 예절관을 찾아왔고, 특히 대학생은 성년례를 올려 주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저절로 인성교육을 할 수 있었죠.
예절교육을 위한 책자도 만들어 필기부터 실기에 이르기까지 교육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나중에는 소문이 나서 외국인 대학생들까지 신청을 할 정도였죠. 일본 대학생이나 러시아 교수님은 해마다 학생들이 한국에 여행을 오면 예절 공부를 참관하도록 했습니다. 중국 관광객들도 성년례를 할 때 오게 되면 리허설을 꼭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예절교육에 힘썼고 한국예절교육협회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 제9회 홍재문학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소감을 들려주신다면.
지난 20여년간 정조사상연구회(사)에서 부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책자를 발간할 때 편집위원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정조에 대한 문학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또 감동을 받곤 했죠. 문학에 몸담아 온 지난 시간동안 상을 여러번 받았지만, 정조와 관련이 깊은 홍재문학상에서 대상을 받게 돼 가장 기뻤고 홍재에 대한 수필을 쓰기도 할 정도로 정말 감사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 이번 수상작품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
비가 많이 내리던 날 행궁을 걷다 정조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영감을 받았습니다. <정조의 효>라는 시에서 ‘지난 밤 폭우 때문 잠 못 이룬 정조 마음 / 뜬눈으로 밤을 지새 능 채비로 바쁜 손길 / 저 멀리 보이는 융능 유난히도 멀구나. / 발길을 재촉하면 구슬픈 산새의 울음 / 조이는 발걸음에 분,초가 다급한데 / 가마꾼 떠는 부산에 평탄함만 버린다’라는 내용에 그 생각을 담았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행궁의 모습을 바라보며 느낀 이 감정과 정조에 대한 것들을 청년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수원 문학계 원로로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타 시·군에는 문학관이 모두 있지만, 수원에는 아직까지도 문학관이 없습니다. 홍재 전서 100권을 쓰신 정조대왕이 살아숨쉬는 역사의 도시 수원에 문학관이 없으면 어찌 수원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을 합니다. 이미 수원의 행궁과 그 속에 담긴 문화의 매력은 이미 시민들과 관광객들로부터 모두 사랑받으며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정조대왕 정신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3년 직접 수원시에 문학관 운영계획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아직 수원시에는 문학관이 없습니다. 정조대왕의 호인 홍재(弘齋)에서 이름을 따, 수원시에 정조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인 ‘홍재문학관’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홍재문학관을 추진하게 된다면 운영위원회를 조직해 적극적으로 건립을 위해 힘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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