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작은 버튼
커다란 마당 같은 하늘에서 해가 사과껍질 벗겨내듯 햇살을 사방으로 벗겨내어 산에 널고 들에 널고 관음사 마당에도 널어놓고 있었다. 날씨가 완연히 풀려서인지 가벼운 몸짓으로 몸 한 번 부르르 터는 중닭처럼 햇살비늘을 뿌리고 있었다. 
“은교를 데려가면 안 될까?”
“안전한 때가 되면 어련히 보낼까, 당분간 참아.” 
마리아 원장이 미니버스에 오르며 못내 아쉬워하자, 범진 스님이 핀잔주듯 말했다.
“엄마, 조금만 더 기다렸다 봐요.” 
은교도 ‘행복한 집’ 식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또다시 불행한 일이 생길까 봐 따라가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려어, 건강하게 있거라. 또 오마.” 
미니버스는 천천히 움직이며 마당을 나갔다. 은교가 뒤따라 나오며 눈물 흘리는 것이 사이드밀러로 보였다. 
“독한 것, 그럴 거면 같이 가지.” 
원장은 산중 도로를 느리게 운전하며 내내 눈물을 팔뚝으로 훔쳤다. 휘어진 도로로 접어들어서야 따라오고 있는 은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은교는 미니버스가 보이지 않는데도 한참 사라진 도로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뒤 절간 마당에서는 범진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납치할까요?”
“아직.” 
숲 속에서는 해적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은교는 돌아서 터덜터덜 걸어 절간 마당으로 들어섰다.
“불공드릴 시간이구나, 법당에 있을게.”
“예, 스님.” 
범진은 은교를 한 번 안아 주며 등을 도닥여 준 다음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은교는 마당에서 서쪽 산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산중 도로를 내다보기도 했다.
“오늘은 안 오려나? 빨리 보고 싶어.” 
은교는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며 조바심을 내었다. 그 시간에 눈빛보석은 북수동 성당에 있었다. 본당 안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팔달문 식구들을 데리고 들어간 것이다.
“내 친구들이야, 소개할게.” 
눈빛보석이 큰 벽 중간에 붙어서 팔 벌리고 있는 절대자의 아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야야, 어쩌려고 반말이야. 저 분은 하느님이래.”
“나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 들었어.” 
길대장과 은바퀴가 겁먹었는지 모기만한 소리로 주의를 주며 눈빛보석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렸다.
“용감한 영웅들 안녕.” 
절대자의 아들은 벽에서 훌쩍 내려왔다.
“아고고.” 
팔달문 친구들은 의자 밑으로 숨거나 문 쪽으로 달아나거나 바닥에 납작 엎드려 바들바들 떨었다.
“얘들아, 괜찮아.”
“눈빛보석 말이 맞아. 어서 일어나.” 
눈빛보석과 절대자의 아들이 안심시켜 주자, 팔달문 친구들은 조심조심 일어났다.
“정말 괜찮을까?” 
모두 자신의 등 뒤로 모이자 눈빛보석은 친구들의 별명을 불러주며 소개했다.
“나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야. 너희들에게 별명 하나쯤 듣고 싶을 만큼 친구가 되고 싶어.” 
눈빛보석의 소개가 끝나자 절대자의 아들이 부러워하며 말했다.
“정말 우리랑 친구하실 거예요?”
“그럼!” 
절대자의 아들이 무릎 꿇고 앉더니 궁궁이 앞에 손바닥을 펴고 손등을 바닥에 대었다.
“전 못 올라가요.”
“나랑 친구라면 할 수 있어.” 
궁궁이가 주저주저하다가 오른손바닥에 올라가 섰다.
“잘 했어. 친구가 되어 주어 기뻐.” 
절대자의 아들은 궁궁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자, 나에게들 와.” 
포로롱, 오른쪽 어깨 위로 대두조가 날아가 앉았다.
“너희들도 여기 앉아.” 
절대자의 아들이 왼쪽 어깨를 툭툭 치며 청비둘기 한 쌍을 부르자, 빠빠라기와 노랑가슴이 쑥스러워하며 날아와 앉았다. 질 수 없는지 은바퀴도 쪼르르 올라가 대두조 옆에 앉았고 길대장은 무릎에 기대었다.
“너희 중에 아홉 번째 친구가 나인 거 잊지 마.” 
백구가 꼬리를 흔들자 절대자의 아들이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팔달문 친구들을 몸에 실은 채 일어서서 한 바퀴 돌아주며 말했다. 
“왜 아홉 번째지? 꿈이야 생시야? 하느님과 친구라니.” 
셈이 느린 궁궁이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발가락들을 하나씩 구부렸다. 
“ 아, 하느님을 그냥친구라고 부르면 어때?” 
대두조가 작명해서 의견을 물었다.
“그건 예의가 아닌 거 같은데.” 
길대장이 절대자 아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이 절대자의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냥친구, 나는 좋아. 누가 한 번 불러 봐.” 
다들 쭈뼛쭈뼛할 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친구!” 
은바퀴가 눈을 질끈 감고 불렀다.
“다 같이 다시 불러 주자.”
“그냥친구!” 
눈빛보석이 웃으며 독려 하자 다함께 절대자 아들의 별명을 불렀다.
“하하하. 고마워.”
“하느님이 소리 내어 웃는 것을 본 건 우리뿐일 거야. 훗!” 
그냥친구가 웃는 소리를 들으며 대두조가 흡족해 했다.
“그냥친구, 이곳에 자주 놀러 와도 될까요?”
“좋고말고.” 
절대자의 아들에게 허락을 받은 팔달문 친구들은 즐거웠다.
“아쉽지만 사람들이 오고 있어. 친구들 또 보자.” 
절대자의 아들은 다시 큰 벽 중간으로 올라가 두 팔 벌리고 섰다. 큰 문으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팔달문 친구들은 재빨리 작은 앞문으로 나갔다.
“나는 날마다 놀러 올 거야. 하느님 친구를 둔다는 게 말이 돼?”                              “하느님은 우리 같은 동물을 거들떠도 안 봤잖아.”
“나 꼬집어 봐.” 
다들 믿을 수 없는 친구를 둔 것에 들떠 고개를 젓거나 갸웃거리며 팔달문으로 걸어갔다.
“안녕!”
“어? 너는 그 흰 갈매기구나.”
“이제 알아보네?” 
백구라는 갈매기는 은교가 기억을 되찾았기 바라며 관음사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아직 소록도 대교에서 목숨을 구해 준 은혜에 대해 은교에게 제대로 인사를 못했기 때문이다.
“나를 구해 주어 고마워.”
“내 어깨 위에 앉아 볼래?”
“그래도 괜찮아?” 
흰 갈매기는 은교의 어깨 위로 날아가 아주 조심스럽게 가만가만 앉았다.
“흐흐흐, 둘 다 오랜만이야.”
“앗, 애꾸부엉이.” 
은교와 갈매기는 소스라칠 듯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너는 꺼져!”
“엄마야!” 
여섯그만이 흰 갈매기를 후려갈길 듯 겁주자, 흰 갈매기는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예쁜 아가씨는 우리가 모시고 가지.” 
뒤쪽에서는 알박이와 부하들이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스님~!”
“납치해!” 
은교가 범진을 부르며 법당을 향해 뛰자 알박이가 명령했다.
“스님~!” 
해적들은 은교가 다시 소리치자 서둘러 숲 속으로 끌고 가려 했다.
“은교야, 이놈들 놓지 못해!” 
법당에서 불공드리던 범진은 은교의 비명 소리를 듣고 급히 문 밖으로 뛰어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1개 대대 병력이 소녀 한 명을 데려가는 일은 작은 책 한 권 들고 가는 일보다 쉬운 일이었다. 순식간에 은교를 납치한 해적들은 재빨리 숲 속으로 사라졌다.
“은교야!” 
범진도 뒤쫓아 숲 속으로 들어갔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은교와 해적들을 찾을 수 없었다. 범진은 절간으로 다시 뛰어갔다. 방으로 들어가 뒤적이더니 시리우스가 주고 간 버튼을 찾아 눌렀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은교가 납치되었어요!” 
작은 버튼에서 시리우스 목소리가 들리자 범진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예? 어느 쪽으로 갔나요?”
“서쪽 숲으로 사라졌는데 알 수가 없어요.”

인질과 귀하신 몸
‘은교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 
눈빛보석은 은교가 조약돌을 긁고 있는 것을 느낀 것이다. 백구에게 급한 표정을 지으며 동쪽을 향해 고개 짓했다.
“얘들아, 먼저 가.”
“쟤들 또 어디 가는 거야?” 
길대장이 한 마디 할 때 둘은 골목 어디로 사라졌는지 벌써 보이지 않았다. 백구는 눈빛보석을 태우고 가진 속력을 다해 관음사로 달려갔다.
“은교는 어디 있어요?” 
마당에 나와 있는 범진 스님에게 물었다.
“납치되었어. 우주 해적인가 하는 놈들 같았어.”
“어디로 갔어요?”
“서쪽 숲으로.” 
눈빛보석과 백구는 서쪽 숲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찾지 못하고 한참만에 절로 다시 돌아왔다.
“스님, 혹시 부엉이가 해적들과 같이 있지 않았나요?”
“털이 반쯤 빠진 큰 수리부엉이가 한 마리 있었어.” 
눈빛보석은 잠시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눈빛보석, 잠깐만 기다려.” 
백구의 등에 타고 떠나려 하는데 범진 스님이 편지를 주머니 속에서 꺼내 주었다.
“네가 읽어 보아야 할 내용이더구나.” 
범진 스님은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어서 가서 찾으라고 손짓을 거듭했다. 
“은교를 꼭 구하렴.” 
그 편지는 마리아 원장이 은교의 이야기를 적어 보낸 내용이었다.
“어서 가자!” 
편지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서쪽을 향해 뛰어갔다. 수원성에 도착해 보니 전투가 유례없이 치열하게 불붙고 있었다. 은교를 납치한 알박이의 부대가 동굴 속으로 안전하게 들어오도록 키드라군에서 총공세를 편 것이다.
“어느 쪽으로 납치된 것일까?” 
백구가 후각과 청각만으로 추적하기 어려운지 물어왔다. 그러나 눈빛보석도 판단을 하기 쉽지 않았다.
“팔달문으로 가자.” 
둘은 좀 더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것 같은지 빗발치는 광선총을 피해가며 대청마루로 뛰어 들어갔다(우주 해적들의 전쟁은 수원성에 사는 모든 삶에 꽃샘추위의 칼바람이 되어 성가시게 하고 있었다.).
“꽃샘추위가 매서운데 둘이 어디를 다녀오기에 땀을 흘려?” 대두조가 포르롱 백구의 머리 위에 올라앉으며 물었다. 아직도 절대자의 아들을 만나고 온 것에 흥분되어서 다들 그 이야기만 계속하고 있었다.
“너희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눈빛보석이 친구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어쩌면 너희들과 떨어져 있게 될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은바퀴가 펄쩍 뛰며 물었다.
“우주 해적들을 지구 밖으로 내 보내려면 내가 이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구나? 그들은 나를 납치하려고 이곳에 와 있는 것 같아. 내가 이곳에 오래 머물다가는 너희들조차 위험해질 뿐이야. 그리고 그들이 지구에 있다는 것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에게 불행을 줄 뿐이야.”
“나쁜 놈들. 우리가 그놈들을 쫓아버릴게.” 
길대장이 호기롭게 말했다.
“말은 고맙지만 이 문제는 그들과 나와의 문제이구나. 그리고 그들은 지구에 사는 친구들이 혼내 줄 수 없는 영혼의 존재들이란다.”
“흑흑흑.” 
궁궁이의 우는 소리가 났다.
“너희들에게 인사를 못하고 떠나게 될까 봐 미리 이야기하는 거야.” 
모두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떠나는 것이 아니니까 전처럼 웃자. 그리고 나는 너희들 보러 지구에 자주 놀러 올 거야.” 
눈빛보석이 억지로 웃어 보이지만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눈빛보석의 얼굴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구야, 이제부터는 나 혼자 행동해야 할 것 같아. 친구들 잘 지켜 줘."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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