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우주 국경 수색대는 해적들을 지구 밖으로 몰아내고 수원성 상공에서 사라졌다.
“어서 내려가 봐.” 
시리우스는 두 우주 전사에게 지시했다. Nn11은 북문으로 Nn12는 팔달산 동굴로 즉시 비행선을 타고 내려갔다.
“안 보입니다.” 
지상에서 보내는 두 전사의 보고에 시리우스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해적들이 눈빛보석과 은교를 데리고 빠져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적들이 데리고 빠져나가기를 바라며 세워 놓은 계획이 있었는데 구조 장비를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다(고성능 전파 교란 장치로 눈빛보석과 은교를 납치한 해적선을 우주 미아로 만들어놓고 구조할 계획이었다.). 
“삐리리리리.” 
그때 화상 통화 신호음이 울렸다.
“시리우스 교수, 안녕하시오?” 
아틀란티스 우주 박물관장이었다.
“나도 왔습니다.” 
박물관장 뒤에 서 있던 카노푸스가 따라서 아는 척을 했다.
“도착했군요. 카니스 의장에게 연락은 받았습니다.” 
시리우스는 내키지 않았지만 공식 임무를 띠고 나타난 그들에게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소풍
“네가 스노로구나?”
“내 이름 어떻게 알아?” 
그냥친구가 자신의 이름을 알자 스노가 신기해했다.
“네가 성체 성운에서 길을 잃었을 때 기드로온이 네 이름 부르며 찾는 것을 보았어.”
“아, 그 때 나를 찾아 준 아찌다. 맞지?” 
그냥친구는 그렇다는 뜻으로 웃어 주었다.
“세상만 좁은 줄 알았더니, 우주도 되게 좁은가 보네.” 
궁궁이가 중얼거렸다.
“이제 밖이 조용해져 햇살도 좋을 텐데 기분전환으로 소풍 가지 않을래?” 
“좋지!” 
그냥친구의 제의에 길대장이 맞장구쳤다.
“너 대장 맞아?” 
빠빠라기가 보다 못해 한 마디 했다. 
“지금 우리는 눈빛보석이 떠나서 슬프거든.” 
은바퀴도 짜증냈다.
“아, 미안하구나. 눈빛보석은 너희들 보러 다시 올 거야.”
“하느님, 아니 그냥친구 말이니까 믿어도 되죠?” 
대두조가 그래도 염려되어 물었다.
“나를 믿는 친구는 소풍 가자.” 
절대자의 아들인 그냥친구가 말하며 본당 밖으로 걸어나갔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어야 해.”  
궁궁이가 그냥친구의 뒤를 따라갔다.
“눈빛보석이 그냥친구를 자기처럼 대해 달라고 했어.” 
길대장이 따라 나섰다.
“우리도 가자.” 
대두조가 왔다 갔다 하며 서 있는 친구들의 동참을 요구했다. 백구가 묵묵히 뒤를 따르자 다들 밖으로 나갔다.
“어, 나는?”
“너도 함께 가자.”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냥친구가 손짓으로 스노를 불렀다.
“헤헤.” 
스노는 좋아서 얼른 뛰어갔다. 절대자의 아들과 함께 팔달문 친구들이 금빛 햇살 속으로 소풍을 떠났다.
“어때? 아름답지?” 
그냥친구가 동행한 동물들에게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방화수류정이었다.
“나 여기 몇 번 와 봤어.” 
팔달문 친구들은 그다지 감동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것도 자주 보면 아름다움이 지겨워지겠지.” 
그냥친구가 조금은 우울한 듯 말했다. ‘그런 것은 사람들에게서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눈빛으로.
‘사람이 힘들게 사는 것 중 하나가 신의 능력을 흉내 내려 하는 것에 있다. 신이 싫증을 자주 내는 것까지.’ 
그냥친구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정자의 서쪽 벽으로 갔다. 똑같은 무늬가 새겨진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 잡아 봐.” 
동물 친구들은 어느새 정자에서 연못가 풀밭으로 뛰어 내려가 술래잡기를 하느라 바빴다.
“그래, 그렇게 행복해 주렴.” 
그냥친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들아, 어서 올라와 나를 좀 쉬게 해 주어라.”
“너무 많은 것을 숨겨놓으시니까 그래요.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아무도 모르게 하시니 풀싹조차도 도와드리지 못하잖아요.” 
아들의 말을 물끄러미 듣고 있는 절대자의 눈에는 아들이 아직 철이 덜 들어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너는 사람들의 일에 너무 깊이 개입하고 있구나.”
“그들에게 우주의 권리를 주고 싶어요.”
“그건 헛된 짓이다! 너의 어머니도 그러다가… 아니다. 아무튼 안 된다.” 
그냥친구의 의견을 듣다 절대자는 말실수를 했다(실수가 불가능한 우리의 절대자께서 그의 아들에게는 가끔 했다. 어쩌면 그 실수가 유일한 호흡인지 모른다.).
“언제까지 제가 몰라야 하죠?”
“아들아, 그곳은 해적들이 출몰하는 곳이니 몸조심해라. 음, 카니스 의장이 왔군.” 
그냥친구가 묻자, 절대자는 업무 때문에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아버지는 이곳으로 닥치는 위협에 대해 아무 말씀 안 하시는 이유가 뭘까?’ 
그냥친구는 서쪽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풍덩!” 
화홍문 위쪽 수로에 놓인 징검다리로 궁궁이가 건너가다 물에 빠진 것이다.
“아푸아푸.” 
궁궁이만 빠진 것이 아니라 등에 탔던 은바퀴도 함께 빠졌다. 날개가 젖은 은바퀴는 떠내려 갈 수밖에 없었다.
“어? 언제 이곳에 와 있었을까?” 
화홍문 아래 수문에서 그냥친구가 건져 주었다.
“얘들아, 재미있게 놀았니?”
“응, 예!”
절대자의 아들에게 어떤 친구는 하느님이라며 존댓말로 대답했고, 어떤 친구는 그냥친구라며 반말로 대답했다. 그냥친구의 노력으로 팔달문 친구들은 눈빛보석을 생각하며 슬퍼하던 모습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하늘에 쓰는 글씨
투명공에 갇힌 눈빛보석이 소리소리 치지만 누구도 들어 주지 않았다. 하델은 키드라를 쫓기 바빴다. 키드라는 예쁜 의자에 앉은 은교가 통사정을 하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무지막지하게 따라오는 하델을 따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점점 지구에서 멀어지며 눈빛보석과 은교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발 무사해 줘.” 
은교는 저 멀리 투명공 속의 눈빛보석을 젖은 눈으로 바라보며 조약돌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구해 줄게.” 
눈빛보석은 은교를 향해 연신 두 손을 흔들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능을 절감하며 투명한 벽을 수없이 치다가 주저앉았다. 그때 눈빛보석의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범진 스님이 건네준 편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니? 그럼 은교가 데네브란 말인가?
“데네브, 데네브!” 
눈빛보석은 편지를 읽다 말고 벌떡 일어나 은교를 향해 울며불며 소리쳤다.
“눈빛보석, 나 걱정하지 마. 그러다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 
은교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는 것을 모르고 걱정해 주고 있었다.
데네브. 은교가 왜 그러는지 모르자 눈빛보석은 크게 손가락 글씨로 반복해서 투명공 벽에 쓰고 또 썼다.
“나를 알아보았구나. 기드로온!” 
은교도 울며불며 소리쳤다.
기드로온. 은교도 큰 손가락 글씨를 허공에 반복해서 쓰고 또 썼다.
“드디어 나를 알아보았구나. 어떻게 데네브에게 가지?” 
눈빛보석인 기드로온은 침착하려 애쓰며 궁리했다. 은교 또한 기드로온에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우리의 별로 들어가자!” 
키드라는 부하들을 이끌고 데네브와 함께 자신의 해적별로 들어갔다. 나중에 알박이가 데리고 온 해적들도 속속 합류했다.
“할 수 없어. 우리도 그러는 수밖에.” 
하델도 따라온 부하들과 기드로온을 데리고 자신의 벌집처럼 생긴 별로 들어갔다. 끝까지 남아 있다 겨우 살아 돌아온 해적들도 패잔병의 모습으로 모두 도착했다.
“야, 우리별들 잘 있나 돌아보고 보고해.” 
하델은 부두목들을 각자의 별로 보냈다.
“알박아, 그동안의 우주 정보를 가져와.” 
돌아온 키드라도 거느리고 있던 별들이 무사히 잘 있는지 순시하고 다녔다. 알박이는 지구에 가서 전쟁하는 동안 우주에 흩어져 있는 정보원들이 보내온 내용들을 한 아름 안고 낑낑대며 키드라 앞에 가져왔다.
“이 새끼는 내일이나 모레쯤 부두목 시키려고 했더니 갈수록 돌대가리네. 야, 이 미친놈아! 나 보고 이걸 다 읽으라고?” 
키드라는 쌓아놓은 정보 서류를 한 웅쿰 쥐더니 알박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다행히 튀어 나오는 눈알을 두 손으로 받아 손쉽게 도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데네브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지난번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이거 큰일 났다.” 
키드라가 쥐고 있던 정보 내용을 대충 보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군 완전 무장시켜!”
“예에?” 
작전 참모 알박이가 놀라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제 막 지구에서 녹초가 되어 돌아왔는데 또 다시 완전 무장이라니?
“뭘 꾸물거려, 다 죽게 생겼는데!”
“알겠습니다!” 
키드라의 호통에 알박이는 내용도 모르고 뛰쳐나갔다. 키드라가 긴장한 모습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전화가 왔다.
“이 쪽으로 오르트가 몰려오고 있어!” 
수화기 속에서 다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하델의 걸걸한 괴성이었다.
“뭐야? 이쪽으로는 우주 군단이 다가오고 있어!” 
하델에게 대답해 주는 키드라의 목소리는 지구에서 본 재규어 같던 맹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호랑이 앞에 미리 떨고 있는 세퍼드 정도의 초라함이었다.
“왕자 놈 납치해 왔는데 장사 한 번 못해 보고 죽게 생겼네.” 
천하에 무서울 게 없이 꽝꽝거리던 하델이 겁 많은 아이 우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도 그럴싸한 비즈니스 좀 해 보려 했는데.” 
우주의 협곡 동쪽에서는 키드라가 해적질을 하고 있었고, 서쪽에서는 하델이 해적질을 하고 있었다.
“야, 너 나하고 오르트로부터 탈출할 때 떠돌이별 말고 폼 나게 머물러 사는 별이 되고 싶어 도망쳤잖아?”
“그렇고말고. 이제 해적질 조금만 더하고 작은 마을 같은 별자리라도 만들어 살려고 했는데 이게 뭐니?” 
하델과 키드라는 울상이 되어 통화하고 있었다.
“하델 두목, 나를 두고 오르트와 협상하면 도움 안 될까?”
“키드라, 잠시 전화 좀 끊자.” 두 해적 두목의 불쌍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눈빛보석이 튜브공 속에서 말을 건넨 것이었다.
“아이야, 아니 왕자님, 어른들 말씀 나누시는데 끼어들지 마셩. 오르트 대제에게 너는 애완용 강아지 값 정도도 되지 않아.”
“혹시 누가 알아? 오르트 대제가 나 같은 애완용에 특별히 관심 가질지.”
“떽! 아무튼 너는 줄 수 없어.” 
하델은 눈빛보석의 말을 무시하고 한숨만 내쉬다 소리쳤다.
“모두 완전 군장하고 집결시켜!” 
하델의 별에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모두 집합했습니다요!” 
5인자가 보고하자 하델은 동굴 밖으로 나갔다.
“언젠가는 너희들이 입은 해적 옷을 내 손으로 벗기고 싶었는데 때가 조금 빨리 온 것 같다. 너희들을 이 하델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고 싶었다 이런 말씀이다.”
“고것이 무슨 말씀이다요?” 
20인자인 찌라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르트가 몰려오고 있다.”
“예에?” 하델의 말을 들은 부하들은 모두 사색이 되었다.
“부두목들 모두 앞으로 나와.” 
16명의 부두목들이 앞으로 나왔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저작권자 © 서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