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예술인들의 염원인 '수원예술인회관' 건립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원예술의 살아있는 전설! 오현규 수원예총 회장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수원예술의 살아있는 전설! 오현규 수원예총 회장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수원음악계의 큰 별…온몸 불사르는 연출가로 인정받아

인생을 살면서 꿈과 목표는 정말 큰 동기부여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원래 이루고자 했던 뜻이 바랠 수 있고, 이룬 사람들은 새로운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이유로 어떤 분야에서든 끊임없이 목표와 계획을 설정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정진하는 사람을 대단하게 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열정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인 마예(㐃藝) 오현규 수원예총 회장은 75세의 연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을 즐기고 사랑하는 지휘자로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영감을 주는 예술가이다. 그는 수원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서 과거 최초 영복여고 고적대를 창설해 전국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와 더불어 지휘자 인생에서도 음악인생 50년 ‘갈라콘서트’를 비롯 120여 회에 달하는 굵직한 무대에 선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러시아의 국제음악콩크르에서 “그랑프리” 대상을 받기도 하는 등 큰 성과를 보여준 수원 음악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지금도 경기도음악협회 회장, 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 수원예총회장과 대한민국 청소년교향악축전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음악예술과 예술인들을 위한 기회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뜻있는 일들을 해오고 있다.
오현규 회장은 인터뷰에서 “우연히 사람들의 권유를 받아 수원예총 회장이 됐는데 이전까지 회장직을 맡으리라고는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이제 수원예술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원예총과 수원지역에 속해있는 예술인들 모두가 기존의 예산지원만을 바라보고 현실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진취적으로 더 큰 예술적 가치를 창조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며 “9개 협회가 힘을 합쳐 예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수원시민들에게 인정받아 각인시킨다면 수십 년간 고착돼있던 수원예술의 꽃이 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원 9개협회 힘 합쳐 시민에게 ‘예술 진면목’ 보여줘야 
‘수원시민예술단 3333’ 회원 모집되기를 간곡히 기대 
 팔달문화센터 교육과정에 ‘수원예술대학’ 개설됐으면 
 경기도음악협회장으로 ‘난파음악제’ 등 개최하고 있어 
‘수원예술고’ 탄생 좌절…재추진돼 언젠가 설립되길

 

▲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저는 마예(㐃藝) 오현규라고 합니다. 마예(㐃藝)라는 호는 예술을 두드릴“마”(㐃)와 예(藝)로 예술을 두드린다는 진취적인 나의 상징입니다. 수원역 앞 분수대 자리가 본적지로 매산초, 수원북중, 수원농생명과학고를 나온 수원의 토종예술인(音樂)이라고 할 수 있죠. 중앙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수원대학교 음악대학원 지휘전공 석사(디풀럼)를 받았고, 교육자와 지휘자, 작곡가로 활동했습니다. 각종 공연무대와 서울올림픽. 제59회 전국체전 등 공개행사에 총감독과 총연출가로 뛰어난 연출력과 독특한 리더로 만인들에게 “온화 하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로 애칭 되면서 지휘자로서 무대에서 온몸을 불사르는 연출가이기도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2008년도에 “베르디레퀴엠” 공연을 향토음악제의 개막연주로 대공연장에서 수원 최초로 선보였던 공연입니다. 또 마예(㐃藝) 음악 50년 “갈라콘서트”를 전당 대극장에서 저와 인연 지었던 320명의 대규모 연주자로 공연했던 경험도 매우 큰 자산이라 여깁니다. 더욱 합창지휘자로 자리매김한 제3회 전국합창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받아 독일과 이태리에서 합창지휘자격을 이수한 것이 오현규 저의 오늘날의 버팀목이 되었답니다. 
수원지역 예능 학생들이 공부할 수원예고 설립을 위해 중둥 교장 자격을 소지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인사글과 축사 등으로 글 솜씨에 재능이 붙어 언론사에 오피니언 기고를 60여 회를 집필했고 문학의 수필작가로서 “갈대 갈 테니 태우지 마소”라는 주제로 2012년 문예춘추에 수필가로 등단하기도 하는 등. 오직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음악의 예술혼을 위해 살아오고 있습니다.

▲ 취임 100일이 지났다. 소회는.
제18대 수원예총 회장에 3월 4일 취임해서 3개월인데 벌써 3년의 시간이 흘러간 것 같다고 느낍니다. 취임식에 관계 여로의 수많은 분들이 격려하며 응원하여 주신 덕분에 그 에너지가 충만해져 활주로를 달려온 것 같은데요. 예총의 새로움을 위해 이전에 크고 작은 해프닝들로 인해 오랜기간 동안 침체된 일을 하지 못해왔다고 생각하는 만큼 이를 쇄신할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 시작은 제가 취임하기도 전인 작년 8월 16일, 팔달문화센터 수탁 운영을 통해 변화를 도모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번에야말로 수원예총의 명예를 찾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새로 취임하면서 재도약할 수 있는 수원예총이 되기를 바라며 일하고 있는데요. 그 시작으로 꽃밭도 직원들과 직접 가꾸며 시민들이 편하게 찾아오는 곳으로 홍보와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에 팔달문화센터가 각종 교육 프로그램과 시화전.사진.미술품의 “년 중 상설전시장”이 되어, 월 방문객이 1,500여명에 달 할 정도로 시민들이 가까이하고 친구같이 편하게 다가오는 곳으로 탈바꿈 하게 됐습니다.
특히 예당마루(지하공연장)는 연중 대관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활성화되어 하루에 3회의 대관을 해소해야 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죠.

▲ 현재 수원예총의 향후 과제는.
수원예총은 새로움을 도전하고 추구하려고 합니다. 예술인들의 구성이 안주하고 있는 관습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9개 장르의 협회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야만 수원예총의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대한 고정관념의 변화가 수원예총의 향후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수원의 예술인들은 자기만의 높은 무대에서 이제는 현장의 시민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예총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푸념의 소리로 늘 ‘지원예산액을 더 많이 풍족히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들 하지요. 그러나 현실은 수원시의 재정지원이 경기도 31개 시군 중 수원시가 28순위일 정도로 너무나 열악하여 수원의 예술인들이 만족감에 도달하긴 너무나 괴리감이 큽니다. 활동할 수 있는 예술과는 거리가 먼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죠. 따라서 현실에 맞게 적응하며 우리의 예술(藝術)은 그 값어치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예술 무대가 빛나도록 잘하면 우리 수원예술인들을 저절로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수원예술의 가치를 올리면 자연스럽게 부가가치는 올라갑니다. 고부가의 예술가치로서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필요한 예술혼(藝術魂)을 살려 처음엔 힘들어도 합심하여 장인의 수원예술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여러 산적해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리라 여기고 있습니다.

▲ 재임 동안 꼭 추진하고 싶은 사업은.
제일 먼저 수원시민예술단 3333이란 회원이 모집되기를 간곡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원시민들의 예술적 수준을 가름하기 위해 “수원예술대학(水原藝術大學)”을 팔달문화센터 교육과정에 개설하여 수준 높은 수원시민들에 학사모의 소망을 이루어드리고 싶은 바람도 있죠.
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이자 추진하고 싶은 사업은 수원을 문화예술의 도시라 칭 하고 있는 데 바람직하게 수원예총의 간판을 내 걸을 건물 하나조차 없다는 점입니다. 즉, 경기도 수부 도시인 수원에 <예술인회관>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이는 수원예술인회관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원의 예술을 시민들과 같이 공유해야 할 필요성도 느낍니다. 정말로 시민의 예술축제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도 있죠. 수원을 발전시키는 먹거리가, 예술과 관광자원인 고적의 정조테마로 아우러 공존하는 문화예술로 부강의 수원이 될 것입니다. 각종 프로그램에 초대해 문화예술 인프라를 만들어가는 것이 현재 수원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경기도음악협회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성과는.
저는 경기도음악협회장을 19년째 하고 있는데요. 그 과정 속에 수원예총의 수석부회장을 역임한 적도 있었죠. 오랜기간 회장직을 역임한 만큼 지난 2월 경기도음악협회 정기총회에 저의 사퇴를 안건으로 올렸으나 오히려 만장일치로 부결되어 경기도음악협회장직을 계속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오히려 31개 예총과 경기도내 각 지역 음악협회가 교류하며 연관이 되어 더욱 좋은 교류가 이루어져 “기전음악회”등 경기도 지원사업비를 지원받아 수원예총 나름대로 2023 신규사업을 하게 되기도 했죠.
경기도음악협회를 소개하자면 총회를 4년마다 하고 있고 경기대 후문 동수원IC 근처에 사무실이 있으며 화성에도 도 음협 분소사무실이 있습니다.
경기도음악협회 업무는 난파음악제, 기전(畿甸)음악제 등을 진행하고 있고 있으며 북부 경기도 관악페스티발과 청소년예술 축전도 열고 있습니다. 기전(畿甸)음악제는 31개 시군중, 응모를 통해 10개 도시를 선별하여 협업해 지역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상징사업으로 경기아트센터와 함께 7개 시-군과 매칭해 대한민국 청소년 교향악축전을 8회째 진행하고 있습니다.

▲ 난파기념사업회를 소개한다면.
한국음악(서양음악)의 선구자이신 난파 홍영후선생의 기념사업회에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는데요. 설립 55년의 정통성이 있는 기념사업회로서 본인이 선임되면서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여 활발한 기념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새로 쓴 홍난파년보”를 <민족연구소>와 공동 편제하였으며 홍난파 조선 동요 100곡집도 <영인본>으로 5,000부 이상을 발간 보급하며 역사적 논리에 친일의 굴레를 벗어나 활동 중입니다. 대한민국 3대 콩클인 “난파전국음악콩쿠르”는 1,000여명의 난파콩쿠르 지원자가 쇄도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죠.
55년을 이어오는 난파음악상(蘭坡音樂賞)은 주요 수상자로는 정명훈, 금난새, 조수미, 손열음 등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상 수상자들의 수상이 55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 수원 최초 영복여고 고적대 등을 창단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감회는.
1975년, 한국 최초로 여자고적대를 수원에서 영복여고에서 창단하였는데요. 당시 신장이 165m에 준하는 여고생들이 음악계에 금기시 되어 있는 트럼본과 트럼펫 등 금관악기 연주를 처음 시도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자랑할 만한 긍지가 있는 추억입니다. 당시 KBS 장사씨름대회와 mbc 등의 TV에도 출연하여 수원과 대한민국에 히트작이 됐죠. 대한민국의 여자고적대(염광.동두천 등)의 호황의 시발점이기도 했고 이제는 오히려 관악기를 여자 학생들이 더 많이, 그리고 더 잘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고적대를 창단하게 된 계기는 과거에 학도호국단 창단식을 공설운동장에서 경기도고교생 이천명이 결단식을 할 때 60인조 고교연합 악대의 지휘(콘탁)를 제가 했습니다, 그때 영복여고(카드색션)생들이 그 모습에 제가 인기인이 됐습니다. 그후 당시 영복여고에서 좋은 여건으로 교직을 제안해 수락했고 처음 42명으로 창단해 4대까지 맡아 지도한 후, 수원공고에서도 관악대를 만들기도 했죠. 당시 수원에 내세울 것이 없었는데 수원의 상징으로서 <영복여고 고적대>를 지금도 기억해주는 분들이 계시니 매우 감회가 새롭습니다.

▲ 수원예술고 설립에 대해서.
수원예술고를 설립하기 위해 평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래서 추진위원장을 맡았고 사립으로 추진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술고는 수원에 가장 필요한 교육이었습니다. 여론조사까지 하고 모든 준비를 거의 끝낸 상황에서 김용서 시장과 당시 교육감을 만나 사립학교로 설립하자고 뜻이 맞아 추진했었죠. 인가는 교육청, 설립은 재단에서 했고 경기대학교 뒷문 쪽에 자리를 잡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문제가 생겼는데요. 뜻있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 법인까지 만들었지만 경기대학에서 나오는 학교의 입구가 될 문이 없었고 도시계획에 의해서 전철이 들어설 계획이어서 이사장, 교장 진까지 다 구성했으나 인가가 안되었습니다. 1차 설립 은 경기대 옆의 <풍양 조씨>종친회 땅에서, 차 설립추진은 <파평 윤씨 종친회>에서 추진되었으나 경기도교육청의 허가문제로 추진이 안됐던 점은 영원히 지워지질 않는 가슴속의 염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말 아쉬운 기억입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설립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재추진하면 언젠가는 꼭 설립해야 할 숙원사업이기에 언젠가는 꼭 설립되길 희망합니다.

▲ 수필가로 등단하게된 계기는.
작곡을 하다보니 ”수원 시(詩)를 노래하다” 라는 신념으로 살아왔고 수원에 연관된 작곡을 많이 했습니다. 한편 회장으로 많은 인사말과 축사를 쓰면서 문학과의 접근이 가까워졌습니다. 또한 작곡 작사를 하면서 문학에 관계되는 경기도 예총 30년사/40년사 편집을 계속하다보니 글 실력이 붙게 됐죠.
수원천변의 갈대를 보고서 ‘가만둬도 가는데 왜 굳이 태우려고 하는가.’라는 내용을 감지하여 수필로 내달라고 해서 상을 받아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 앞으로 남은 꿈이 있다면.
4년의 수원예총의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내 인생길에 아! 오현규 멋지게 최선을 다하고 한 점 부끄럼 없이 깔끔하게 박수받으며 떠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수원예총이 수원문화예술을 대표하는 단체로 옛 명성을 되찾아 오는 꿈을 가꾸어 가고 있죠. 한편 못다 이룬 “수원예술고등학교” 설립이 내 생에 설립되기를 기원합니다

▲ 수원 예술인들과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는 대표적 단어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우리 수원예총은 수십 년 동안 고착상태에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변하질 않으면 자멸할 것 같을 정도로 말이죠. 지원예산에 너무 연연하니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각 장르의 9개 협회가 서로를 의지하며 지탱하고 협력할 때 그 힘이 가중되어 예술인총연합회의 순발력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수십 년을 오면서 둘러 처진 울타리를 걷어내고 한마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수원예총의 미래가 약속될 것 같습니다.
이제 수원예술이 살아 있다는 증험을 수원시민들에게 인증받고 각인이 된다면 그 파급력은 대단할 것으로 봅니다. 예술의 수준 높은 경지를 향하여 모두 함께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예술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옆에 있는 친구다’라고 여겨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도 열심히 노력해서 멋진 예술을 보여드릴테니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든지 문이 열려있으니까요. 우리 예술인들의 예술혼(藝術魂)을 존경하리라 믿습니다. 우리 함께 합시다.

▲ 좌우명은.
삶의 정점에서 “지휘봉”을 잡고 무대에서 여생을 마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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