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은교와 눈빛보석이 데네브와 기드로온이 되어 말하는 동안 우주 경비선은 북극문을 통해 지구으로 진입했다.
“경도 127도를 유지하며 남쪽으로 이동해.”

무인도 이야기
“조금 더 남쪽으로 비행해.” 
Nn11은 시리우스의 지시에 따라 수원성을 지나 남해안까지 우주 비행선을 이동시켰다.
“아름다운 섬이야.” 
은교가 우주 비행선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눈빛보석에게 말했다.
“저 무인도에 착륙해 줘.” 사람이 살지 않는 파도와 바위와 나무와 풀꽃 그리고 갈매기들이 알을 품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저 멀리 가물가물한 섬들이 뭍을 그리워하며 떠다니는 것처럼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이곳에 왜 내린 거죠?”
“너희들에게 안전한 곳으로는 이곳이 적당할 것 같아. 우주 전쟁이 끝나 평화로워질 때까지 여기서 지내 줄래?” 
눈빛보석이 궁금해 하자 시리우스가 이유를 말하고 둘을 번갈아보며 의사를 물었다. 
“너만 좋다면.” 
눈빛보석과 은교는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타!” 
시리우스는 두 전사와 스노에게 탑승하라고 말한 것이다.
“싫어. 나는 형아랑 누나랑 여기 있을 거야.”
“엄마 보고 싶지 않아?”
“으앙, 엄마 보고 싶어.” 
떼 부리던 스노는 어미 유니콘을 여러 날 못 봐서 그런지 아쉬워하면서도 우주 경비선에 올라탔다.
“또 봐.” 
우주 경비선은 둘을 무인도에 남겨 두고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물안개
은교와 눈빛보석만을 내려놓은 무인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기드로온과 데네브가 하나이던 우주에서처럼 비단결보다 곱고 아름답게 하루하루 수놓으며 지나갔다.
물안개가 섬을 품은 듯이 포근히 싸고 있는 날이었다. 
“흰 물고기 한 쌍을 조각해 줄게.” 
눈빛보석은 조각을 하고 있고, 은교는 맨발로 그림을 그리듯 금모래밭을 걷고 있었다.
“끼륵끼륵!” 
섬기슭에서 갈매기가 알을 부화했는지 울음 소리가 조금 소란스러웠다. 은교는 금모래밭이 끝나는 기슭 가까이까지 가 보았다. 흰 갈매기 한 마리가 은교를 보자마자 갑자기 북쪽 하늘로 날아갔다. 은교는 물안개 때문에 어렴풋해 잘 알아볼 수 없었다. 그 갈매기는 다름 아닌 은교에게 리본을 돌려 준 백구였다.
“나쁜 놈들이 은교를 납치해서 이 무인도에 버렸구나.” 
갈매기가 이렇게 혼자 말하는 것은 1년 전에 은교가 여섯그만과 알박이에게 납치되는 것을 보고 달아났었기 때문이다. 갈매기는 부지런히 날아서 수원 팔달문까지 갔다.
“어, 갈매기가 이곳까지 날아왔네? 길을 잃었나?"
“우리 지붕 위에 앉았어?” 
길대장과 궁궁이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백구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팔달문 지붕으로 껑충 올라갔다.
“넌줄 알았어.”
“은교가 납치된 곳을 알아냈어.”
“뭐? 가자!” 
백구는 갈매기를 등에 태우고 달렸다. 갈매기 백구의 비행 속도보다 수십 배 빠르기 때문이었다. 
“너 무지 빠르구나?” 
10분쯤 달렸을까 백구는 벌써 남쪽 바다 섬들을 건너뛰고 있었다.
“저 섬이야.” 백구는 무인도 백사장에 내려섰다.
“백구와 그 갈매기?”
“눈빛보석, 백구 왔어!” 
은교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한걸음에 눈빛보석이 달려왔다.
“백구!” 
눈빛보석은 백구를 쓰다듬어 주고 백구는 꼬리를 마구 흔들어대며 무척 반가워했다.
“그럼 납치되어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 
흰 갈매기는 영문을 모르겠는지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모두 잘 있지?”
“팔달문 친구들은 별일 없는데, 날마다 눈빛보석을 걱정하고 있어. ‘행복한 집’과 원장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어.” 
은교는 말을 듣자마자 눈물부터 쏟으며 주저앉았다. 
“후우~.” 
눈빛보석도 한숨만 길게 쉬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물안개로 수평선이 지워지고 있었다. 파도와 바람도 오늘은 조용했다. 갈매기들조차 먼 바다로 나갔는지 이 섬에는 손님인 흰 갈매기 한 마리뿐이었다.
“가 보고 올까?” 
눈빛보석은 아직 눈물에 젖고 있는 은교의 손을 잡고 일으켜 주었다.
“미안해.” 
흰 갈매기는 행복을 깨트린 것 같아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
“아냐, 알려 줘서 고마워.” 
눈빛보석이 은교를 다독거리며 갈매기에게 대답해 주었다.
“백구, 부탁해.” 
눈빛보석은 은교와 함께 백구의 등에 올라탔다.
“백구야, 안녕.”
“그래 백구야, 또 보자.” 
개 백구는 새 백구와 작별한 뒤 달리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무인도는 눈물점처럼 멀어져 갔다. 

좀비
“멋있게는 못 살았어도, 멋있게는 한번 죽어 보자!” 
막아도 막아도 새카맣게 밀고 오는 오르트들을 이리저리 무찔러가며 하델은 쉬지 않고 부하들에게 고래고래 소리 질러 댔다.
두목 못지않은 용맹으로 적을 막아내지만 16개의 해적별들은 하나씩 장렬하게 전몰해가고 있었다.
“내가 원수를 갚아 주마! 야, 이 새끼들아, 나한테 다 덤벼!”
퓨슝퓨슝, 퓨퓨퓨퓨퓨!  하델은 온몸이 피투성이면서 광선포와 광선총을 번갈아가며 불사조처럼 총을 쏘아 댔다. 무기는 태양훈육관장이 지원해 주어 부족하지 않았다. 오르트들의 사상자는 허공에 검은 물결을 이루며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죽여도 죽여도 옵니다요!”
“그래 얼마든지 와라, 이 메뚜기 같은 놈들아! 이 광선불로 다 볶아버릴 테다!” 
쥐불 놓아 논밭 태우듯 오르트들의 죽음은 벌판처럼 쓰러졌다. 그러나 접시로 강물 퍼내듯 표시가 나지 않았다. 하델과 부하들이 아무리 죽여도 오르트의 숫자는 줄지 않고 금방 채워졌던 것이다. 
오히려 뒤에서 밀려드는 병력으로 더욱 늘어날 뿐이었다. 처음에는 하델의 기세에 눌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던 오르트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르트들에게는 그렇게 협곡 안으로 밀려들어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흥얼흥얼, 우리는 죽는 거 안 무섭다. 술이나 한 잔 더 줘.” 
오르트들이 한 잔만 마셔도 취하는 술을 마시고 전쟁에 투입되고 있었다.
“술 더 없어?”
“야, 여기가 네 놈이 외상 긋는 단골 술집인지 아니? 술은 없고 이거나 먹어라!” 
하델의 부하들은 마구 쏘아 댔고, 오르트들의 죽음은 산이 되어 쌓이고 추풍낙엽이 되어 허공에 깔렸다. 그러나 술 취한 오르트들은 수없이 죽어가며 해적별에게 메뚜기 떼가 붉은 수수밭을 뒤덮듯 달라붙었다.
“아, 아.” 
아무리 죽여도 소용없는 좀비들처럼 오고 또 오는 오르트들에게 점점 하나씩 둘씩 해적별들은 부스러기조차 남기지 못하고 캄캄한 허공 속으로 사라져갔다.
“나의 해적들아, 조금이라도 더 버텨!” 
피투성이의 하델이 악마의 절규처럼 고함을 뿜어냈다.
“하델, 이 놈. 내가 벌하여 주마!” 
어두운 허공에서 차가운 소리가 들리더니 흑빛 유니콘을 타고 오르트 대제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자 어둠 갈라지듯 하델 앞에 있던 오르트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네 놈이 나를 배신하고도 모자라 내 앞 길을 가로 막는 이유가 뭐냐?”
“흐흐흐, 나는 혜성이 되면 대제가 말한 것처럼 시간의 자유를 누릴 줄 알았지예. 그런데 나는 대제의 유목민이었시요. 아니 노예가 되어가고 있더라고요. 여기 이 오르트 조무래기들처럼. 흐흐하하하!” 
하델의 호탕하고 걸걸한 웃음과는 달리 오르트 대제의 얼굴은 차가운 얼음장처럼 변했다.
“이런 찢어 죽일 놈!” 
오르트 대제는 광선검으로 하델을 내리쳤다.
“으으.” 
하델이 예상하고 재빠르게 피했으나 푸른빛 검기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깨부터 살이 타기 시작했다. 불꽃과 연기가 나며 타들어 가는 것이었다.
“에잇, 퓨퓨퓨퓨, 퓨슝.” 
하델도 대제를 향해 광선총과 광선포를 쏘아 댔다. 그러나 흑빛 유니콘은 바람보다 먼저 움직였고 어떤 때는 빛보다 빨랐다. 그리고 총을 맞아도 대제의 갑옷이 튕겨 낼 뿐이었다.
“감히 나에게 대들어? 이 놈!”
“으아.” 
이번에는 광선검에 무릎이 그어졌다. 무릎에서 불꽃연기가 타들어 갔다.
“퓨퓨, 퓨슝.”
“아직도?” 
대제는 하델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흐윽!” 
온몸이 피투성이고 불꽃으로 타들어가는 하델이 털썩 쓰러졌다. 꼼짝 않는 것으로 보아 죽은 것 같다. 살타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질긴 놈!” 
대제가 허공에서 하델 앞으로 내려섰다.
“퓨슝!”
“히히힝!”
“앗, 이 놈, 죽어랏!” 
죽은 줄 알았던 하델이 마지막 힘을 다해 광선포로 흑빛 유니콘의 뿔을 끊으며 대제의 얼굴을 찢은 것이다. 
“키드라, 잘 부탁한다. 으.” 
하델이 마지막 말을 허공으로 남길 때, 대제가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여봐라, 이 놈을 남김없이 발기발기 찢어버려라!” 
오르트 대제는 얼굴을 감싸 쥐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대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르트들은 하델에게 불개미 떼처럼 빈틈없이 달라붙어 하델의 뼛가루조차 남겨 놓지 않았다. 하델의 해적들은 두목의 전사를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자가 한 명도 없었다.
“해왕성에서 후퇴!” 
태양훈육관장과 수비대는 오르트의 위세를 두려워하며 달아났다.
“이 동네 해적놈들 때문에 지체되었다. 진격하라!” 
오르트들은 서쪽의 우주 협곡을 가득 메우며 동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맨 앞에는 왕눈깔이 날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시력과 비행 능력을 인정받아 오르트가 되는 조건으로 사면되었다.
“나도 공을 세워야지.”

천왕성으로 진격 
“지구에 언제 달이 24개나 있었지?” 
왕눈깔은 1급 첩보원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동쪽을 향해 오르트들의 진격 속도보다 훨씬 앞질러 날며 이곳저곳을 살폈던 것이다.
“아이구 날개야, 좀 쉬자.” 
왕눈깔은 가까운 달로 날아가 가장 높은 산 위에 앉았다.
“한 건 올려야 대제에게 신임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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