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멀리서 보면 태양은 갈대밭 벌판에 놓인 큰 불덩어리 같았고, 오르트들은 벌판을 가득 메우고 휩쓸며 지나가는 들쥐 떼처럼 보였다.
두려움을 모르는 좀비들처럼 오르트들은 태양을 넘어가며 타죽었다. 오히려 부나비처럼 마치 타 죽는 희열을 맛보려는 듯 태양을 향해 몰려들어 전열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이 놈들아, 동쪽으로 가란 말이다!” 
퓨퓨퓽! 이케로가 광선총을 쏘아대도 오르트들은 꾸역꾸역 태양으로 달라붙었다.
“대제 전하, 큰일났습니다. 이러다 부하들이 모두 태양에 타 죽을 것 같습니다.”
“멍청한 놈!” 
오르트 대제는 울상이 된 이케다의 보고를 받자 유니콘의 엉덩이를 후려갈기며 달려갔다.
“비켜!” 대제는 순식간에 태양 앞에 나타나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빛에 최면 걸린 듯이 달라붙고 타 죽는 부하들을 막지 못했다. 오르트 대제는 장갑을 끼고 투구로 얼굴까지 가렸다. 
“이럇” 
흑빛 유니콘의 고삐를 감아쥔 대제는 빛보다 빠르게 태양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갔다. 이리저리 불덩어리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태양훈육관장의 부하들을 광선검으로 베었다. 대제는 미로 같은 통로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저거구나.” 
태양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천 년 묵은 삼나무보다 굵은 동아줄 심지가 불꽃을 분수처럼 뿜어대고 있었다.
“이얍!” 
대제는 광선검을 수평으로 잡고 유니콘을 달려 불꽃 심지를 베어나갔다.
차츰 불꽃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쿵!” 
마지막 불꽃과 함께 잘려진 굵은 심지는 바닥에 쓰러졌다. 태양은 이제 거대한 숯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대제는 불 꺼진 태양의 수세미 같은 속을 헤치고 밖으로 나왔다.
“태양이 불 꺼졌다!” 
우주 협곡은 암흑의 동굴 속처럼 변했다.
“동쪽으로!” 
어둠에 익숙한 오르트들은 다시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대제는 방향을 바꿔 반대로 날아갔다.
“달들에 불을 밝혀!” 
고로콤은 대제의 지시대로 24개의 달에 불을 밝혔다. 지구에는 잠시 일식이 있었을 뿐이었다. 1시간마다 불 밝히고 떠오르는 달 덕분에 모든 곳이 백야처럼 밝았다. 오히려 어디서나 하늘을 보며 아름다운 커튼 같은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요. 입구 쪽을 향해 서너 줄로 달려오는 잔당들이 보였는데 우리 오르트 군에 한 주먹꺼리도 안됩니다요.”
동쪽 협곡까지 날아갔던 왕눈깔이 돌아와 오르트 대제의 어깨 위에 앉았다. 왕눈깔은 7군단의 창끝 같은 앞부분만 보고 온 것이었다.
“수녀를 지구에 데려다 줘. 그리고 데네브가 어찌 지내는지 알아보고 와.”
“알겠습니다.” 
대제가 엘리사벳을 돌려보내려는 것은 데네브에게 잘 해 주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체 성운과 맞서는 것처럼 보이기가 께름칙했던 것이다.
“부하들의 결례를 용서하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제의 사과에 엘리사벳은 살아 돌아가게 된 것을 알고 눈물을 보였다. 고로콤이 엘리사벳과 왕눈깔을 태우고 비행선을 몰았다.
“왕눈깔, 너 요즘 많이 컸더라.”
“어찌 하늘같은 대장님께 제가 커 보이겠습니까요.”
“너무 크면 대가리부터 잘려. 조심해라.” 
대장 군관 고로콤은 눈꼴신 왕눈깔에게 경고성 발언을 했다.
“음. 수녀님, 저기 서대문 성당이 보입니다요.” 
고로콤의 협박이 관심 밖이라는 듯 왕눈깔은 엘리사벳에게 말을 돌렸다.
“정말이네!”

■ 인공별
“아이고, 어어엉. 태양이 죽었어. 나도 죽어야 해.”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태양훈육관장은 태양이 불 꺼지고 태양계가 암흑천지가 되자 대성통곡을 했다. 그러나 미자르 장군 외에 누구 하나 위로해 줄 처지가 못 되었다. 시야가 어두워지자 오르트들은 더욱 극성을 부리며 3군단 모선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전투 비행선들의 보고 숫자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조명별을 쏘아 올려!” 
모선에서 암흑을 밝히기 위해 수십 개의 백열전구 같은 인공별이 발사되었다.
“엄호하는 동안 잠행하라!” 
자칫 3군단이 전멸 위기에 놓이자 미자르 장군은 모선을 이용하여 격추되지 않은 비행선을 공격하는 오르트들을 사살해 나갔다. 그러면 오르트들이 잠시 주춤하고 물러섰다. 그 틈을 이용해 비행선에 투명 코팅액을 분사하여 시야에서 사라지게 했다. 시동을 끄고 숨는 작전이었다. 남아 있던 비행선들을 잠행시킨 모선은 목성으로부터 멀리 이동했다. 그러자 오르트들이 벌떼처럼 모선을 뒤쫓아갔다. 미자르는 마지막 방법을 찾고 있었다. 오르트들로부터 3군단 비행선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태양별로 들어가!” 
모선은 오르트들에게 쫓기며 우주 협곡을 지그재그로 돌아다니다 불 꺼진 태양 속으로 몰래 들어갔다.
“엇! 시리우스 교수께서 어떻게 여기 계십니까?”
“쉿, 이 안에도 오르트들이 있습니다.”
“소탕하도록.” 
미자르는 작은 소리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나도 알아 줘!”
“욘석아, 조용히 해. 여기는 네가 있으면 안 되는 전쟁터야.” 
스노가 꼬리를 흔들며 크게 말하자, 미자르가 쓰다듬어 주며 귀여워해 주었다. 
"분명히 저 혼자 이곳으로 왔는데, 이 녀석이 저 몰래 따라왔더라고요."
대학으로 돌아갔던 시리우스는 알마크에게 기드로온 왕자를 지켜주겠다고 한 약속과 키드라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지구로 다시 들어가려고 방법을 찾던 중에 알테어로부터 태양이 불 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절망하며 작은 비행선을 타고 태양계를 향해 출발했다. 우주 협곡이 암흑이 되면 우주 군단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이곳까지 온 것이다.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그것보다 오다보니 우주 협곡을 오르트들에게 거의 점령당했더군요.”
“면목 없습니다.” 
시리우스가 한숨 쉬며 말하자 미자르 장군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훈육관장님, 이 별을 제가 운전해도 되겠습니까?”
“끄응, 이 별의 항법 장치를 교수께서 고안한 것 아닙니까? 해 보시오.”
부상 중인 태양훈육관장은 태양이 불 꺼진 것에만 속상해 하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이곳까지 오며 전세를 보니, 창끝처럼 입구를 뚫고 들어온 7군단 선두가 오르트들을 무찌르며 협곡 중앙을 향해 가고 있지만 기세를 유지하게 해 주지 않으면 2군단이 들어오기 전에 고립될 것 같았다.
“장군, 남은 병력이 더 없습니까?”
“목성에 겨우 5개 사단 병력이 살아남아 잠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미자르가 한숨 쉬며 대답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태양을 동쪽 협곡 입구로 이동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 별에 불을 다시 붙일 것입니다. 그 때 장군께서는 모선을 전속력으로 달려 7군단 선두를 목성이 있는 곳까지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태양을 다시 불 붙일 수 있다고요? 어림없는 소리! 항성은 한 번 불 꺼지면 죽은 별이라는 것을 교수가 나보다 더 잘 알잖소?”
“확인해 보니 태양 심지만 잘려 있지 불씨는 아직 남아 있었어요.” 
시리우스와 태양훈육관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자르의 어두운 표정이 밝아지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린 아이처럼 들뜨려 했다. 이 절망에 이르는 암흑 속에서 희망을 가지게 하는 시리우스의 말이 비록 한 가닥 실보다 가늘더라도 매달리고 싶었다. 장군은 우주와 3군단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귀신과도 흥정할 판이었다. 
“가 봅시다.” 
태양 중심으로 벌써 내려가고 있는 훈육관장도 퉁명스럽게 말은 하지만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태양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말에 우주 전쟁의 승패보다 더 절박한 심정이었다.
“후우, 후우. 콜록콜록.”
“지금 불 붙이면 다 죽어요.” 
태양훈육관장이 불씨를 들추며 입으로 불자 시리우스가 놀라며 제지했다.
“알고 있소. 지금 발견했기 망정이지 조금 더 지났으면 불씨도 못 살릴 뻔했소.” 
시리우스는 머쓱한 얼굴이 되어 운전실로 갔다.
“앞으로는 모든 소리를 최대한 낮추어 주세요.”
“가능한 수신호로 전달하도록.” 
미자르가 부하들에게 시리우스의 말을 지시했다. 태양은 아주 조용히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르트들의 빠른 속도보다 조금 느리게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르트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더구나 오르트 대제의 명령으로 이케로가 이끄는 부하들이 모든 별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은 태양에 타고 있는 미자르 일행에게는 천우신조였다.
“7군단이 보입니다.”
“고전하는군요.” 
빽빽한 오르트들을 무찌르며 하얀 오솔길을 내듯 뚫고 나가는 7군단은 용맹하였다. 일당백으로 싸우고 있어 밀물처럼 달려드는 오르트들을 썰물처럼 밀어내며 바다를 갈라내듯 질러나가고 있었다.
“오르트들이여, 적들에게 길을 내어 주지 마라!” 
이케로가 흑마를 타고 분노하듯 7군단의 선두를 향해 달려갔다.
“지금인 것 같군요.”
“예, 알겠습니다.”
“알겠소.” 
동쪽 협곡 입구에 불 꺼진 태양이 멈추었다. 미자르는 부하들과 모선으로 올라갔고, 태양훈육관장과 시리우스는 심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준비됐소?”
“심지는 봉합했어요. 불 붙이시죠.” 
확, 훈육관장이 불씨에 바람을 가해 불꽃을 일으키자 불꽃은 거대한 태양 심지를 타고 빠르게 기어 올라갔다.
“출발!” 
태양이 다시 이글거리며 불타는 것과 동시에 3군단 모선은 7군단 선두를 향해 날아갔다.
“태양이 다시 불탄다!” 
우주 협곡에 있는 모두가 태양을 바라보며 외쳤다. 
“태양이다.” 
동쪽 협곡으로 밀려들던 오르트들이 모두 태양에 몰리며 타 죽어갔다. 얼마나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기를 갈망한 것일까? 저들은 어둠 속에서 죽지 않고 빛에 타 죽게 되어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르트들은 어둠의 천체에서 빛의 천체인 우주로 얼마나 나오고 싶어 한 것일까? 
“진군하라!”
“와와!” 
동쪽 입구가 크게 뚫리자, 7군단에 이어 2군단이 협곡 안으로 물밀 듯이 밀고 들어왔다. 오르트들은 전투보다 태양에 몰려들어 타죽기 바빴다. 태양은 그냥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굴러다녔다. 우주 군단에게 길을 만들어주며 오르트들을 태워 죽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 7군단은 목성까지 다다라 3군단과 합세하여 오르트들을 밀어붙였다.
“어떤 놈인지 살려 두지 않으리라!”
오르트 대제가 대노하여 흑빛 유니콘을 타고 질주하듯 태양으로 달려왔다.
“이 놈, 나오거라, 죽이겠다!” 
대제는 전속력으로 태양의 중심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딜!” 
하얀 창날처럼 오르트 대제 앞을 가로막는 비호같은 자가 있었다.
“아니? 알마크 대총독!” 
대제는 천천히 투구를 벗었다.
“오르트 대제!”

■ 한 곳을 함께 바라보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북쪽 허공에서 빛보다 빠른 결투가 벌어지고 있다.
“죽일 놈!”
“나쁜 놈!” 
광선검끼리 불꽃 튀며 오십 합을 겨루어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내 딸을 지구에 버렸어?”
“죄를 뉘우치지 않고 쳐들어 와?” 
흑빛 유니콘을 탄 오르트 대제와 흰 유니콘을 탄 알마크 대총독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상대를 제압하려 공격해 갔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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