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대제님을 위해서는 잘 된 일이지요.”
“무슨 뜻이오?” 
오르트 대제는 귀가 솔깃했다.
“그들도 할 얘기가 있더군요.”
“좀도둑 같은 놈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소?”
“알마크 대총독님은 양지만 있었기 때문에 음지의 이야기를 들을 줄 모릅니다. 대제께서는 양지와 음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해적들을 무시하던 대제는 시리우스의 말을 듣더니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 모습에 힘을 얻었는지 시리우스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로에게 닫힌 귀를 열고 이야기를 나누면 이 엄청난 죽음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요?”
“교수는 우주에서 내가 살육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유일한 분인 것 같소. 지금 나를 나약하게 만들려고 오셨다면 돌아가 주시오.” 
오르트 대제는 우주의 별들을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리고 말했다.
“대제께서는 한때 우주에서 알마크 대총독님보다 더 존경을 받았어요. 저 역시도 신의 편보다 별의 편이던 대제를 존경했지요.”
“쾅!” 홱, 대제는 다시 돌아서서 시리우스 앞에 놓여 있는 테이블을 손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 결과 나는 신에게 쫓겨났고 당신들에게 저주받으며 살고 있단 말이오!”
“대제께서는 당신을 존경하던 별들을 살육하실 분이 아니에요. 진짜 별들을 사랑하고 우주를 사랑한다는 것을 별들과 신에게 증명해 보이려는 거예요. 그러나 말로는 아무도 그것을 인정해 주거나 기회를 주지 않아 피눈물보다 더한 슬픔을 억제해야 했지요. 그러다 분노만 키워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하려고 전쟁을 단행한 거예요.”
“그만, 그만! 그만하시오!” 
듣고 있던 대제는 머리를 싸매며 몸이 산산히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분노에 부들부들 떨었다. 시리우스는 일어나 대제에게 다가가 안아 주었다.
“놓으란 말이야!” 
오르트 대제가 몸을 뿌리치자 시리우스가 허공으로 던져져 벽에 부딪치며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교수!” 
대제는 쓰러져 있는 시리우스에게 황급히 달려갔다.
“정신 차리시오.” 
시리우스의 이마와 손등에서 피가 흘렀다. 대제는 자책했다. 지금까지 누가 그를 안아 준 적이 없었다. 아니 그가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리우스가 오르트 대제를 안아 준 것이다.
“으으. 괜찮아요.” 
시리우스는 대제의 손을 잡고 겨우 일어나며 희미하게나마 웃어 보였다.
“미안하오.” 
대제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은 처음 밖으로 나왔다(속으로는 데네브 때문에 수도 없이 그 말을 하며 살아왔다.). 시리우스는 대제의 부축을 받으며 그녀가 앉았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계속 이야기해도 되나요?”
“좀 누워서 치료를 받으시는 게 어떻소?” 
통증을 견디고 있는 시리우스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대제는 한숨을 쉬었다.
“저 아무렇지 않아요. 대제께 힘이 되고 싶어요.”
“교수는 대체 누구 편이요?”
“양쪽 모두.” 
오르트 대제는 어이없어 했다.
“당신 같은 이가 어떻게 한심한 카니스 밑에 있는지 모르겠소?”
“제가 더 한심할 수도 있지요? 호호.”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주는데 오르트 대제는 그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오랜 세월 잊고 살던 여인의 모습을 시리우스에게서 보고 있었다.
“교수는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오?”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대제님과 함께 찾아보려고 해요.” 
그 동안 오르트 대제의 얼음장 같던 모습은 눈 녹듯 녹고 있었다.
“어떻게?”
“그 방법을 생각해서 다시 찾아뵐게요. 대제님께서도 생각해 주세요. 그럼.” 
시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쪽 협곡 쪽으로 돌아갔다.
“대제 전하, 드리지 못한 보고가 있습니다.” 
대장 군관 고로콤이 보고를 신청했다.
“뭔데?”
“지난번에 아틀란티스 우주 박물관장이 지구에 간 장소는 1급 기밀 표시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것을 옮겨가려다 실패했다는 정보입니다.”
“왜 이제 보고해!”
“죄죄송합니다. 앞으로 확실히 하겠습니다!” 
고로콤의 보고를 잠자코 듣고 있던 대제는 호통을 쳤다. 하지만 워낙 전투가 치열해서 보고할 틈이 없었을 거라고 이해했다. 지금 대제의 마음속에서 훈풍의 바람이 일고 있었다. 전에 같으면 고로콤이 곤욕을 치렀어야 하는 절차 과정이 생략된 것이다.
“황금여우를 불러 와.”
“옛!” 
황금여우가 겁에 잔뜩 질린 듯 눈알이 가라앉을 듯이 이리저리 살피며 종종거리고 나타났다.
“1급 기밀 표시의 가치를 계산해 봐.”

■ 휴전
“이마와 손은 왜 다친 거요?” 
우주 군단으로 겨우 돌아온 시리우스를 보며 알마크는 오르트 대제를 의심하듯 물었다.
“넘어진 거예요. 이제 휴전하시죠?” 
시리우스는 고통을 참느라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알마크에게 엉뚱한 제의를 했다.
“휴전이라니? 오르트 대제가 들어 줄 리도 없지만 나도 그럴 생각이 없소!” 
알마크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반대했다.
“우주는 지켜야 할 게 많지만 저주 받은 오르트들은 잃을 게 없어요.”
“그야.” 
시리우스 말에 알마크는 찔끔했다. 이 전쟁은 하면 할수록 오직 우주의 희생만 키우는 것이었다.
“흠, 어떻게 휴전하자는 거요?” 
알마크는 잠시 머뭇거리다 시리우스의 말을 들어보려 했다.
“저들을 인정해 주고 저주에서 풀어 주자고 절대자께 간청하는 것이에요.”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요? 나는 못하오.” 
시리우스 말에 알마크는 펄쩍 뛰듯이 반대했다.
“그럼, 제가 성체 성운에 갈 테니까 동의만 해 주세요.”
“저 놈들이 지금까지 저지른 만행을 알면서 그런 생각이 드시오? 절대자께서는 오르트 대제를 용서하시지 않을 거요. 그러다 교수까지 경을 치오.” 
시리우스는 답답했다.
“조금의 실수나 잘못도 끔찍이 두려워하는 알마크 대총독님! 당신의 그 숨 막히는 완벽주의가 아들까지 얼마나 슬프게 하고 있는지 잘 알잖아요! 우주를 그렇게 슬픈 별로 채우고 싶어요?”
“아니 교수, 왜 그러시오?” 
시리우스가 퍼부어대자 알마크는 당황했다.
“좀 더 차분히 생각해 봅시다. 교수의 의견을 신중히 검토하겠소.” 
알마크는 시리우스를 다독거리며 한 발 물러섰다. 
“군단장들 불러.”
“옛!” 
부관은 총사령관의 지시대로 2군단과 3군단과 7군단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대로 끝까지 혈전을 벌이면 아군이든 적군이든 거의 다 죽어야 할 것이요. 만에 하나 우리가 패전하는 날에는 우주의 대재앙을 막을 길이 없소. 상황에 따라서 휴전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만전을 기해 주시오. 이의 있소?”
“총사령관님의 지시대로 대비하겠습니다.” 
군단장들은 회의를 마치고 돌아갔다.
“교수는 좀 쉬시오.”
“감사해요.” 
알마크는 이제 됐느냐는 듯이 시리우스의 마음이 편해지도록 배려하자, 시리우스는 미안하다는 표정의 얼굴로 고마워했다.
“그럼 제가 다시 다녀올게요.”
“그럴 필요 없소. 내가 직접 휴전 제의를 하겠소.” 
알마크는 시리우스가 또 갔다가 다쳐서 올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먼저 제의하는 것이 굴욕이지만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다.
“뭐? 알마크 대총독이 휴전을 제의했어? 그럴 리가?” 
오르트 대제는 뜻밖의 보고를 접하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단 받아들여.”
“옛!” 
휴전 장소는 지구 북극점 위로 정해졌다. 우주 군단에서는 알마크를 도와 시리우스가 배석했고, 오르트에서는 왕눈깔이 대제의 어깨 위에 앉아 나타났다. 왕눈깔은 데네브가 있는 곳을 보고한 이후 대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대제의 요구 조건을 절대자께 재가 신청을 할 것이오.”
“그때까지 지금 위치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침범하면 휴전은 깨지는 것이오.” 
휴전은 합의되고 잠시도 멈추지 않던 총성 소리도 조용해졌다.
“아들아, 시리우스가 재가를 받으러 성체 성운으로 가고 있다.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니 지구에서 그만 나가거라. 이곳은 매우 위험해질 것이다.”
“아버지, 재가를 하시지 않으면 1급 기밀 표시를 오르트 대제가 가져갈 것입니다.” 
절대자가 북수동 성당에 찾아와 그냥친구를 성체 성운으로 데려가려고 종용하고 있었다.
“허허, 그놈이 또 못된 짓을 하려 하는구나. 더 큰 죄를 물을 것이다.”
“저는 어떻게든 1급 기밀 표시를 이곳에서 지킬 것입니다. 저를 살리시려면 재가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용서해 주시면 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그냥친구는 눈물로 절대자에게 간청했다.
“너는 에덴의 동쪽으로 가지 말라한 뜻을 알았더냐?”
“네, 지구가 에덴의 동쪽이라는 것을 안 것 같습니다.”
“에이이, 그리 일렀거늘.” 
절대자는 아들을 야단치지 못하고 성체 성운으로 돌아갔다. 자칫하면 손과 발에 못 박힌 것보다 끔찍한 일이 아들에게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리우스라고 했나?”
“네, 성하.” 
절대자 앞에서 무릎 꿇은 시리우스는 떨고 있었다. 그녀가 떨고 있는 것은 두려움도 있지만 그것보다 재가가 꼭 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다.
“의장도 휴전 내용을 알고 있는가?”
“죄송합니다. 제가 자청했습니다.” 
시리우스가 이곳으로 오기 전 알마크는 휴전 담판 중에 카니스 의장에게 내용을 전달했었다. 그러나 카니스는 총사령관이 결정할 일이라며 발뺌을 했다. 휴전은 곧 우주 군단에게 패전과 다름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책임지는 역할에서 빠지려 한 것이다.
“알마크 총사령관은 전장에 있어야 하니까 대신 왔다는 말이지?”
절대자는 약간의 고민이 있는 듯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1급 기밀 표시를 지켜 줄 수 있어?”
“뜻을 받들겠습니다.” 
사실은 절대자의 아들이 그곳에 있으니까 우주 군단이 보호해 달라는 뜻이었다.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재가했어. 가져 가.”
“감사합니다.” 
시리우스는 넘치는 눈물을 가리지 못해 절대자에게 보이고 말았다.
“누가 사람의 흉내를 내라 했는가?” 
절대자는 꾸중하며 시리우스를 내보냈다.
“이모, 왜 자꾸 울어? 야단맞았구나? 성하 할아버지 미워.” 
성전 밖에서 어미 유니콘과 함께 기다리던 스노가 물었다.
“가자.” 
시리우스는 흰 유니콘을 타고 우주 협곡으로 날았다. 그 유니콘은 알마크가 내어준 것인데 스노가 떼 부리며 어미를 따라왔던 것이다.

■ 하늘에서 내려온 그물
“계산이 안 나올 만큼 비싼 가치입니다요.”
“그래? 공 한 번 세워보자고.”
대장 군관 고로콤은 황금여우에게 권하고 있었다. 황금여우는 고로콤이 제공해 주는 자료를 받아 1급 기밀 표시에 대한 가치를 계산하다 숫자가 나오지 않자 그렇게 말한 것이다. 고로콤은 이참에 공을 세우고 오르트 대제의 신임을 얻어 왕눈깔을 넘어서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도 한 자리 줄 겁니까요?”
“주고말고.” 
달 밝은 밤에 둘은 거미줄 같은 투명줄로 엮은 그물을 1급 기밀 표시가 있는 곳으로 몰래 내려 보냈다.
그냥친구가 급히 눈빛보석을 찾았다.
“무슨 일이지?”
“방화수류정을 지켜 줘.” 눈빛보석이 그곳으로 달려갔더니 거미줄 같은 그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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