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남부 = 서울뉴스통신】 김인종 기자 = 양귀자님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양귀자 작가님의 글은 ‘원미동 사람들’이다. 부천시 원미동이라는 실제 존재하는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도심의 한복판에서 밀려난 어려운 사람들의 생의 애환을 그렸다기에 더 정감이 갔다. 그리고 님의 문장력에 반했다.

님은 상당히 밀착감 있고 간결한 문체로 읽는 이의 마음을 사색의 바다에 빠뜨린다. 달리 표현하면 님의 글엔 숨을 쉴 여유조차 주지 않는 흡인력이 있다. 어쨌거나 나는 원미동 사람들을 통하여 작가의 작품에 빠져들기 시작한 이후, ‘나는 소망 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과 ‘천년의 사랑’ 등도 연이어 읽었다.

최근에는 ‘한계령’을 읽었다. 이 글을 읽기 전 나는 가수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이라는 노래가 주는 적막하고 청량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그 노래를 들은 후의 여운으로 나는 한동안 맘이 울적했다. 그러던 중 한계령이라는 같은 제목의 소설을 접하게 되자, 노래에 묻어 있던 감성들이 더해져 한껏 더 깊은 여운을 갖게 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이 세상에서 아나로그의 삶을 살아가듯 버거운 삶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은 나를 지난날의 회상에 젖게 했다. ‘한계령’의 줄거리는 여자가 가스레인지 앞에서 음식을 끓이다가 한 통의 전화를 받는 일로 내용이 펄쳐진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뜻밖에도 고향인 전주의 철길 옆 동네에 살던 국민학교때 친구 박은자였다. 은자의 집은 몹시 가난했고 은자의 아버지 또한, 특이한 내면의 세계를 안고 있어 더 불행한 삶을 살았던 친구 은자, 하지만 은자에게는 ‘검은 상처의 블루스’라는 노래를 가수못지 않게 잘 부르는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생활이 어려운 은자가 작곡가에게 떳떳이 노래 한 곡을 받는 일은 꿈만 같은 일이기에 은자는 힘든 삶을 견디지 못하고 야반도주를 한다는 이야기다.

줄거리를 더 이어가면 전화기 속의 은자는 자신을 클럽이나 스탠드바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나 박’이라고 불리는 밤업소 인기 가수라고 자랑스러운 듯 열변을 토한다. 밤무대 가수가 친구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면 자기가 일하고 있는 클럽에 꼭 한 번 와 달라는 부탁을 한다. 하지만 여자는 내내 고향에 대한 어린 날의 기억을 회상하면서도 은자를 찾아갈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마침내 일요일 밤에 펼쳐질 ‘미나 박’의 무대를 찾아 길을 나선다. 여자는 현란한 조명 속에서 취객들 곁에 앉아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는 여가수를 바라본다. 하지만 여자는 그 가수가 은자라고만 짐작할 뿐 다가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잊어버려야 할 시간들이, 한 줄기 바람처럼 살고 싶은 순간들이 있을 거라고……. 집에 돌아온 여자는 비로소 자신이 만난 여가수가 은자였음을 마음으로 더 확신한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낙엽처럼 행인들 발길에 채이며 힘겨운 세월을 살았을 은자, 지난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가녀린 어깨를 흔들며 곰팡내 나는 현실의 벽을 떨쳐버리려 애쓰던 은자의 모습에 가슴 한켠이 무너져 내려왔다.

나는 처음 이 소설을 대할 때, 제목이 주는 선입감으로 어쩌면 한국의 자연을 노래했거나 한계령이라는 산을 오르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정도를 주제로 글이 전개될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빗나갔다. 한계령은 단지 가수 양희은이 부른 대중가요의 제목일 뿐이었다.

내게도 지금은 소식이 끊겨버린 친구가 있다. 친구라고 이름 짓기보단 그저 학교 동창 정도로만 여겨왔던 친구다. 하지만 그 친구에 대한 내 마음속 감정은 남다르다. 그 친구를 생각하려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나도 세월의 강물을 거슬러가야 한다. 친구는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다. 국민학교 때는 내가 회장에 출마(?)하는 데 그 친구가 참모 역할을 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친구는 나의 오른팔이 되어 주었다. 힘이 들 때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 같은 친구였다. 나는 친구에게 다정한 눈빛 한번 주지 못했지만 친구는 오롯이 나를 향한 우정에 숭고하다고 표현할 정도의 마음을 다주었다.

친구의 불우한 가정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친구에겐 아버지가 없었고 술집에서 일을 하는 어머니만 있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는 늘 외로웠다. 한없이 착하기만 한 소녀건만 어느 날은 몇몇 아이들과 싸움을 하여 경찰서에 가게 됐다. 그 당시 선생님은 경찰관에게 친구를 용서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친구의 어머니는 달랐다. 경찰관에게 법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마침내 친구는 그 일로 다니던 중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가 졸업을 하던 그 날, 친구가 나타난 것이다. 내게 꽃다발을 건네며 “축하해.”하는 것이었다. 나는 자신이 다니다 만 학교 졸업식장에 나타난 친구 앞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가 일이 년이 지났을까, 거리에서 뜻밖에 그 친구와 또 마주치게 되었다. 고교의 교복을 입은 내 앞에 친구는 까만 정장을 입은 숙녀로 다가왔다. 친구는 명함까지 한 장 건네주었는데 자세히는 모르지만 ‘팀장’이라는 직책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공장의 관리직 같았다. 친구는 내게 악수를 청하며 언제든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줄 테니 꼭 연락을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입시의 분주한 생활에 매어 친구에게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동질감을 찾지 못한 나의 편견이 깔린 의도적 단절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사람은 모두가 다 공평한데 왜 그랬을까 하는 자책도 든다.

세월은 흘러간다.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음에도 만나지 못하는(?) 친구와 나의 삶을 훑어 내리며 세월은 또 그렇게 흘러갈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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