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집을 잊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부지런을 떨었던 2023년 7월의 2주일, 꿈같은 여정이었다. 마다가스키르의 무론다바에서 새벽 5시에 본 에비뉴의 바오밥나무는 장엄해 보였다. 일출과 일몰에 드러나던 바오밥나무는, 뿌리가 하늘로 뻗은 듯했고, 우람한 몸통에 비해 왜소한 가지가 불균형스러웠지만 그래서 더 신비롭게 여겨졌다. 그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던 밤하늘의 총총한 별은, 캄캄한 하늘이라 더 밝았고, 이슬처럼 영롱하게 반짝였다. 맑은 눈망울이 곱다. 가장 원초적인 그런 광경이 마다가스카르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직 비 문명지인 원시의 땅. 전깃불이 없어 별이 더 빛났다. 신발을 신지 못한 아이들을 보고 가엾어서, 내가 너무 부자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흙벽돌로 지은 움막 같은 집, 갈기갈기 찢어진 셔츠를 입고 길 안내를 해준 바오밥나무 마을의 청년에게 운영자가 티셔츠를 벗어 입혀주자 얼마나 환하게 웃던지, 그 진달래 꽃잎처럼 붉게 물든 양볼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대중교통으로 운행 중인 인력거를 보았고, 샌드위치를 나누어주니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오랫동안 들고 서 있던 12명의 아이들, 폐차도 그보다는 나을 것 같은 고물 차를 몰며 새벽이든, 늦은 밤이든 짜증내지 않고 친절했던 운전수들, 우리 차 네 대를 실은 바지선을 물 속에서 밧줄로 끌어 강을 건네주던 단단하고 강인해 보이는 청년들의 구릿빛 몸매도 떠오른다.

아름다운 경관, 멋진 건물, 화려한 실내만 감동을 주는 게 아니었다. 누더기를 걸친 듯한 옷으로 흙담에 기대앉은 꾀죄죄한 모습의 깡마른 중년의 남자, 두 마리의 물소에게 멍에를 씌워 달구지를 끌고 가는 사람들, 화장품 대용으로 얼굴에 하얗게 마손조아니 즙을 바르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던 여인들,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모습들이다.

환상적인 기대는 이상(理想)처럼 아름다운 것, 그러나, 실체는 그저 그랬다. 여행의 기쁨을 가슴 떨리는 절정으로 맛볼 수도 있었으련만 그런 체험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기 전의 기대는 백두산만 하였는데 다녀온 뒤의 추억은 동네 뒷산만이나 했을까? 아쉬움만 머리속에서 맴돈다. 여행 중, 길도 좋지 않았고 이동 거리마저 매우 길었다. 왕복 여섯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며 이동하느라 나흘을 소모했다. 항공기를 기다리는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다. 중간 기착지인 두바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20시간씩을 기다려야 해서 호텔을 이용하기도 했다.

일행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정담을 나누고 싶었으나 그럴 기회와 상대가 없었다. 원주민들이나 외국인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고, 그들이 살아가는 집안의 모습도 보고 싶었으나 그럴 기회가 없었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아이들에게 사탕 하나라도 더 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여행 중에 촬영했던 디카를 마지막 여행 날, 두바이의 산책 중 잃어버린 걸 생각하면 블랙홀에 빠져들어가는 것 같다. 정말 여행이란 환상을 깨러 가는 것인가?

비행기에서도, 버스에서도, 대기 중에도 수첩을 들고 메모하며 명상에 잠기던 어느 시인의 모습을 보며 그런 모습이 투철한 작가의 모습으로 여겨졌다. 일행들의 까다로운 주문이나 의견에도 너그럽게 웃어넘기는 포용력 있는 우리 여행 가이드의 성품도 닮고 싶었다. 여행 중 드론으로 명장면을 촬영하여 배부해 준 다큐 제작자도, 나무에 대해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해주고 영어를 통역까지 해주던 나무 박사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싱어송 라이터인 음유시인도, 마다가스에 봉사활동을 왔다가 우리 여행에 합류한 청년도,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던 여류 시인도 예사롭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오랫동안 회상의 대상이 될 것 같다.

2주의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여 3주 만에 아산의 밭에 가보니, 비가 많이 내려 우리 밭 입구에 세웠던 능소화의 아치 받침대가 쓰러져 있다. 들깨밭 두둑의 멀칭 비닐이 수해로 말미암아 후줄근해진 채, 초라하게 드러나 있다. 면사무소에 수해 신고를 했더니 사진을 촬영해서 달라하여 보내주었다. 동네 분의 도움을 받아 능소화와 받침대를 다시 세우고 콘크리트로 다져 놓았다. 힘들고 씁쓸했다. 황홀경의 다음에 오는 허탈감이었을까.

2024년 1월, TV방송에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라는 프로에 몇 연예인들이 마다가스카르에서 활동하는 장면이 나와 아내와 반갑게 시청했다. 이번 여행에 아내와 동행했기 때문에 틈틈이 여행 이야기를 나눈다. 아마 오랫동안 그 여행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상적인 장면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에서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마래에 사는 것, 그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느니라” 하는 구절이 떠오른다.

 

채찬석 수필가
채찬석 수필가

채 찬 석 / 교육수필가

수원문인협회 회원, 전 연무중 교장

종자와시인박물관 운영위원장

청소년 교육을 위한 수필을 주로 씀

수필집『사람의 발견』외 4권 발간

1986년 <아동문학평론>지 동화평론으로 등단

2012년 제1회 대한민국스승상(옥조근정훈장)

2022년 <수원문학> 본상 수상

 

저작권자 © 서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