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0월 10일 새벽 1시 조금 넘은 시각, 고요하던 방안에 남편의 전화벨이 울린다. 아버님으로부터 온 전화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떨리고 두렵고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소리는 천지마저 흔들어 놓았다. “큰일 났어, 네 엄마가 숨을 쉬지 않아…” 깜깜한 밤은 온통 샛노랗게 변하고 바닥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거려 주저앉고 말았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한밤중에 홀연 듯이 찾아온 것이다. 대충 짐을 챙기고 혼자 사는 둘째 아들에게 전화 걸고 아들 집을 경유하여 세종여주병원으로 달렸다. 어머니는 심폐소생술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끊어진 숨이 잠시 돌아왔다가 다시 끊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병원에서도 이제는 보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숨이 막히고 피를 토하고 가슴에 압박을 느끼고 잠시 멎었다가 다시 핏덩어리가 나오면서 어머니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이제 심장도 제 기능을 다한 듯 다시 뛰지 않는다.

병원에 도착, 어머니는 이미 하얀 포에 덮여 있었다. “여보 답답해요. 숨이 자꾸 막혀요.” 아버지에게 짧게 말씀하시고 체 두 시간이 흐르지 않아서 영영 이별 통보를 해 온 것이다.

“야속하다 야속하다. 야속하다 못해 얄밉다.” 아버님의 그렁그렁 눈물 섞인 목소리에 벽도 천장도 고개를 들지 못한다. 야속한 한 사람은 대답이 없다. 야속하다 못해 얄미운 사람은 웃음도 없다. 아버님의 소리는 허공에 맴돌다 사라졌다.

어머니가 이 세상과 이별하는 밤이 오기 전날 쑥갓을 뜯고, 동네 어르신들께 나누어 드리고, 삶아서 저녁상에 아버님께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낮에는 염색도 곱게 하셨다고 했다. 까만 머리에 편안한 모습으로 잠을 주무시듯 누워계셨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보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아니 보내드릴 수가 없었다. 혹자는 추석 명절 잘 보내시고, 중요한 가을걷이 끝마치고 아프지 않다가 가셨으니 그 또한 복이라 하지만, 이별 준비 없이 보내는 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 한편 슬픔으로 적시는지 이불은 알고 있다.

아들은 목 놓아 운다.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어머니 가지 마셔요. 어머니…” 60 평생 가까이 살면서 지금은 잘못한 것만 생각난다. 지금 용서를 빌지 않으면 영영 그 시간을 놓칠 것 같다. “어머니 말씀대로 우애 있게 잘 지내겠습니다. 아버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잘 모시겠습니다. 어머니.”

여주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매화꽃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명절날 자식들이 돌아갈 때면 언제나 어머니의 저울이 등장하곤 했다. 어머니는 2 식구인 시누이네와, 세 식구인 동서네, 그리고 네 식구인 우리 집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셨다. 어머니의 저울은 사람 수대로 정한 것이 아니라 가정 수대로 정하여 움직였다. 잡채 두 대접씩, 만두 한 봉지, 떡국 한 봉지 등 감사함으로 받을 때 저울은 매우 공평하다고 말했다. 한때는 차별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으나 감사로 마무리 짓는 마음은 행복했다. 시댁에서 집에 온 음식은 더 환영받았고 대접받았다. 작지만 컸고, 적지만 많았다. 소중함과 감사함으로 대하는 마음에서 즐거움도 스며들었다.

추워지기 전에 참깨 털어야 한다고 걱정하셨던 어머니 대신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자가 밭에 나란히 앉아 참깨를 털었다. 어머니는 참깨보다 김장보다 하늘나라 가을걷이가 더 급했나 보다.

지금까지 라면 한 번 끓여 드시지 않았던 아버님은 이제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밥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아들은 주말이면 아버지에게 달려간다.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택배로 주문하고 며느리는 어머니의 저울을 물려받았다.

어머니의 가을걷이는 무엇인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이다. 가족 간의 사랑과 우애, 화목 그것은 어머니의 가을걷이였다.

 

정다겸 시인, 시낭송가, 방송인
정다겸 시인, 시낭송가, 방송인

약력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예협회 시낭송회장

수원문인협회 회원

호원대학교 초빙교수

시집 『무지개 웃음』 『웃음 한 조각』 외

공저 『행복지도사들의 행복이야기』외 15권을 냈음

 

이서등 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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