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백구는 눈빛보석을 등에 태우고 껑충껑충 산을 뛰어넘듯 달려갔다.
서울의 야경은 은하 한 무더기를 모아서 한 군데에 폭삭 쏟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불도 꺼져 있고 조용해.” 
올빼미도 까치도 보이지 않고 어른거리던 해적들의 그림자도 눈에 띠지 않았다.
“내가 들어갔다 올게.” 
백구가 껑충 뛰더니 ‘행복한 집’ 마당에 착지해서 둘러보고 바로 눈빛보석에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돌아왔다.
“은교 봤어?”
“이상해. 아무도 없어.” 
눈빛보석은 주위를 살피며 합목이 있는 곳으로 갔다.
‘‘행복한 집’ 가족 모두 어디 갔는지 알아?’ 눈빛보석이 전음으로 물었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어. 너희 둘뿐이야.”
“어? 등나무가 말을 하네?” 
합목이 전음을 풀고 말하자 백구가 듣고 신기해하였다.
“눈빛보석의 친구니까 믿고 말하는 거야.”
“고마워.” 
백구는 꼬리를 흔들며 혀로 합목을 핥아주었다.
“아이 더러워,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마.” 
합목은 질색을 하며 백구의 친근한 인사를 사양했다.
“은교가 어디 있는지 몰라?”
“어제 ‘행복한 집’ 식구들은 소록도 공연 간다고 내려가서 아직 안 왔어.” 
왜 조약돌을 긁었을까? 설마 해적들이?
“해적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뭐지?”
“모두 수원성으로 갔어.” 
해적들이 은교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눈빛보석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 물어보려고 하는데 합목이 입을 다물었다. 그 다음 것은 비밀 누설이라는 규칙 위반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눈빛보석은 합목을 쓰다듬어 주고 언덕을 내려갔다.
“말하는 나무 친구, 또 봐.” 
백구가 핥아주며 작별하는데 합목의 모습은 너무너무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둘은 서대문 성당으로 갔다.
“어떻게 왔니?” 
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고개도 못들며 엘리사벳 수녀가 말했다.
“왜 우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냐. 일은 무슨 일.” 
그렇게 말하면서도 엘리사벳은 눈물을 계속 떨어뜨리고 있었다.
“은교가 지금 어디쯤 있을지 짐작이 가요?”
“남원쯤 올라오고 있을 거야.” 
“지도를 얻을 수 있어요?” 
엘리사벳이 수녀관으로 가서 지도책을 가져오자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머릿속에 모두 입력해 두었다.
“수녀님, 고마워요.” 
눈빛보석이 백구와 서둘러 성당문을 나서는데, 엘리사벳이 우는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수원 가지 마.”
“나 괜찮아요.” 
눈빛보석은 뒤돌아서 엘리사벳에게 갔다. 그 마음 다 읽었다고 속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백구야, 가자.” 
눈빛보석은 성당을 나서자마자 백구 등에 올라탔다.
“건너뛰어.” 
남쪽으로 껑충껑충 뛰는데 수원이 보이자 그렇게 말했다.
“어디로 가?”
“남원으로.”

[  제 4 부 -1 ]
바람은 끝없이 불고
“북문으로 하델놈들이 쳐들어온다!” 
수원성 북문쪽에서 놀던 까치들이 팔달산 동굴에 알리자, 키드라의 부하들이 개미떼가 굴에서 쏟아져 나오듯 줄줄이 나오며 북문으로 이동했다. 북문을 중심으로 좌우 성곽 위에는 키드라의 부하들이 가득 진을 쳤다. 해적들이라 광선총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거랑말코 같은 놈들아, 여기는 우리가 접수할 테니까 딴 데 가서 놀아라!” 
하모니카가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북문 앞에서 소리쳤다.
“저거 썩은 뻐드렁니잖아, 어리버리 삐쭉이가 언제 군관이 되었어?”
“우리도 행동대장이 죽었으니 누군가는 지휘해야 되는디.” 
키드라 해적들은 막상 진을 쳤지만 총을 제 마음대로 쏘아댔다.
“서문이 본거지가 있는 동굴과 가장 가깝지라요.”
왕눈깔이 하모니카 삐쭉이에게 가르쳐 주자, 곧 명령이 떨어졌다.
“전군, 서문 쪽으로 이동한다!” 
옷은 해적이라 제각각으로 추하지만 2천 명이 넘게 이동하는데도 발걸음 하나 틀리지 않으며 뛰어갔다. 악명 높은 2인자였던 싸이코가 날마다 얼차려로 점검해 놓은 결과였다.
“저것들은 저 쪽에서 안 싸우고 이쪽으로 오고 지랄이야. 아이고, 오줌마려. 나 쉬하러 갈게.”
“나도 같이 가.” 
서문에서 진을 치던 키드라 해적들이 겁먹고 하나 둘 빠져나가 거의 반은 도망쳤다.
“전군, 돌격!” 
하델 해적들은 서문을 열려고 공격을 해댔다. 그러나 서문은 요새였다. 서문의 외문을 열고 들어온 하델의 부하들은 내문과 외문 사이에 갇혀 성곽 위에서 쏘아대는 키드라 해적의 광선총에 속수무책으로 사살 당했다.
“안 되겠다. 성벽으로 올라가라!” 
서문과 북문 사이의 성벽에서는 줄과 사다리로 올라가는 하델 해적들과 위에서 줄을 끊고 사다리를 밀어내며 광선총을 쏘아대는 키드라의 해적들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병력 수가 많고 지휘관이 있는 하델측이 유리해지고 키드라 해적들의 시체만 여기저기 즐비하게 늘어갔다.
“병력이 더 필요합니다. 함락될 것 같습니다.” 
밀리고 있던 키드라 해적들이 다급하게 지원 요청을 했다.
“행동대장 바꿔!”
“남쪽에서 임무 수행 중 별동대와 함께 전사했습니다.”
“이이런 제기랄! 여섯그만 바꿔 봐.” 
키드라는 울그락불그락해서 수리부엉이를 불렀다.
“다리가 부러져서 동굴 안에서 목발 짚고 있습니다.”

“애꾸눈에 병신까지 가지가지한다.” 
키드라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코털을 뽑는 버릇이 있다. 코털을 불어 ‘후’ 불어 떨어져 있는 곳에 서 있는 부관에게 명령했다.
“알박아, 너란다. 애들 만 명 데리고 내려가 하델 조무래기 싹 쓸어버려!” 
키드라는 북극문을 다시 뚫고 대군을 수원성으로 내려보냈다. 전세는 곧 역전되었다. 신무기까지 동원된 키드라 대군의 공세에 밀려 하델 해적들은 안양까지 후퇴했다.
“뭐야! 키드라가 시방 나하고 해 보자는 것이여? 우리는 이만 명 내려보내.” 
하델의 대군은 적도 상공을 째고 들어와 다시 북문 앞에서 서문 앞까지 집결했다. 지구 최대의 레이저쇼처럼 공방전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벌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수많은 사상자가 쌓여 크고 작은 언덕이 늘어만 갔다. 어느 쪽이든 불리해지면 하델 해적별과 키드라 해적별에서 병력을 보내 증강시켰다(별들의 전쟁은 인간들에게 바람 부는 날로 인식된다. 기상 이변이 있는 날은 이처럼 대전투가 벌어지는 날이다. 지금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바람이 몹시 부는 밤일 것이다.).
“시리우스님, 해적들이 대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눈빛보석이 무사한지 살펴봐.”
“남원에 있습니다.” 
시리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기도하는 자세가 되어 두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늘이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알테어에게 알려 줘.” 
해적들의 싸움은 우주 경비선의 두 우주 전사의 감당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기 때문에 우주 국경 수색 대장에게 알려 준 것이다.
“스노가 어디 갔지?” 
부상당한 것에서 회복되자마자 뛰쳐나간 것이다.
“와, 근사하다. 재미있겠다.” 
우주 경비선을 뛰쳐나갈 때는 은교를 찾으러 나갔는데 못 찾자, 백구를 만나 은교가 데네브 같다는 말을 전해 주려고 수원 행궁으로 가는 중이었다.
“스노, 빨리 안 들어와!” 
시리우스가 호출기로 소리쳤다.
“에이, 교수 이모는 엄마하고 똑같이 잔소리쟁이야.” 
난무하는 레이저빔 한 줄기만 스쳐도 치명상을 입을지도 모르는데 천덕꾸러기는 그 근처에서 쇼 구경하듯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빨리 안 들어오니?”
“알았다니까. 교수 이모 미워.” 
스노는 투덜거리며 우주 경비선으로 들어갔다.
남원으로 달려갔다 은교를 찾지 못하고 수원으로 돌아오던 백구와 눈빛보석은 눈  앞에 벌어지는 불바다 전투에 크게 놀랐다.
“팔달문 친구들이 걱정이야.”
“꽉 잡아.” 
백구는 눈빛보석을 태운 채 빗발치듯 뿜어대는 광선총을 이리저리 피하며 팔달문으로 달렸다. 가까스로 대청마루에 올라갈 수 있었다. 동물 친구들은 몰아치는 돌개바람에 날려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 기둥과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눈빛보석은 재빨리 팔달문 대청마루에 투명 보호막을 쳤다.
“휴, 살았다.”
“희안하네? 우리가 있는 대청마루만 태풍이 멈췄어.” 
노랑가슴이 웃으며 눈빛보석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해 줬다.
“야, 너희 둘. 태풍에 날려갔을까 봐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맞아, 밤중에 말도 안 하고 돌아다니냐?” 
들어도 싫지 않은 짜증들을 한 마디씩 했다.

기억 상실
비바람 몰아치는데 등나무 아치문으로 ‘행복한 집 연극단’ 미니버스가 들어가고 있었다. 분홍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간 차에서는 한동안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은혜야, 지수야, 애들 좀 챙겨.” 
원장이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름 부른 두 아이는 나이가 가장 위인 중학교 3학년 여자아이들이었다. 처진 어깨들이 하나 둘씩 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아이들도 비를 그대로 맞으며 들어갔다. 마리아 원장은 운전석에 앉아 내릴 줄을 모르고 있다. 비는 점점 더 소리 내어 퍼붓고 있었다.
“엄마, 전화왔어요.” 
은혜가 현관 밖으로 다시 나와 우산 들고 뛰어오며 소리쳤다.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렸는데 원장의 얼굴은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 안 되며 흠뻑 젖고 있었다. 차라리 이 빗물에 빠져 쓸려 내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 생때같은 애들을 두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슬픔이 원망스러웠다. 은혜가 우산을 씌워 주며 원장의 왼팔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따르릉.” 
전화가 끊어졌다가 다시 왔다며 지수가 바꿔 주었다. 아이들도 방에 들 가지 않고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여보세요?” 
젖은 목소리를 억지로 훔쳐내며 원장이 수화기를 받았다.
“나야. 범진인데, 그냥 목소리만 들어. 은교 나한테 있으니까 퇴촌에 와서 전화해. 나갈게. 딸깍.” 
마리아는 수화기를 든 채로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 왜 그래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니다. 구청에서 방문하라는구나. 너희들 배고프지?” 
정신을 가다듬은 원장은 내색하지 않고 부엌으로 갔다. 범진이 목소리만 들으라고 한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혼자만 오라는 것이었다.
“얘들아, 옷들 벗고 씻어!” 
은교가 없으니까 은혜와 지수가 역할하려고 아이들을 챙기고 있었다.
“살아 있구나. 주님, 감사합니다.” 
마리아는 싱크대 앞에서 두 손을 꼭 모아 쥐고 기도했다. 어떻게 해서 범진 스님에게 가 있는지 모르지만 둘도 없는 친구이기 때문에 무조건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식사하고 빈 그릇들 부엌으로 갖다만 놔. 다녀올게. 장도 보고 오려면 늦을지 모른다.” 
원장은 아이들에게 늦은 점심을 차려 주고 미니버스에 올라 서둘러 운전했다. 비는 여전히 퍼붓고 있었다. 퇴촌에서 전화를 하자, 20분쯤 뒤 낡은 차가 나타나더니 유리문이 내려지며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범진 스님이었다. 한적한 좁은 길로 뒤따라간 곳은 산 중턱에 있는 작은 절이었다.
“은교야!”
“쉬이, 이제 조금씩 회복 중이야.” 
눈물을 펑펑 쏟는 마리아가 누워 있는 은교의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자 범진이 가볍게 제지했다.
“얘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니?”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산중에 은교 혼자 왜 쓰러져 있었는지. 그것도 밤에.” 
마리아는 어제 저녁에 벌어진 일을 범진에게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했다. 범진도 은교가 이곳까지 오게 된 뜻밖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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