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봅니다
가을이 마흔 번을 넘게 지나갔습니다

댓잎처럼 서걱거리며
잠 못 들던 바람도
만월 아래 자지러지던
풀벌레들 성애소리도
푸른 비늘
뚝뚝 떨어지던 하늘도

문득,
시시해 졌습니다

 

김운기 시인

약력

수원문인협회 이사

한비문학 작가상

미당서정주 시회 문학상

『맹자외 서』번역서 및 시집 다수

 

시평詩評

시인의 마음을 불현듯 건드린 가을이 주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산국이 피는 시간 멀리 물안개를 품은 강가에서 서걱이는 갈대소리를 들어 본적 있나요?

묵묵한 낙엽의 저물어 가는 탄식을 들으려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느낄 형체 없는 무위의 시간 위에서 시린 날들에 대한 물음표의 향방을 당연히 물어 보리라 여겨집니다.

오늘 김운기 시인의 시어 한 자락이 쿵 하고 심금을 울립니다. 뜨겁게 사랑하고 격렬하게 부딪쳤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명분들이 다 무엇인지요. 불현 듯 생각해 보니 시시할 수 밖에 없는 일상과 소중하고 대단하게 느껴졌던 이러저러한 일들이 가을이란 또 하나의 계절을 넘어가며 가슴에 멍 자욱 하나 남겨 놓습니다.

당당하고 반듯하며 합리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잘 이끌어 내는 마성의 힘을 가진 김운기 시인의 시가 여운이 되어 지면에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순간입니다.

우리 모두 시인이 되어 불혹의 언덕을 멋지게 넘어 보지 않으시렵니까.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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