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신뢰를 바탕으로 철강 해외수출에 앞장서겠습니다”

(주)대원코프 대표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민선8기 수원시는 지난 10월 비전선포식에서 3대 목표 중 첫 번째로 ‘탄탄한 경제특례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기업하기 좋은 경제도시, 편리하고 효율적인 첨단교통도시,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는 청년도시를 향해 22가지 공약사업 또한 제시되면서 수원시의 지역경제에 대한 강한 의지를 알 수 있었다.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은 지난 11월 9일 ‘2022 제8회 수원시 중소기업인 대상’ 시상식을 열고 꾸준한 기술개발과 경영 혁신을 통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며 수원시의 위상을 높인 우수 중소기업인 7명에게 상을 수여했다. 
㈜대원코프는 ‘2022 수원시 중소기업인 대상’ 시상식에서 수출진흥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대원코프는 열연·냉연 철강 코일 제품을 100% 해외로 수출하며 끊임 없이 시장을 개척해 2021년 ‘1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으며, 2022년에는 2천만불에 육박하는 수출 실적을 거둔 ‘수출 효자 기업’이다. 특히, 수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무역협회에서 개최한 ‘제59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대원코프의 윤종원 대표는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전자제품부터 철강에 이르기까지 해외 수출산업에 몸담아 온 베테랑 기업인이다. 1964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그는 천안고등학교, 경희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대기업인 L사에 입사해 1991년부터 해외 영업을 시작했다. 윤 대표는 유럽,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를 누비며 쌓은 경험과 인연을 바탕으로 원자재 수출사업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2009년 2월 수원에서 ㈜대원코프를 창업하며 본격적으로 철강 수출산업에 뛰어들었다.
윤종원 대표는 “수출산업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며 “신뢰를 지켜가며 판매자가 구매자가 같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곧 수출산업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철강비즈니스는 ‘철은 산업의 쌀’이라는 말이 있듯 우리나라 수출 비중에서 중요한 한자리를 차지하는 핵심 먹거리 산업 중 하나다. 중국과 일본, 미국 등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우리나라 철강제품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뛰어난 품질도 중요하지만 철강비즈니스의 중심에서 ‘신뢰’라는 다리를 놓아온 이들의 공로 또한 굉장히 크다. 윤종원 ㈜대원코프 대표에게 철강 수출산업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원시 중소기업인 대상 시상식 현장.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왼쪽)이 윤종원 대표에서 상을 전달하고 있다.
수원시 중소기업인 대상 시상식 현장.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왼쪽)이 윤종원 대표에서 상을 전달하고 있다.

 

 

30여 년 해외 수출 베테랑… ‘신뢰’로 해외수출 판로 개척
2천만불 수출 실적 쾌거… ‘수원시 중소기업인 대상’ 수상

 

▲ 지난 11월 9일 ‘수원시 중소기업인 대상 수출진흥 부문’을 수상했다. 소감은.
소감이랄 것도 없이 그렇게 큰 일이 아닌데도 수원시에서 이런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대원코프의 주요 사업 및 제품들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
대원코프는 국내에서 생산된 철강을 중동,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해외로 수출하는 철강 무역 회사입니다. 저희 대원코프는 2009년 2월 1일 창립되어 지금도 세계에 활발하게 우리나라의 철강 제품을 수출하고 있으며, 품목은 가공수출과 원자재수출 비율이 6:4 정도로 P사 및 가공계열사에서 납품받은 철강 제품들을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 철강 수출 산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L사 유럽·아시아 수출과 관련된 팀에서 전자제품 관련 해외영업을 해왔습니다. 해외 바이어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다가 계기가 되어서 소재 산업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기존에 거래해오던 거래선에 철강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철강 수출 산업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철강 수출 산업에 몸담게 되면서 느낀 점이 철강 산업은 생각보다 상당히 보수적인 분야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반 업체들이 공급을 받기 어려워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죠. 다행이게도 당시 대기업들의 수출이 치중되어있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제가 유럽과 동남아 쪽에서 해외영업을 했던터라 그 경험을 살려 그들이 수출을 하지 못했던 곳에 판로를 점점 확장해 나갔습니다. 철강은 전세계 시장이 굉장히 크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가장 큰 문제는 구매이지 판매가 아닙니다. 어떻게 적절한 시점에 물량을 확보할 수 있냐의 싸움인 것이죠. 그렇게 조금씩 신뢰를 붙여나가게 되면서 철강 수출 산업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 해외시장을 개척해 지난 2021년 ‘1천만 불 수출탑’을 수상하고, 올해도 2천만불에 육박하는 수출 실적을 올렸다. 수출 성장의 비결은.
올해는 아쉽게 2천만불탑을 놓쳤지만, 한국무역협회에서 개최한 ‘제59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습니다. 올해 30만불 빠진 2천만불 정도를 수출을 했는데, 비결이랄 것도 없이 편하게 이야기 하자면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출 성장의 비결은 무엇보다 ‘거래선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거래선들과 거래를 이어온지 10년이 다 넘었는데, ‘신뢰를 지켜가면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 곧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사는 자기 혼자 성장해도 되지만, 사업은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선 안되고, 성장을 하려면 같이 할 수 있는 걸 해야합니다. 지금 대원코프의 거래선들을 보면 저희보다 더 많이 성장을 했습니다. 이처럼 함께 성장하고 따라서 우리도 끊임없이 물량을 공급해줄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수출 성장에 있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수출에 큰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한 것에 대해서 지키고 신뢰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역 업계에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은 인도의 노프라블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나 철강비즈니스는 사는 사람은 돈을 보내고 제품을 받기 전까지 노심초사해야하는 그런 산업입니다. 같이 술먹고 그런 것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저는 제품을 수출하기에 앞서 항상 크로스체킹을 통해 일정을 확인하고 24시간 안에 가능여부에 대해 답변을 줍니다. 스스로 돈을 받고서도 항상 두려움을 가집니다. 물건이 문제없이 나가야하고, 그렇게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정말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래선들과 그 약속을 계속 지켜왔던 것이죠.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씩 쌓아나가다보면 신뢰가 생기고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수출을 위해 발로 뛰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수출을 한 30년 동안 하다보니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유럽과 동남아에서도 근무를 했고, 지금은 서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 쪽에 수출을 하고 있죠.
한 번은 예멘에 전쟁이 발발해 중앙은행이 폐쇄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무역공사에서도 선적국보험을 빨리 신청을 해서 보험금을 받아가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미 대기업인 S사나 L사는 다 수령해갔다고 빨리 보험금을 받아가라고 얘기를 해주는데, 저는 그 보험금을 받았다는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적국보험을 신청하지 않고 거래처인 사우디에 직접 연락을 했습니다. 사우디 거래선측에서 ‘걱정하지 말라’라고 답을 해줬습니다. 어떻게 됐나 했더니 사우디 측에서 신용장을 무시하고 30만불을 현찰로 다 보냈던 것이었습니다. 무역공사에서도 깜짝 놀라 이런 거래선이 있냐는 반응이었죠. 그래서 제가 “중동 사람들은 자기가 부채가 있으면 3대가 갚아나간다. 그정도로 신뢰가 있는 사람들이다” 설명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무역공사에서 한동안 화제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또, 제가 방글라데시에 10년 넘게 거래하고 있는 거래선이 있는데, 지금은 그 나라의 3대 빅메이커로 성장한 기업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P사의 부장이었던 분께 전화가 와서 “그 거래선과 대체 무슨관계냐”고 물어보더라구요.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방글라데시의 거래선이 거래 물량이 꽤 크다보니 우리 회사 모르게 직접 거래를 제안했던 것이었습니다. P사의 부장이 거래선에 직접 찾아가 거래를 제안했는데 그쪽 사장이 말하기를 “한국에서나 P사가 유명하지 우리는 거래선이 한국도 있지만 일본도 있고 중국도 있고 인도도 있다. 우리는 구매할 곳이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P사는 모른다. 대원코프라는 회사밖에 모른다. 그래서 나는 대원코프와고만 거래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은 없었는지.
코로나19로 인해 서남아시아·동남아시아 쪽 해외 은행들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 수출대금이 제때 들어오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은행들이 일주일, 한 달씩 문을 닫기도 했죠. 돈을 아예 받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지연이 되다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철강 수출을 15년하면서 무역보험공사에 보험 청구한게 한 번도 없었는데, 그만큼 우리 거래선들이 신뢰를 지켜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대원코프의 새해 목표가 있다면.
내년부터 내후년은 다들 알다시피 경기가 후퇴하고 모두가 힘든 터널을 지날 것 같습니다. 2022년에는 저희 대원코프가 200억 정도 수출을 했는데, 새해에는 20~30% 정도 추가 성장을 하면서 동시에 서서히 제조, 코일센터 쪽의 마일스톤을 짜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P사의 계열사에 의뢰를 해서 가공된 제품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지난 10년 이상 철강쪽에서 경험을 쌓아온 만큼 충분히 학습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한 번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 미래의 수출기업을 꿈꾸는 기업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번에 시장님도 ‘해외영업을 오래했으니까 젊은 사람들에게 하실 얘기는 없느냐’고 물어보셨는데, 저는 ‘제가 보기엔 너무 많이 주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제 자식이라면 저는 많은 것들을 퍼주지 않을 것입니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라는 말처럼, 젊은 사람들에게 일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허브’라는 말이 굉장히 이슈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때 정말 기대가 컸습니다. 허브국가로는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유명한데, 홍콩이나 싱가포르에는 공장이 없습니다. 제가 30년 동안 해외를 돌아다녀보면서 느낀 점이 허브라는게 지나가면 돈이 떨어지는 그런 곳인데 우리나라가 반도국가인만큼 정말 그렇게 될거라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저는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바깥으로 나가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사실 우리나라의 젊은 친구들이 반도국가라는 이점을 이용해서 무역을 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시작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시작할 때는 힘들겠지만 젊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들을 싸고 퀄리티 높게 공급하기도 하면서 비즈니스도 하고, 시야도 넓히고, 꿈도 꿀 수 있게 되는 부분이 더욱 클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L사에 다니던 시절 회사 몰래 사무실을 하나 얻어두고 조수 한 명을 두고 밤 11시에 퇴근하면 팩스기 앞에 앉아 바이어들에게 안테나 접시도 팔고, 팩스기를 팔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재미가 굉장히 보람있었는데, 우리 젊은 사람들도 두려워하지말고 하나씩 만들어나가려는 의지를 가졌으면 합니다.

▲ 인생의 좌우명이 있다면.
저는 ‘책임’, ‘모든 것에 책임져라’라는 말을 가족들에게도 항상 이야기합니다. 제 아버지께서도 제가 어릴 때 ‘남자(男)는 열 십(十)에 입 구(口)에 힘 력(力)이다. 남자는 열 명을 먹여살릴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한다는 것이죠. 저는 직원들에게도 혼내는 일은 있더라도 책임을 떠넘긴 적은 없습니다. 제가 만약 책임을 소홀히 했다면 회사 어딘가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났을 것이지만 제가 책임을 다했기에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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