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시인·전 경기적십자사 회장.
김훈동 시인·전 경기적십자사 회장.

“결국 예술은 무엇이건 간에 삶에 대한 어려움을 다루기 마련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에르빈 부름(Erwin Wurm)의 말이다. 그의 ‘나만 없어 조각 개인전’이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조각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갖고 있다는 의미다. 61점의 작품이 3개 섹션으로 구성돼 예술적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조각은 전통적으로 다양한 재료를 깎거나 뭉쳐서 입체 형상을 만드는 조형예술이다. 현대예술은 이러한 전통적인 기법에서 발전하여 어떤 개념이나 가상 이미지마저도 예술이 된다. 현대 조각가들은 전통적인 조각에 새로운 개념을 결합하여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각을 바라보는 작업을 모색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가 제시하는 조각의 다층적(多層的)인 의미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예술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상상력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좋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전방위적 활동을 조망하는 전시다. 일반적인 조각과는 다른 작업방식이다. 에르빈 부름은 조각의 무게를 덜어내고 부풀거나 녹아내리는 형태를 만들며 그 과정을 영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현대미술의 유희적 요소를 더해 조각, 사진, 영상, 퍼포먼스,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더욱 뜻이 깊은 전시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무형(無形)의 생각만으로도 조각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발상이 놀랍다. “어떤 작품들은 일상의 합리적인 생각을 넘어 혼란으로 나아간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조각의 형식적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들이 관람객의 상상력을 배가(倍加)시킨다.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 볼프강 앙거홀처(Wolfgang Angerholzer) 부부가 미술관을 찾아 관람했다. “오스트리아 작가의 작품을 대규모로 수원특례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갖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교류의 기회가 있길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원미술관이 우리나라와 오스트리아의 수교 130주년을 맞아 펼치는 오스트리아 대표 현대미술작가 기회전이다. 
감동이란 단어 안에는 움직임과 떨림이 내재(內在)되어 있다. 감동은 첫 만남에서 극대화된다. 일순간 “어?”하면서 시야의 초점이 또렷이 맞는 작품, 한참 들여다보고 나서도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 작품, 지나치고 나서도 어쩐지 눈길이 자꾸만 가서 뒤돌아보고 싶어지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의 얼굴로 의인화(擬人化)된 분홍색 자동차는 마치 지방(脂肪)이 가득 찬 모습으로 표현했다. 마치 분홍색 돼지를 연상시키는 고가(高價)의 컨버터블(convertible) 자동차, 녹아내리는 빌딩, 제2의 피부로 여기는 옷과 양말을 걸쳐 입은 마네킹, 무려 11m에 달하는 높이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거대한 보라색 니트 스웨터 등이 사회를 풍자하는 작가의 유쾌함을 보여준다. 작품은 말이 없다. 고요와 침묵 안에서 그저 우리에게 한 장면을 제시할 뿐이다. 그럼에도 관람객을 단숨에 작가의 자리로 끌고 가서 작가가 느끼고 있는 정서와 느낌에 동참하도록 독려한다. 마치 조각은 저마다 스스로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공감케 한다. 에르빈 부름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이처럼 조각에 대한 의미를 재정의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조각의 개념을 확장해 오고 있다. ‘조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조각의 개념을 확장한 작품에 놀란다. 네모난 몸통에 머리와 팔 대신 두 다리만 있는 조각은 연상(聯想)작용을 촉진시켜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여러 기억과 생각을 깨운다. 다양한 조각은 작가의 각별한 관심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조각은 모든 현상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이자 사회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다. 전시장을 돌며 작품 안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상상해 보는 즐거움이 쏠쏠한 조각전이다. 이번 전시는 오는 3월19일까지 계속된다. 오스트리아 작가 에르빈 부름의 ‘나만 없어 조각전’을 통해 조각이라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그의 통찰(通察)을 우리네 일상의 영역에 과감히 끌어들임으로써 더 풍요로운 삶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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