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하델은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말로만 듣던 눈물을 처음 본 것이다. 오르트에게 배우기를 눈물에 속지 말라는 말을 들었었다. 눈물을 믿으면 삶의 의지는 표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떤 눈물에도 속지 않겠다고 우주를 상대로 비웃고 다녔다. 하델은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서문 쪽으로 갔다가 뒤돌아서 화홍문까지 걸어갔다. 화홍문은 북문이나 서문 쪽보다 규율이 느슨해 보였다.
“보초 똑바로 못 서 이 자식들아!” 
퍼퍼퍼퍽! 하델은 졸개들을 마구 구타했다. 전투가 소강상태라서 다들 킬킬거리며 술을 마시거나 도박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곳 지휘 누가 해?”
“접니다.”
“옥수수 이빨 하모니카 너 이 새끼!” 
삐쭉이가 달려오자 사정없이 발길질을 했다. 하델이 닥치는 대로 구타하고 있다는 소문이 북문 밖 지휘부에 모여 있던 17명의 부두목에게 전해졌다. 그 소식에 모두 호떡집에 불난 듯이 각자 부대로 달려가 군기 세우고 전력을 점검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것들 누구 맘대로 흩어지라 그랬어? 집합!” 
식식거리며 북문 앞으로 돌아왔는데 지휘관들이 보이지 않자 하델은 괴성처럼 소리 질렀다. 3인자부터 19인자까지 17명이 순식간에 다시 모였다.
“지구를 떠나기 전에 키드라에게 내가 형님이라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그 놈이 납치한 은교라는 아이를 풀어 주게 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할 것이다.”
“각하, 그것은 해적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데이.” 
3인자가 반대하고 나섰다.
“왕자의 눈물을 보고 약해진 것 아닙니껴?” 
4인자도 하델이 가장 싫어하는 말을 하며 동참했다.
퓽퓽,  “아악, 윽!” 하델은 그 둘을 광선총으로 사살해버렸다.
“또 반대하는 분 없으신가?” 
졸지에 두 명의 부두목이 죽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하델은 광선총을 빼어든 채 뚜벅뚜벅 눈빛보석 앞으로 걸어가서 멈췄다.
“다시는 나한테 눈물 들키지 마라. 아무리 네가 왕자라도 죽여 버리겠어.” 
눈빛보석의 귀에 총구를 들이대고 협박했다.
“기드로온 왕자님을 투명 튜브 공에 가두고 잘 모셔라. 알마크 대총독에게 받아낼 것이 아주 많다.” 
부하들은 하델의 명령에 따라 큰 투명 튜브 공에 눈빛보석을 가두었다.
“총공격하라!” 
하델이 키드라군을 향해 광선총을 마구 쏘아대며 명령을 내렸다. 
“공격!” 
일제히 5인자부터 19인자까지 15명의 부두목이 자기 위치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수십만이나 되는 하델 해적들의 모든 총구에서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큰일났습니다. 북문이 뚫리고 있습니다!” 
긴장을 풀고 있던 키드라 진영에서는 태풍에 벼 쓰러지듯 죽는 자들이 지그재그로 즐비했다. 어떻게 하면 기드로온이 은교를 구하러 오게 할까 하고 고민에 빠져 있던 키드라는 당황했다.
“하델놈들이 화홍문 수로를 넘었습니다요.” 
키드라는 하델의 단순한 전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급습은 예측하지 못했다. 
“알박아, 2단계 작전으로 변경해!” 
2단계 작전은 최소한의 전력으로 수원성 안에 하델군을 유인하여 몰아넣고 에워싸듯이 공격하는 전술이었다. 적들이 아군의 꼬리를 물게 하고 아군이 적군의 꼬리를 물게 한 다음 옆구리를 공격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전력을 분산시켜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하델의 단순한 공격이 한 덩어리가 되어 저돌적으로 탄력을 받아 짓밟아대면 막기 어려웠다.
“작전상 후퇴!” 
북문과 화홍문 수로 쪽에서 밀리던 키드라 해적들이 퇴각을 하자, 그쪽으로 하델 해적들이 물밀 듯 밀고 들어왔다.
“서문을 공격하라!” 
알박이는 후퇴하는 병력들을 집결시켜 서문에 주둔해 있던 하델군을 밀어 붙였다. 거꾸로 서문에서 공격을 받아 밀리는 하델군은 북문으로 퇴각하는 형태가 되었다.
“앗, 키드라 두목이 은교라는 아이를 납치해서 해적별로 달아납니다요.” 
키드라는 은교를 데리고 부하 몇 만 명과 수원성 위 하늘로 솟아올랐다.
“비겁한 놈, 놓치지 않겠어.” 
하델도 튜브 공에 들어 있는 눈빛보석을 데리고 부하 몇 만 명과 함께 키드라를 뒤쫓았다. 키드라가 탈출하듯이 팔달산 동굴을 빠져 나온 것도 일종의 작전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투가 진행되자 하델군의 옆구리를 치려고 계략을 쓴 것이었다. 그리고 은교를 안전하게 납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서라!” 
수원성에서는 물고 물리는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쫓기는 자들과 쫓는 자들의 치열한 전쟁이 치러지고 있었다(사람들에게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사납게 몰아치는 궂은 날씨였다.).
하늘에서의 전쟁은 긴 먹구름처럼 띠를 이루며 지구 밖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두 패로 나누어진 갈가마귀 떼처럼 태양계의 허공에서 키드라가 거꾸로 쫓고 하델이 쫓기기도 하며 전투를 벌였다. 땅에서의 전쟁은 북문과 서문을 들락거리며 서로 꼬리 무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키드라군에게 불리해지고 있었다. 그때 알박이가 팔달산 동굴에 숨겨놓은 부하들과 쏟아져 나와 하델군의 옆구리를 습격하였다. 그러면서 양측은 수원성 안에 갇혀 뒤엉켜 싸우는 백병전이 되고 말았다.

하늘과 땅의 전쟁
하델과 키드라가 태양계 밖으로 나가며 서로 쫓고 쫓기는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엇갈려서 태양계로 들어오고 있는 우주 전투 부대가 있었다.
“지구로 진입하면 경도 127도 02분, 위도 37도 16분 상공으로 비행하라.” 
우주 국경 수색 대장 알테어가 각 편대에 지시했다. 알테어는 시리우스의 부탁을 받고 기드로온 왕자를 구출하러 지구로 출동한 것이다. 시리우스는 눈빛보석과 은교가 지금 수원성에 납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해적들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자 시리우스는 그 둘의 안전을 걱정하여 급히 알테어에게 요청한 것이다.
“시리우스님, 우주 수색대가 지구에 진입했습니다.
“공격 지점을 구분해서 알려 줘.” 
시리우스는 Nn11의 보고를 받고 눈빛보석과 은교가 있는 곳을 피해서 공격하게 하라는 지시를 한 것이다.
“북문 밖과 팔달산 동굴만 제외하고 공격하면 됩니다.” 
Nn12가 오보를 말하게 된 것은 하델과 키드라가 우주로 이동할 때 눈빛보석과 은교를 서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보안과 보호에 방비를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우주 경비선의 추적 장치로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스노는 어디 있어?”
“팔달문으로 들어갔습니다.”
“골칫덩이!” 
시리우스는 머리를 싸맸다. 천진난만한 스노는 은교를 찾다가 못 찾게 되자 두 전사와 달리 눈빛보석을 만나러 팔달문 대청마루로 달려간 것이다. 대청마루에는 눈빛보석이 떠난 뒤 팔달문 식구들이 모두 우울한 표정으로 말도 잊은 채 한숨만 짓고 있었다.
“어서 와.” 
백구가 일어나 스노를 맞이했다.
“왕자 형아 여기 없어?”
“응.” 
스노의 말에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은교 누나가 납치되었어.”
“알고 있어?”
“형아가 찾으러 갔구나.” 
백구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잠깐! 은교라니. 성당 소극장에서 본 연극 배우 이름은 아니겠지?”
“그 배우야.”
“뭐?” 
길대장의 의문에 백구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팔달문 친구들 모두 놀라는 얼굴로 입이 벌어졌다.
“말도 아니고 염소도 아닌 쟤는 누구야?” 
은바퀴가 물으며 쪼르르 스노의 작은 뿔 끝으로 올라갔다.
“스노라고 해. 눈빛보석을 만나러 왔어.” 
“스노야, 인사해. 내 친구들이야.”
“안녕, 안녕.” 
스노와 팔달문 친구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형아는 어디로 갔어?”
“나도 따라오지 못하게 해서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백구가 난감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냥친구를 만나고 있을지 몰라. 떠나기 전에 작별 인사하러 갔을 수도 있잖아.” 
대두조가 추리력을 발동해서 말했다.
“그곳 좀 알려 줘.”
“눈빛보석이 싫어하면 어쩌지?” 
대두조가 포르롱 날면서 따라오라고 날갯짓을 했다. 스노는 얼른 대두조 뒤를 따랐다.
“나는 눈빛보석을 한 번이라도 더 볼 거야.” 
궁궁이가 뒤따라 뛰어갔다. 그러자 팔달문 친구들은 비바람을 무릎 쓰고 모두 북수동 성당으로 달려갔다.
“어? 없네.” 
본당 안으로 스노와 함께 들어간 친구들은 실망했다.
“너희들 왔구나?” 
절대자의 아들이 허공에서 내려왔다.
“눈빛보석 여기 안 왔어요?”
“응, 안 왔어.” 
모두 낙심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냥친구, 미안해요, 오늘은 놀 기분이 아니어서 다음에 또 올게요.”
“지금 돌아가면 위험해. 너희들이 이곳에 올 때보다 폭풍우가 심해. 지붕이 날아갈 지경이야.” 
그냥친구 말대로 나가려고 문을 조금 열었다가 본당 안으로 불어 닥치는 강풍에 대두조가 날아가서 그냥친구의 가슴에 안겼다. 밖에서는 하늘과 땅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성 안에서 하델과 키드라의 수십만 해적들이 뒤엉켜 백병전을 벌이고 있을 때, 하늘에는 알테어가 이끄는 우주 국경 수색대 전투 비행선 수백 대가 나타났던 것이다. 해적들을 향해 광선포와 광선총으로 햇살 뿌리듯 쏘아댔다. 잽싼 새들처럼 날카롭게 활선을 그으며 날아다니는데 해적들은 피할 데가 없었다.
“그냥 죽지 말고 쏘고 죽어!” 
진흙밭에 뒹굴 듯이 패고 죽이며 싸우던 하델과 키드라 해적들은 한 편이 되어 하늘을 향해 쏘아 댔다. 하늘에서도 수십만이 쏘아대는 광선총에 맞아 추락하는 전투 비행선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다. 하지만 해적들보다 월등히 앞선 고성능 무기와 번개새처럼 굉음을 내며 날아다니는 수색대 전투 비행선들은 갈대밭에서 칼춤 추며 난도질하는 무사들 같았다. 그 기동력 앞에 수십만의 해적들이 우와좌왕하며 무수히 떼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해적들이라지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안 되겠다. 이러다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하겠다. 지구에서 탈출하라!” 
알박이가 키드라군에 명령을 내리며 수원성으로부터 달아났다. 
“우리도 이곳에 있다가는 다 죽습니다. 명령하십죠?” 
삐쭉이 하모니카가 5인자에게 와서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 부두목들이 먼저 빠져 나갈 테니 너는 우리를 엄호하다 살아남은 놈들 데리고 나중에 나와.” 
15명의 부두목들은 성능 좋은 해적선을 골라 타고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살고 싶은 자는 죽기 살기로 쏴!” 
하모니카는 머리를 땅에 박고 벌벌 떠는 해적들의 엉덩이를 차대며 악을 쓰고 총 쏘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해적들도 용기 내어 하늘을 향해 격렬하게 쏘아댔다. 효과를 보았는지 우주 수색대 전투 비행선 수십 대가 명중되어 추락했다.
“전 편대 고도를 높여라!” 
의외의 거센 저항에 타격을 받은 수색 비행대는 알테어의 명령에 따라 뒤로 물러섰다.
“해적들은 모두 탈출하라!” 
하모니카는 하델의 부하뿐만 아니라 키드라의 낙오병들까지 데리고 탈출 대열에 합류시켰다.
“우물쭈물거리는 놈은 내가 쏴 죽이갔어, 빨리빨리 서둘러!” 
하모니카는 부상 입은 채로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 동분서주했다. 그러다 그는 수원성을 마지막으로 빠져나오게 되었다.
“저 놈을 집중 사격해!” 
알테어는 하모니카가 해적들의 두목으로 판단하고 명령 내렸다.
“으읏!” 
수백 발의 광선총을 한 몸에 맞은 하모니카는 만신창이가 되어 장렬하게 전사했다.
“하모니카님!” 
해적들은 달아나면서 하모니카의 죽음을 슬퍼했다.
“교수님, 해적들은 완전히 소탕된 것 같습니다. 작전 마치고 돌아갑니다.”
“알테어, 고마워.”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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