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雨水가 지나니 봄기운이 완연하다.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신비롭다. 올해부터는 코로나로 멈추었던 섬진강 매화 축제가 다시 열린다고 한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그새를 못 참고 2월 중순부터 매화가 피었다는 남녘으로 달려가 사진에 담아와서 자랑이다. 아직 바람 끝에 매운맛이 살짝 남아 있지만 기르는 개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요 며칠 사이 부쩍 늘었다. 호칭까지 아빠 엄마라 부르니 언뜻 들으면 영락없는 가족의 모습이다. 하긴 반려견이라 부르니 가족이 맞긴 하다.

구에서 운영하는 유기견 보호소에는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이들이 넘쳐난다. 한때는 아이들 대신 유모차에 올라앉아 선글라스 너머로 세상을 내려다보던 반려견들이다. 이제는 정해진 시간 내에 새로운 가족을 만나지 못하면 폐기물로 처리될 신세이다. 키우던 동물에 흥미가 사라지고 보살피는 것이 귀찮아지자 가족으로부터 가차 없이 버려진 생명들이다. 자신의 신분과시를 위한 살아있는 액세서리였을 뿐인 위장 가족이었다. 반려견이 아니고 애완견으로 불렸더라면 좀 덜 슬펐을까?

애완견이 언제부터인지 반려견으로 불린다. 가축과 구분되어 애완동물로 불려도 좋을 텐데 굳이 반려동물로 부르는 이유를 모르겠다. 사람과 동물이 동등한 지위라면 반려가 맞지만, 사람이 주체가 되고 사랑의 대상이 동물이라면 애완이 더 자연스럽다. 내용물은 같은데 포장지만 갈아 씌운 느낌이다. 공원에 나와 개와 함께 봄을 즐기는 저 많은 사람 중에 누가 진짜 가족이고 누가 위장 가족일까? 도무지 겉모습만으로는 식별이 어렵다.

지인이 국내 모 전자회사의 필리핀 법인장으로 발령이 나던 해 그는 부인과 초등학교 1학년이던 딸을 데리고 현지로 이사를 했다. 그는 어린 딸을 위해 강아지 한 마리를 생일 선물로 사 주었다. 말도 안 통하고 친구 한 명 없던 아이에게 강아지는 수호천사이자 유일한 친구이었다. 이후 중국으로 이사할 때도 강아지는 가족의 일원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아이가 대학생이 되자 강아지는 늙고 병들어 제 한 몸 가누기도 힘들어졌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딸은 얼마 후 개의 부음(?)을 듣고 급거 귀국했다. 장례가 끝난 뒤에도 정신적 충격과 슬픔으로 곧바로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한 학기 휴학했고 복학 이후로도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아이에게 강아지는 반려자였고 강아지에게 아이는 진정한 가족이었다.

나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호기심에 사 온 햄스터 두 마리를 몇 년간 키운 적이 있다. 며칠 집을 비우면서 백설기와 인절미 두 마리의 앙증맞은 생명을 죽게 한 뒤로 더는 아무것도 키우지 않기로 했다.

요즈음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펫부머, 펫코노미등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동물 키우기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커지고 있다. 동물 키우기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끝까지 보살핀다는 책임감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잘못된 욕망으로 애꿎은 생명들이 버려지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필요하다면 일정한 자격(소양)을 갖춘 사람들만 동물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바야흐로 개학 시즌이다. 예전 초등학교 앞에는 아이들을 불러모아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를 파는 장사꾼이 있었다. 어린 아이들을 잠재적 유기범으로 키워낸 그 장사꾼도 혹시 지금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을까? 그런데 지금 그 장사꾼이 떠오르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일까?

 

이유준 수필가
이유준 수필가

2021 스토리문학(시), 수필문학(수필)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여울문학회 회원
공저: 시- 이작도엔 고래가 산다. 외 2권 (문학공원)
수필- 하늘을 나는 자전거 (교음사)

 

황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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