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일기예보에 장맛비라고 하며 한반도 중심을 관통하는 일기도를 보내고 있다. 이어서 후두둑 후두둑 빗줄기가 창문을 휘갈기며 장마의 시작을 알린다.

어릴 적 장마에 대한 기억은 그저 뿌연 흙탕물이 찰랑찰랑 내가 살던 무심천 뚝방을 가득 채우며 느린 유속으로 흐르던 시간속으로 들어간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는 맑은 시냇물과 시냇가에 펼쳐진 금모래 은모래가 유난히 선명했던 기억이 함께 들어 있다. 마치 깨끗한 화폭에 유려하게 담겨진 그림 한 장 보듯한 추억의 시냇물일 뿐이었다. 맑은 물 속에 송사리떼랑 쉬리떼가 요리조리 살랑거리며 헤엄치는 것을 보며 잡지도 못하면서 꽃고무신을 들어 이리 건지고 저리 건지며 고무신 안에 물고기 떼가 잡혀 지기를 바랬었다. 한 마리도 못 잡으면서도 맑은 물결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저절로 내 안의 모든 좋지 않은 것들이 말갛게 씻겨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혼자서도 그 시냇가에 앉아 흘러가는 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꿈을 꾸면서 맑고 맑은 시냇물이 내 가슴에 흘러 넘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땐 시냇물이 무섭지 않아 그저 친근한 나의 놀이터로만 생각했고 그 속에서 나의 꿈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 이후 성장하면서 시냇물이 비로 인해 흙탕물이 되고 수 없는 소용돌이와 범람으로 인해 산과 들을 마구 헝클어버리는 주범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작은 말없이 흐르던 붉은 냇물부터 시작된다. 분명 장맛비로 인해 무심천이 범람한 것인데도 아주 서서히 그 물은 누가 가둔 것인 양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물구경을 가자고 하셔서 뚝방에 올라가 보았을 때 내가 느낀 것은 물이란 이렇게 변화무쌍하구나 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수정같이 맑은 물이 황토물로 변해서 냇물 가득히 넘실거리는지 의아하고 무섭기까지 했다. 황톳물이 범람하는 것을 구경한 날 이후로 꿈속에선 수시로 끊임없이 황톳물로 변해서 언제고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는 호랑이처럼 범람하는 모습으로 나를 휘감고 덮치는 꿈을 꾸었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천재지변 운운하며 제일 크게 다가오는 것이 일상 중에 산불과 물난리였다. 그 중 물난리는 첫 발령지에서 직접 겪었다. 수년 전부터 댐공사를 한다고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그에 대한 수많은 일화가 소문에 소문을 더해 뒤숭숭하기도 한 시절이었다. 칠월 어느날 수해가 났다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 곳에는 고개마루가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을 따라 높은 고개마루에 올라가서 수해 현장을 보게 되었다. 그곳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물의 신이 마구 화난 모습으로 이리저리 흔들고 휘저어대고 문질러 버린 상태라고 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기르던 소들도 떠내려가고, 옷가지는 높디높은 나무들이 쓸어진 그 위에 걸려 있었으며, 누군가가 수해를 만나 그 집의 안살림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곤두박질치며 마치 삶을 다 살은 양 게워대며 정처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집 자체가 다 잠겨져 지붕만 남은 모서리 위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다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죽음이란 이런 것인가 너무나 허망한 일에 놀란 사람들은 어처구니 없어 분개해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땅을 치며 통곡을 하기도 했다.

수마로 인해 겪은 일들에 대한 소식은 해마다 늘어났고, 올해도 변함 없이 뉴스 속에서 보고 듣고 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손잡고 하천가 미루나무 숲에서 사진도 찍고 단체 놀이도 했던 그 곳 제방이 무너졌다고 톱기사로 뜬다. 그들이 절규하는 모습과 잃어버린 식구를 부르는 모습과 쏟아져 나오는 기사를 읽으며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깜출수가 없다.

옛 어린시절 그리도 동경하며 천진하게 놀던 그 시냇물이 오늘은 또다시 변해서 다시 수마로 변했다. 시간을 원망해야 하나, 자연을 원망해야 하나, 속절없이 나약한 인간들의 삶에 그저 말문이 막히고 정신 줄이 놓아진다.

그러나, 태곳적부터 그렇게 살아 온 인간의 삶에서 다시 느껴지는 것은 시간의 흐름은 진화한다는 것이다. 또다시 우리는 재건해야 할 것이며 처음부터 무엇이 그리되었는지를 알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꿈틀거리는 시간이여! 성장을 위해 다시 달리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서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