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노래방에 갈 때가 있다. 친구들과 가볍게 소주 한 잔을 마시고 난 후 여흥을 즐기기 위해 가기도 하고 부모님과 가기도 한다. 그런데 노래방에서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바로 정지용의 시를 노래로 만든 ‘향수’이다.

이 노래는 언제 불러도 정감이 가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친구들의 의견은 다르다. 노래방에서 여럿이 흥에 겨울때 왜 하필이면 향수를 불러 분위기를 가라앉히느냐는 핀잔을 준다.

한 마디로 싫증도 나고 향수라는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 수도 없으니 그만 부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음정을 맞추기가 곤란한 노래이니 내 실력엔 맞지 않는다는 일침도 놓는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일에 대해 고집이 있는 성격은 아니지만 노래방에서 향수를 부르는 일에 대해서만은 고수해왔다. 어떤 면에서는 동행한 사람들의 취향을 배려하지 않은 행동일지라도 한동안 그랬었다. 

‘향수’를 좋아하다 보니 이 시를 지은 정지용 님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며칠 전엔 인사동에 있는 고서점 ‘통문관’에 갔다가 벽에 붙어 있는 정지용 님의 사진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다.

지난해엔 충북 옥천에 있는 정지용 님의 생가를 혼자 다녀오기도 했다. 정지용 님의 생가는 마을 한가운데 있었고 그 앞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냇물을 보고 아하, 이곳이 바로 노랫말(詩) 속의 실개천이구나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향수 짙은 시냇물의 흐름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만 했다. 

집 마당엔 시비(詩碑)가 있었는데 나는 그 앞에서 모르는 이에게 부탁하여 카메라 셔터를 눌러 달라고 했다. 순간의 포착이지만 영원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다. 

해가 지는 저녁 무렵 나는 창가에 앉아 ‘향수’를 읊조려 본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워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긴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언제 들어도, 불러봐도 음미하기 좋은 시라고 여겨진다. 그 중에도 정감이 가는 단어가 있다.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은 상당히 낭만적인 감성을 퍼올려준다. ‘해설피’라는 단어도 신선하다. 소리가 느리고 슬픈 느낌이 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향수의 작품 해설을 보니 시간의 흐름을 ‘재가 식어지면’으로, 밤바람 부는 소리를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로 했다. 휴식의 나른함은 ‘집베개 돋아 고이시는 곳’으로 식민지 시대의 궁핍한 삶은 ‘사철 발 벗은 아내’로 나타내고 있다. 정말 기상천외한 표현들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향은 막연하나마 희망의 기다림을 안겨주는 요소다. 고향에 대한 행복감이나 추억의 기억들이 삶의 바탕이 된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사는 게 버거워 어깨가 무거워질 때 우리는 더욱 고향의 품이 그리워진다.

오래전, 고향을 떠나와 고향에 남아 있는 부모님이나 친척, 친구들이 없다 해도 고향의 풍경은 늘 가슴속을 맴돈다. 고향엔 보고싶은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들과 함께했던 푸른 동산과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때론 다시 일어서기 힘든 상처를 받고서도 넘어질지언정 눕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살아갈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그 또한 상처를 치유해줄 마음의 안정을 주는 고향이 있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고향은 완전히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도 언젠가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꿈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초겨울 차가운 저녁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이럴 때면 나도 칠갑산이 바라보이는 아버지 고향에 가고 싶다. 도심에서 태어난 나는 아버지의 고향을 나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있는 까닭이다.

 

장세영 수필가

약력

2003년 월간 문예사조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한국작가 회원

수필집 “십이일 간 머문 자리” 출간

월간 문예사조 문학상(수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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