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둘이 같은 말을 하며 빨개진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엄마한테 어떻게 말씀 드리지?” 
은교는 눈빛보석의 반지 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마리아 원장이 보관하고 있는 자신의 반지를 돌려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끼고 있어.” 
눈빛보석은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빼어 은교의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 다른 방
눈빛보석과 은교와 백구가 관음사에서 점심 공양을 마치고 수원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팔달산 동굴에서는 왕눈깔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 새끼!”
“으악!” 
여섯그만이 나타나 큰날개로 왕눈깔을 후려친 것이다. 왕눈깔은 느닷없이 당하고 나뒹굴어졌다.
“죽여버리겠어! 사기와 배신을 한꺼번에 해?”
“악! 으악! 자잠깐, 잠깐만.” 
이번에는 왼쪽 날개로 후려치고 두 발로 마구 짓밟았다. 여섯그만은 달에서 왕눈깔이 묶인 줄을 반만 풀어 주고 가버린 뒤 부러진 부리로 풀어내느라 심한 고생을 했던 것이다. 
“여기 죽으려고 왔나 본데 제대로 죽여줄게.”
“억! 그만. 오르트 대제가 보내서 왔어유.” 
너무 맞아서 왕눈깔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여섯그만도 때리다 지쳐서 숨을 헉헉 대며 주저 앉았다. 
“그래? 말해 봐. 거짓말이면 이 자리에서 바로 죽는다.”
“데네브가 어디 있는지 알아오라 그랬슈.”
“내가 알고 있는 거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그 소리에 다 죽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던 왕눈깔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며 빛났다. 왕눈깔은 자신과 엘리사벳 수녀를 서대문 성당에 내려주고 고로콤이 하늘로 올라간 뒤 막막했다. 해적들이 눈빛보석과 은교를 데리고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여섯그만에게 반만 들은 것을 후회했다. 혹시나 여섯그만이 달에서 탈출했으면 팔달산 동굴로 와 있지 않을까 하고 이곳으로 왔던 것이다.
“나 좀 살려 주슈. 어디 있수.” 
두 눈이 퉁퉁 붓고 콧구멍에서는 피가 나면서도 왕눈깔은 여섯그만에게 기어가며 통사정을 했다.
“이 자식이 죽을 자리까지 찾아와서 살려달라고 지랄하는 거 보니 똥줄이 타긴 탔구나?”
“알려 주시면 이번에는 형님 은혜 절대 잊지 않을 거구먼유.”
“에라이, 자식아.” 
기어오는 왕눈깔을 여섯그만은 앉은 자세에서 발바닥으로 차듯 밀어버렸다.
“어구구구, 나 죽네.” 
왕눈깔은 떼굴떼굴 굴러가서 동굴 벽에 쿵! 부딪쳤다. 그리고 기절했다.
“니가 은혜를 갚을 놈이니?” 
여섯그만은 동굴을 나와 팔달문을 살피더니 화홍문 쪽으로 날았다. 백구에게 눈에 띄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여섯그만은 달에서 탈출하여 이곳으로 내려오다 ‘행복한 집’ 미니버스가 눈에 띄어 몰래 뒤따라가 은교를 발견했던 것이다.
“나는 역시 운이 좋은 놈이란 말이지. 그런데 알려주면 오르트 대제가 나에게 상을 줄까?” 
하델에게 갔다가 도망친 것이 찜찜했다.
“그래도 딸이 있는 곳을 알려 주면 당연히 상을 주겠지.” 
여섯그만은 은행나무의 우거진 가지 사이에 숨어서 ‘행복한 집’을 살폈다.
“어? 엘리사벳 수녀가 들어가고 있잖아?” 
엘리사벳은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은교를 만나려고 서대문 언덕에 갔었다. 모두 이사 가고 없어 수소문한 끝에 이곳으로 ‘행복한 집’을 찾아온 것이다.
“이크, 백구가 뛰어오고 있네.” 
엘리사벳이 반갑게 맞아주는 마리아의 손을 잡고 들어간 뒤, 눈빛보석과 은교가 백구와 함께 마당으로 들어섰다.
“들어갔다 가.”
“조금 있다 또 올게.” 
백구와 눈빛보석은 팔달문으로 가고 은교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사벳은 은교를 보더니 통곡하듯이 슬피 울었다.
“내가 욕심에 눈이 어두워 너에게 잘해 주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마리아가 달래기 전까지 엘리사벳은 은교를 안고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한동안 울었다. 은교에게 할 말이 있다며 둘만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해 마리아는 자리를 비워 주었다.
“너의 아버지가 하늘나라의 오르트 대제시더구나. 이 말을 해서 그분께 내가 죽을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너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말하마. 너의 아버지 명령으로 왕눈깔이라는 올빼미가 네가 있는 곳을 알아보려고 지구에 내려왔단다.” 
은교는 이야기를 들으며 별로 놀라지도 않고 한숨만 내쉬었다.
“수녀님, 감사해요.” 
엘리사벳이 서울로 올라간 뒤 은교는 주위를 살피며 팔달문으로 갔다.
“저 아래 은교가 보이네?” 
노랑가슴이 대들보에 앉아 있다가 말해 주었다.
대청마루로 올라오지 않고 길 건너에 그냥 서 있어 눈빛보석이 내려갔다. 둘은 손잡고 행궁까지 걸어갔다.
“왕눈깔이 지구에 내려왔데.” 
둘이는 행궁을 한 바퀴 돈 다음 ‘행복한 집’앞으로 갔다.
“조약돌로 연락해. 바로 달려올게.”
“어서 가.” 
은교가 들어간 뒤에도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눈빛보석은 지키고 서 있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팔달문으로 돌아갔다.
“왜 이제 와?”
“왕눈깔이 다시 왔어. 모두 조심하고 눈에 띄거든 알려 줘.”
“그 놈 죽지 않았어?” 
자다 깬 팔달문 작은 친구들은 긴장했다.
“걱정하지 마. 이번에 잡히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백구가 이를 갈면서 말했다.
“위험할 때는 눈빛보석을 은교에게 보내 주는 게 어떨까?” 노랑가슴이 말하자, 모두 눈빛보석 눈치를 보았다.
“그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너희들은 내가 지켜 줄게. 나타나기만 하면 그 왕눈깔을 이 더듬이 창으로 찔러버릴 거야.” 
은바퀴가 작은 알통을 불끈 거리며 소리쳤다.
“그러지 뭐.” 
길대장이 최종 결정을 해 주었다.
“미안해.” 
눈빛보석이 무릎으로 팔달문 친구들에게 일일이 다가가며 미안해했다. 다음날 저녁, 눈빛보석은 ‘행복한 집’으로 갔다.
“당분간 이곳에서 자도 되나요?”
“그러려무나.”
“엄마, 고마워요!” 
은교는 팔짝팔짝 뛰며 좋아서 원장의 어깨에 매달렸다.
“그렇게 좋으냐? 얘두 참.” 
마리아 원장의 허락을 받고 눈빛보석은 은교와 다른 방이지만 ‘행복한 집’에서 잘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도 이제는 눈빛보석을 잘 알고 있어 오히려 같이 자게 된 것을 좋아했다. 오늘도 종일 ‘행복한 집’을 살펴보던 여섯그만은 팔달산 동굴로 날아갔다.
“형님, 이제 오슈.”
“이 자식 뒈졌는지 알았더니 명줄 질기다.” 
죽은 듯이 못 일어나던 왕눈깔이 깨어나 있었다. 여섯그만은 동굴로 들어오더니 묻어둔 고기를 꺼내 입에 넣는데 주둥이가 부러져서 우물우물 삼켰다. 온몸이 멍들었어도 먹고 싶은지 왕눈깔이 침을 흘렸다.
“한 점 처먹어.” 
여섯그만은 고기 살점 하나를 발톱으로 찢어 던졌다. 이 두 새는 지구 밖에서 일 년치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이들은 먹는 것에 대한 습관 때문에 먹고 있는 것이었다.
“야, 콩으로 메주를 쑨 대도 너를 못 믿겠어. 나를 직접 오르트 대제에게 데려다 줘.”
“알겠슈. 하지만 나에게 먼저 공주가 있는 곳을 알게 해 줘야 형님 말을 믿고 대제께 모시고 갈 수 있지 않겠수?” 
왕눈깔은 던져 준 살점을 질걸질겅 씹으며 말했다.
“알았어, 임마. 따라와!” 
남 다 자는 어둠을 틈타 여섯그만과 왕눈깔은 ‘행복한 집’ 지붕 위로 날아가 앉았다.
“저 창문으로 보이지?”
“데네브 공주 맞네유. 저쪽 방에는 기드로온 왕자도 보여유.”
“다 보았으면 꾸물거리지 말고 동굴로 돌아가 임마. 기드로온 왕자에게 잡히면 끝장이야.” 
여섯그만과 왕눈깔은 동굴로 다시 날아갔다.
“아쿠!” 
왕눈깔이 동굴 입구에 부딪쳤다.
“멍청한 놈.”

“두 눈에 돌조각이 들어간 것 같은데 빼내 줘유. 아퍼유.”
왕눈깔은 눈을 못 떠 괴로워했다.
“쓸데없이 눈깔만 크니까 그렇지.” 
“형님이 나를 너무 때려서 잘 날지 못해서 그래유.”
여섯그만은 왕눈깔을 질질 끌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눈이야.”
“조금이라도 떠 봐 임마. 그래야 불어 줄 거 아냐?”
눈을 불어 주려고 여섯그만의 얼굴이 왕눈깔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아악! 내 눈!”
“이 새끼, 형님은 무슨 놈의 형님이야. 힘세고 덩치 크면 형님이냐? 내가 너보다 나이 많아 임마!” 
왕눈깔이 여섯그만의 남은 눈 하나를 날카로운 부리로 깊게 쪼아버린 것이다. 아까는 일부러 동굴에 부딪쳐 눈 안으로 돌조각이 들어간 것처럼 꾸몄었다.
“이 죽일 자식!” 
여섯그만은 이리 날고 저리 휘저으며 왕눈깔을 잡으려고 헤매었지만 두 눈을 잃어 잡을 수 없었다.
“이제는 내가 너를 죽일 수도 있지만 옛정을 생각해서 봐 준다.” 
왕눈깔은 헤매고 다니는 여섯그만의 발을 걸어 꺼꾸러뜨렸다.
“으아아!” 
그것으로 성이 덜 찼는지 왕눈깔은 엎어져 있는 여섯그만의 뒷머리를 힘껏 밟고 날았다. 왕눈깔은 팔달산 동굴에서 나와 밤하늘을 향해 푸드덕푸드덕 두 날개를 휘저었다.
“멍멍, 거기 서!” 
큰 개가 팔달문 지붕 쪽에서 덮쳐왔다. 백구는 잠 안 자고 동굴 쪽을 수상히 여기며 계속 지켜보던 중이었다.
“날개야, 제발 나를 살려라.”” 
왕눈깔은 백구를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 근처에 얼씬거리기만 하면 아무리 맛없어도 잡아먹을 테다!”
“바보 똥개야, 너는 똥이나 식사해.” 
백구를 따돌린 왕눈깔은 유유히 지구 밖으로 빠져나오게 되었다.
“퓨퓨퓨퓨!”
“쏘지 마!” 
왕눈깔이 대기권을 벗어날 무렵 하늘에서 광선총이 빛과 불을 뿜었다.
■ 슬픈 분노
“쏘지 마라!” 
왕눈깔이 지구의 동쪽으로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스로 살 수 있었다.
“알아내었느냐?”
“예, 확실하게 알아내었습니다.” 
오르트 대제는 마음이 들떠서 물었다.
“데네브는 어떻게 지내고 있더냐?”
“공주님은 잘 지내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집에 기드로온 왕자도 있었습니다.” 
왕눈깔이 데네브 이야기를 할 때는 대제의 얼굴이 밝아지다가 기드로온 이야기를 할 때는 인상을 찌푸렸다.
“대제 전하, 우주 군단 쪽에서 웬 여자가 혼자 건너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쏴 버려!”
“옛!” 
오르트 대제는 간단하게 사살 명령을 내렸다
“아니다, 아니다. 내 앞으로 끌고 와!” 
대제는 생각을 바꿔 명령을 수정했다.
“아니, 시리우스 교수 아니오? 빨리 풀어 드려라!”
“오르트 대제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러게 말이오. 오랜만에 만났는데 결례를 저질러 미안하오.” 
시리우스는 결박이 풀리고 대제의 지시로 좋은 의자에 앉게 되었다. 오르트 대제가 우주의 시간을 담당하던 시절에 시리우스 대학에서 자료 협조를 많이 받았던 것이다.
“해적들과 담판하다 실패했다고 들었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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