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그 골목길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건 내가 그곳에 머물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처음엔 띄엄띄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나고 해가 갈수록 행렬은 휴일과 평일 상관없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아예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시도 때도 없이 북적거렸다.

늦은 오후 약간의 휴식이 필요해 밖으로 나와 사방을 둘러볼 때면 누가 불렀는지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삼삼오오 거리를 걷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어떤 목적에 의해 이곳으로 온 듯했다.

무슨 이유일까,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물을 수가 없어서 그저 그들의 표정을 살필 수밖에.

그들은 한 결같이 무엇엔가 심취해 있는 것만은 사실 같았다. 혼자 추측하기에는 그 답이 빗나갈 수도 있겠지만, 언제부턴가 그들이 이곳에 온 분명한 목적은 선조들이 걷고 걸어간 길에 대하여 관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음미일 수도 있는 그 목적은 그들이 걷고 있는 모습 속에서 배어 나온다는 것이다. 직접 살고 있는 곳도 아닌데 그 옛날에 살던 곳도 아닌 데 이끌리듯 와서는 골목 이곳저곳을 다니며 살피고 또 살핀다.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누구나 걸어가는 길에서 가장 소중하고 분명한 삶의 방향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에 방점을 둔다. 아이와 다정히 손을 잡고 걷는 어느 아빠와 아들의 모습에서 진한 부성애를 느끼고 손을 잡은 아이의 모습에서 아비에게 기대고 있는 다정다감함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이 숭고한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또한 연인끼리 아주 느린 모습으로 여유를 부리며 걷고 있는 모습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후광이 따라다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고귀한 인간애를 함께 느꼈다. 어디에서부터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분명히 의미가 있고 그 무언가의 길을 향해 걷고 또 걸어간다.

올해도 새날이 밝았다. 바로 어제 우리는 새날이 올 거라는 부푼 기대감 속에 절절한 설레임과 교차된 이별감을 함께 느끼며 서로 부둥켜안기도 하고 뜨거운 악수를 건네며 환희에 찼다.

지난 시간들은 고고하게 흐르며 아듀의 손짓을 보냈다. 그 아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약속된 장소는 국립극장 해오름관이었다. 월인천강지곡이 막 시작된 즈음 정해진 좌석에 앉았다.

가운데 국립극단 관현악단이 둥글게 앉아 선율을 주도하고 외곽에는 원형의 둥근 길 위에서 연극단과 무희들이 차오르는 달빛을 받으며 춤을 추었다.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춘다’는 월인천강지곡의 속뜻에 걸맞게 신비로운 모습을 연출하며 부처에 대한 찬불가로 배경음악은 장엄하게 펼쳐졌다. 세종의 애민 정신과 소헌왕후에 대한 사랑, 그리고 부처에 대한 찬미는 한 해를 넘기는 시점에서 무위의 삶에 대한 존엄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떠나보내는 마지막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심금을 울리는 공연에서 절정에 달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고적했지만 한 해에 대한 아듀의 준비를 하기에 적당했다.

왜 세종은 그리도 철저히 소헌왕후에 대해 월인천강지곡과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주었는가. 그보다 더 큰 애민사상이 세종을 지배하며 달빛이 온 만물을 비추듯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담았을까. 그분의 정신세계는 과연 얼마나 크고 지엄하기에 그 모든 것을 겸허하게 받아드렸을까. 일상의 우리는 풀잎보다 여리고 물보다 더 묽은 한 종지의 정신일뿐인데 그 분의 뜻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 아니었는지 곱씹어 본다.

이에 다시 흐르는 달빛을 따라 걸어 본다.

세월이 흘러 어느 골목길을 걷는 현재의 우리들, 아마도 그 마지막은 세종이 생각하는 그 부분일지도 모른다. 비록 늦게 터득하는 것일지라도 세원 지난 몇백 년 후에 이렇듯 어느 작은 길을 걷고 있는 오늘의 세대들도 어쩌면 그분의 세계 몇만분의 일이라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닐지.

새날이 밝아 온다. 이런 아침에도 사람들은 손에 손잡고 그들의 아이들과 그들의 연인들과 새로 태어난 올해의 청룡을 만나러 어디에서인지 굴러 나올 여의주를 만나러 달려 나갈 것이다.

월인천강지곡에서 양인천강지곡으로 바꾸어 보기도 하며 새날인 오늘에 감축드리며 끝나는 날까지 희망의 흰 새를 만나러 걸어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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