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스노는 바이오껌을 두 개 받더니 한 개는 제 입에 넣고 한 개는 백구에게 주고는 하늘로 솟구쳐 날아올라갔다. 시리우스의 생각은 어미 유니콘에 눈빛보석과 은교를 태우려 했던 것이다.
“흙에서 돋는 봄빛이 어쩜 저토록 고울까?” 
눈빛보석과 은교는 시리우스가 풀밭을 걷고 싶어 하여 정자에서 내려가 연못가를 함께 걸었다. 시리우스는 이 일이 어떻게 결말이 나려는지 마음이 답답해 한군데 서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금잔디 밭에 보드라운 연두색 풀들이 물감 배어든 듯 색감을 더욱 선명히 하고 있었다. 아지랑이 따라 춤추며 날아다니는 노랑나비와 흰나비를 백구가 쫓아다니며 재미있어 하는 평온한 풍경이었다.
“멍멍.” 
초조한 시간이 얼마쯤 흐르자 나비를 따라다니던 백구가 하늘을 향해 짖었다.
“따그닥! 따그닥!” 
잠시 후, 하늘에서 유니콘 발굽 소리가 들렸다.
“아니?” 
셋은 소리 나는 곳을 올려다보고 하나같이 놀란 얼굴을 했다.
흰 유니콘을 탄 알마크 대총독과 흑빛 유니콘을 탄 오르트 대제가 하늘에서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앞에는 왕눈깔이 날고 있었고 뒤에는 스노가 쫄랑쫄랑 달려오고 있다. 스노가 하늘에 올라가 어미 유니콘에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오르트 대제가 듣고 화를 낸 것이다. 자신의 딸을 알마크의 유니콘에 태운 채 올라오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제는 자신의 유니콘에 올라타 왕눈깔을 앞장 세워 무조건 출발했던 것이다. 그러자 알마크도 재빨리 흰 유니콘을 타고 뒤따라오게 된 것이다.
“크르르.”

“미안해.” 
왕눈깔을 노리고 있는 백구를 보고 시리우스가 서둘러 급소를 눌러 잠들게 했다. 백구가 왕눈깔을 물어 죽이기라도 하면 대제는 광선검으로 단칼에 백구를 베어 죽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 되면 눈빛보석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그 이후 상상은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것이 불 보듯  번했다.
“어, 잠자네? 나도 자야지.” 
스노는 잠들어 있는 백구를 보자 벌러덩 누워 백구를 베개 삼아 비비적대며 장난쳤다. 하지만 왕눈깔은 잠든 백구가 눈이라도 뜰까봐 전전긍긍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올라가려했는데 두 분이 내려오셨군요.” 
시리우스는 눈빛보석과 은교의 앞으로 나서며 의아한 듯 말했다. 대총독과 대제에게 그들의 자식이지만 강제로 데려가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이기도 했다.
“데네브, 인사 드려. 이분이 오르트 대제시다.”
“…….” 
은교는 인사하지 않았다. 눈빛이 젖고 있을 뿐이었다.
“네가 데네브구나. 미안하다.” 
대제가 다가오지는 못하고 흑빛 유니콘에서 내렸다. 그러자 알마크도 흰 유니콘에서 내렸다.
“기드로온, 데네브도 이제 아버지를 찾게 되었으니 우리는 돌아가자꾸나.”
“그럴 수 없어요!” 
알마크 대총독은 안드로메다로 자신의 아들만 데려가려고 말했다. 그러자 눈빛보석이 완강하게 잘라 말했다.
“이제부터는 오르트 대제께서 데네브를 너보다 더 행복하게 해 주실 거다. 너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데네브에게 행복을 줄 수 없어. 그리고 너는 앞으로 안드로메다 은하를 다스릴 왕자야.” 
알마크는 현실적인 문제를 들어서 아들을 설득하려 했다.
“데네브, 지금은 차마 아버지라 불러 달라고 할 자격이 없어 말 못하겠구나. 하지만 앞으로의 날들은 지나간 날 못해 준 것까지 포함해 너를 위해 모든 것 다 해 주고 싶다. 나와 함께 가자꾸나.” 
대제는 은교를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말했다.
“안드로메다가 아무리 넓어도 저를 안아 주지 못해요. 저는 안드로메다가 너무 커서 안을 수 없어요. 아버지는 수많은 별을 보셔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별을 멈추고 바라볼 수 없어요. 그런 저 하나만 늘 바라본 데네브예요. 데네브는 제게 집이에요.”
“우리는 날 때부터 성전에서 서로에게 들어간 운명이에요. 대제께서 저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저를 기드로온에게 전달하신 거라고 믿어요. 기드로온은 왕자인데 저 하나만 몸속에 넣고 살았어요. 저보다 행복한 고아가 있을까요? 기드로온은 저의 우주에요. 신의 명령이라 해도 저는 다른 곳에서 살지 못해요.” 
눈빛보석과 은교는 떨어질 수 없는 당위성을 또박또박 말하며 서로의 손을 연리지처럼 단단히 잡고 있었다.

■ 100년 동안
“왕자의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냐?”
“네! 죄송해요.” 
알마크가 화를 내며 물었다. 그러나 눈빛보석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제부터 공주로서 뒷날 내 뒤를 이어 여제가 될 수 있단다. 이것이면 너를 지금까지 키워 주지 못한 죄를 용서할 수 없겠니?”
“대제께서는 제게 지으신 죄가 없으세요. 기쁨이 되어 드리지 못해 오히려 죄송해요.” 
은교 또한 대제의 간곡한 부탁에도 처음과 같은 모습이었다. 
“대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오?”
“어떻게든 데네브를 데려가 천체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생각이오.”
“그럼 공주를 데려가시오. 나는 기드로온을 데려가겠소.” 
알마크와 대제는 강제적으로 데려가는 것에 합의했다.
“나를 죽이시기 전에는 왕자와 공주에게 갈 수 없어요!” 
시리우스가 눈빛보석과 은교를 등 뒤에 가리고 막아섰다.
“비키시오!” 
둘 앞의 시리우스는 가냘픈 여인에 지나지 않았다. 
“안 돼요!” 
시리우스는 알마크와 대제의 다리 한 쪽씩을 잡고 매달렸으나 그 둘에게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었다. <14면에 이어서> 
“자, 서로 데려갑시다!” 
알마크와 대제가 초능력을 써 눈빛보석과 은교를 떼어내려 했다.
“절대로 떨어지면 안 돼!”
눈빛보석과 은교는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형아와 누나를 왜 괴롭혀!” 
스노가 달려와서 둘에게 매달려 깨물고 발로 찼다.
“이녀석이!”
“힝! 아파!” 
대제가 스노를 내동뎅이쳤다. 그때였다.
“와와와!” 
사방에서 작은 동물 연합군이 풀밭과 언덕을 가득 메우고 알마크와 대제에게 달려 들었다. 그냥친구가 길대장을 놀러오게 하여 위급한 상황을 미리 알려 두었던 것이다. 모두 길대장의 비상 명령으로 눈빛보석과 은교를 지키러 온 것이다.
“허헛! 이거 뭐지?” 
알마크와 대제가 죽이고 물리쳐도 허공과 땅에서 온갖 동물들이 달려들자 당황했다.
“멍! 이놈!”
“악! 내 다리!” 
도망치려 날아오르던 왕눈깔이 잠이 깬 백구에게 들켜 다리를 물렸다. 왕눈깔은 한 쪽 다리가 백구의 칼날 같은 이빨에 끊어진 채 팔달산 동굴 속으로 숨었다.
“지금이야! 데네브, 네 몸속으로 들어갈게. 너는 내 몸속으로 들어와!”
“응! 기드로온, 네 몸속으로 들어가니까 너도 내 몸속으로 들어와!” 
눈빛보석과 은교는 서로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들어가게 하면 안 돼!” 
알마크와 대제가 동물들을 사정없이 헤치며 막으려 했다. 하지만 조금의 틈도 없이 달라붙어서 사력을 다해 막아내는 동물들과 시리우스의 방해로 둘을 떼어놓지 못했다.
“데네브, 기드로온! 한 몸이 되었어.” 
한 몸이 된 둘은 하염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에이!” 
눈빛보석과 은교가 하나의 몸이 되자, 알마크와 대제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작은 동물들은 물러났다.
“교수, 정신 차리시오!” 
시리우스는 그때까지도 알마크와 대제의 다리를 끌어안고 놓지 않은 채 실신해 있었다. 어떻게든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탈진하여 쓰러진 것이다.
“교수, 시리우스 교수!” 
알마크와 대제는 서로 시리우스를 치료하고 간호해 주려 했다.
“으으음.” 
시리우스가 깨어났다.
“두 분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전쟁 종식을 선언한 날이오.” 
대제가 알마크보다 재빠르게 대답했다.
“이러니 두 분은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빵점이에요.” 
시리우스의 혀를 차는 말에 둘은 서로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오늘이 기드로온 왕자와 데네브 공주의 생일이에요.”
“그래요?” 
알마크와 대제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할 말을 잃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왕자님과 공주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와!” 
시리우스의 선창으로 시작된 축가는 수많은 작은 동물들에게 합창으로 이어지며 온 세상이 노래하는 듯 했다. 알마크와 대제도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다 나중에는 누구보다 기쁘게 박수치고 어깨동무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그 시간에 ‘행복한 집’에서도 은교의 14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감사해요!” 한 몸이 된 눈빛보석과 은교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우리가 졌구나. 어찌할 셈이냐?”
“두 분께서 우리를 영원히 한 몸으로 살게 두시면 돼요.”
“그것은 알겠는데 우리가 아버지인 것은 부정하지 마라.” 
결국 넷은 합의를 했다.
“이렇게 하시면 어떨까요? 기드로온과 데네브가 좋다고 하면 100일 동안 지구에 살게 하고, 그 이후에 왕자와 공주가 오르트 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를 자유롭게 왕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해 주시는 거예요.” 
시리우스가 조심스럽게 제의했다(시리우스가 말하는 100일은 우주 숫자였다. 지구에서는 100년에 해당된다.).
“너희들의 행복을 위해 내가 우주의 망신살을 선택하지. 대신 교수가 나를 위로해 주는 조건이다.”
“안 되실 말씀, 교수는 내 삶의 주치의요.”
“지금 무슨 말씀들 하시는 거죠?” 
알마크와 대제가 던지는 농담 같은 진담에 시리우스는 토라진 척했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니?” 
시리우스가 묻자 한 몸된 둘은 울먹일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왜 그러는지 몰라 모두가 긴장하며 사방천지가 숨 못 쉬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꿈만 같아요.”
“와아!” 눈빛보석과 은교의 대답에 수많은 동물이 떠나갈 듯 한 함성으로 기뻐했다.
“100일 후에 보자. 잘 살다 오렴.” 
각각의 유니콘을 탄 알마크 대총독과 오르트 대제가 먼저 우주로 떠났고, 스노를 탄 시리우스가 뒤따라 하늘로 올라갔다.
“왕눈깔 이녀석은 어디로 도망쳤지?” 
대제는 허전한 왼쪽 어깨를 툭 털고 오르트 은하로 돌아와서 많은 변화에 놀랐다. 저주가 풀리면서 오르트들이 괴물의 모습에서 살아생전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사람 괴물은 사람 형상으로 고양이 괴물은 고양이 모습으로 곰의 괴물은 곰으로 잠자리 괴물은 잠자리로 떡갈나무 괴물은 떡갈나무로 모두 저주가 풀려 행복해 하고 있었다.
“차 한 잔 마시러 왔네.”
“네. 따러 드리겠습니다.”
“마음을 비우면 윤회를 생략하는 수도 있지.” 
제석천이 알쏭달쏭한 덕담을 대제에게 주고 갔다.
“아니? 대총독이 여기 어떻게 온 것이오?” 
우주로 돌아온 알마크가 의장 공관으로 가자, 카니스가 1군단장과 허둥지둥 도망치려 했다.
“꼼짝 마시오!” 
카니스와 1군단장은 알마크가 오르트 대제와 내통하여 망명했다고 헛소문을 냈다. 그런 다음 카노푸스를 시켜 암살하려다 알테어에 의해 들통이 난 것이다.
“고맙네.” 
앝마크가 보는 앞에서 카니스 일당은 알테어가 이끄는 우주 국경 수색대에 의해 연행되었다. 그 포상으로 알테어는 베가를 날마다 마음 놓고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급히 별들의 회의가 소집되었고 우주 전쟁을 종식시킨 공로로 새 의장에 시리우스가 선출되게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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