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시리우스가 첫 번째 다룬 안건은 키드라 해적을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으로 인정해 준 것이었다.
“우리의 이름은 새 출발하는 뜻으로 ‘네오9’로 짓겠다.” 
태평양 깊은 바닷속에서 용왕처럼 군림하던 키드라는 23개의 위성과 해적별을 이끌고 태양계의 끝자리로 가 하델의 소원을 대신 이루었다(‘9’는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이라는 뜻이다.).
시리우스의 두 번째 안건은 왕자라 하더라도 몸속에 여럿이 아닌 하나의 몸만 넣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번의 정회 끝에 가까스로 통과되었는데 100일의 공고  기간을 거쳐 선포되는 것으로 했다.
“고맙소, 시리우스 의장.” 
알마크 대총독은 3군단을 재가 없이 움직인 일로 절대자로부터 경고를 받았으나 직위는 유지되었다. 시리우스 덕택으로 구명 탄원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아들아, 네가 또 나를 감동시켰구나. 그만큼 내 권위가 도전받는 것 같아 우울하다.” 
절대자는 오르트 대제를 개과천선시킨 것을 감동하면서도, 괘씸한 것을 벌하지 못해 아쉬워했다.
“아버지, 저들 스스로 해 내게 하시니까. 아버지께서 생각하지 않으신 감동을 저들이 드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알았다, 알았다. 아들 이기는 애비 없다더니. 그만 잊고 속히 돌아오너라.”
“그럴 수 없어 죄송합니다.” 
절대자는 그냥친구에게 1급 기밀 표시를 잊으라 한 것이다(절대자의 아들은 고독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또 다른 보람으로 즐거웠어.” 
‘행복한 집 연극단’ 미니버스가 저녁 무렵 화홍문 다리를 건너 돌아오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오늘 있었던 충주 맹아 학교에서 가진 연극에 대해 평가하고 있었다. 그곳은 청주 교구로 간 스테파노 주교가 원장에게 알려 주어 공연할 수 있었다.
 “응, 앞 못 보고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연극을 했지만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한 것 같아.” 
어떻게 하면 남을 웃겨서 자신에게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시킬까 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시남이가 오늘은 어른스러운 말로 시선들을 주목시켰다.
“은교야, 눈빛보석에게 나 좀 보자 그래.” 
‘행복한 집’ 마당을 들어서며 운전대를 잡은 채 마리아 원장이 말했다.

■ 4월에 내리는 눈 
우주 전쟁이 끝나고 지구에도 예전처럼 평화가 찾아왔다. ‘행복한 집’ 마당에는 은교가 특히 좋아하는 목련이 나무마다 하얗게 피었다.
“어서 오거라.” 
마리아의 부탁으로 은교가 눈빛보석을 팔달문에 가서 데리고 왔다. 눈빛보석은 ‘행복한 집 연극단’이 공연을 떠나는 날은 종종 팔달문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내가 욕심이 지나쳤던 것 같구나. 그동안 모르는 척했는데 은교가 공연 다닐 때도 너와 떨어지면 반지만 만지고 있더구나. 이 반지 네가 은교에게 주었던 거 같아서 돌려준다.” 
마리아 원장은 은교가 갓난아기일 때 쥐고 있던 기드로온이라고 쓰여 있는 반지를 내 놓았다. 그 반지를 은교에게 주면 혹시나 받자마자 떠나버릴 것 같아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너랑 은교랑 지구를 떠나지 말고 우리랑 함께 살면 안 되겠니? 우주가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나는 도저히 은교를 못 보내겠어.” 
마리아 원장은 눈빛보석의 손을 꼬옥 잡고 간절한 눈빛으로 매달리듯 말했다. 눈빛보석은 은교의 얼굴부터 바라보았는데 은교도 원장의 표정과 같았다. 눈빛보석과 은교는 앞으로 100년 동안 지구에서 살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겨우 100일 있으면서 지구의 소중한 이들보다 훨씬 오래 산다는 것이 많이 미안했던 것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어 저도 원장님께 엄마라고 부르고 싶어요.” 
눈빛보석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행복한 집’에서 나와 팔달문으로 갔다.
“날씨도 좋은데 소풍갈까?” 
눈빛보석은 차마 원장의 말을 할 수 없었다. 도리어 미안해서 그 말 대신 친구들에게 밖으로 놀러가자고 했다.
“좋아!” 
어디 안 나가고 대청마루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던 백구와 팔달문 작은 동물들은 눈빛보석과 함께 소풍 가게 되어 기뻐했다. 
“이곳은 언제나 다시 와도 잔디밭이 있어 최고야!” 
궁궁이가 연못가 언덕을 뒹굴 듯이 뛰어다니며 즐거워했다.
“제비꽃 좀 봐.” 
노랑가슴이 빠빠라기에게 살포시 눈짓을 했다.
“이런 날은 시 한 수 읊어야 제격인데 말이야.”
“네가 아는 거는 유행가 가사뿐이잖아.” 
길대장이 한껏 분위기를 잡는데 은바퀴가 놀리며 장난쳤다.
“어, 백구가 은교를 데리고 오네?” 
대두조가 빗죽뱃죽 고개를 끄덕이며 알렸다.
“은교.” 
은교에게 눈빛보석이 다가가자 팔달문 친구들도 모두 모여들었다.
“반가워.” 
은교가 동물 친구들에게 인사했다.
“길대장 이야기해.”
“사실은 발표할 말이 있어.” 
대두조의 재촉에 조금 뜸을 들이던 길대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 팔달문 식구들은 눈빛보석을 떠나보내기로 했음.”
“야, 그게 아니잖아.” 
길대장의 발표에 모두 당황하자 빠빠라기가 지적했다.
“아, 수정해서 다시 발표할게. ‘행복한 집’에서 은교와 함께 살도록 결정하고 보내주기로 했음. 단, 하루에 3회 이상 팔달문에 온다. 길대장 서명 끝!” 

눈빛보석은 무엇인가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아 친구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안아주며 느낌을 전하려 최선을 다했다. 동물 친구들을 하나하나 안아 줄 때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고 힘들 때 서로 지켜 준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스쳐 지나갔다. 그냥친구가 지구를 떠날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 눈빛보석도 알 것 같았다. 
웃음보다 아름다운 슬픔이 있고, 보석보다 빛나는 눈물이 있는 곳!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우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을 불가사이가 존재하는 곳!
“하늘을 봐, 눈이 와!” 
대두조가 갑자기 창공으로 날아오르며 외쳤다.
“봄눈이 내리네?” 
노랑가슴이 빠빠라기와 함께 눈 속으로 날아올랐다.
“야, 눈이다!”
“신난다!”
“오, 솔레미오!” 
은바퀴와 궁궁이가 이리저리 좋아서 잔디밭을 돌아다니고 길대장이 한 소절 밖에 모르는 곡조로 성악가처럼 목청을 돋구었다. 백구도 겅중겅중 뛰며 하늘에서 내리는 눈꽃송이를 열심히 따먹어 댔다. 
“얘들아, 예쁘게 눈이 내린다!” 
‘행복한 집’ 마당에서 은혜와 지수가 소리치자 아이들이 모두 밖으로 뛰어나와 눈을 맞으며 좋아했다. 
“4월에 눈이 내리네?”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현관문을 나온 마리아 원장도 신기해하였다. 팔달문 지붕 위에도 북수동 성당 위에도 그리고 행궁에도 공평하게 눈이 내렸다. 
“손가락 내어 봐.” 
은교의 말에 눈빛보석이 손가락을 내밀자 은교는 끼고 있던 반지를 빼어 눈빛보석의 손가락에 끼어 주었다.
“가만히 있어.” 
눈빛보석의 말에 은교도 반지를 빼어 준 손가락을 가만 두고 있었다. 그러자 눈빛보석이 마리아 원장에게서 돌려받은 반지를 은교의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4월의 눈이 축하하듯 허공 가득 내려 주고 있었다.  
“눈빛보석, 내 이름 불러 줄래?”
“데네브.”
“은교, 내 이름 불러 줄래?”
“기드로온.”.           

<끝>

 

‘시간의 지평선 너머’

◆작품소개= 이중삼 작가의 수원을 배경으로 한 대서사 장편 어른동화인 ‘시간의 지평선 너머’는 4383세의 나이를 먹은 소년(안드로메다에서 기드로온 왕자)이 헬리혜성을 타고 지구역에 내려 초록별에 사는 열두 살 된 어떤 여자아이를 찾아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어른동화는 한국에서는 처음 써지는 대서사 장편 ‘어른동화’로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트와일라잇, 아바타를 능가하는 스케일로 전개된다. 시공간의 한계적 삶을 장막 헤치듯 뚫고 무한의 공간으로 나아가게 했으며, 하늘 밖까지 넘나드는 영원한 사랑의 소통을 장엄하게 현실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중삼 작가의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의  하나의 배경인 수원화성 행궁 전경.
이중삼 작가의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의  하나의 배경인 수원화성 행궁 전경.

 

 에필로그 |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연재를 마치며…

안드로메다 ‘왕자’와 초록별 ‘소녀’의 사랑이야기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가 새수원신문 지령 100호 기념으로 2021년 4월 12일(101호)부터 연재되기 시작하여 2년 10개월에 걸친 장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러 비로소 대서사가 완성되었습니다. 
눈빛보석과 데네브를 통하여 알 수 없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시원이 우연이 아니라고 글로 그려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 온 것은 누군가를 만나러 온 것이고 그 누군가 기다리며 사는 일로 삶의 의미를 심었습니다. 
원래 이 작품 구성은 스케일을 광대하게 펼침으로써 블록버스터 영화의 원작으로도 좋은 어른동화이기를 기대하며 폭 넓혀 집필해 보았습니다. 그에 앞서 새수원신문과 인연이 되어 활자와 지면으로 먼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이 어른동화를 읽어 주시고 관심 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김인종 편집위원장님과 국장님 및 새수원신문 편집 제작 관계자분 그리고 다리 놓아주신 전 수원문인협회 정명희 회장님께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특히 탈고되기까지 산파역을 해 주신 한영미 시인님께 깊은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글쓴이 이중삼 드림

 

이중삼 작가 
이중삼 작가 

충북 충주 살미 출생. 시(詩)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아스팔트 위의 노루' '세상에 여자가 그 사람뿐이냐고 물으면' '꽃대' 3권 출간, 소설= '하늘바라기' '노크' 2권 출간, 우화= '2600년 후 이솝우화 그 다음 이야기' 4권 출간, 어른동화= '시간의 지평선 너머' 대서사 장편 탈고, 감성 스케치= '아주 사소한 것들' '그리움의 빈집' '예술의 하울링' 등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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