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정명희 수원문인협회장

세상에는 마침표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그 존재의 개수는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 개수와 상관없이 큰 상관관계를 가지고 온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을 마치고 난 후의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거나 과대망상증에 사로 잡혀 주위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일상의 마침표는 여러 모습으로 다가온다.

제일 먼저 만난 처음의 마침표는 현재보다 조금 젊었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오랜 시간의 마감으로 예견된 일이었다. 옆도 보지 않고 스스로의 삶에 함몰된 세월이라 그다지 서글프거나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되어질까 봐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준비라면 어색할지 모르는 많은 꿈을 꾸었다. 일종의 자격증도 여러 장 챙겨 두었고, 창밖으로 나가는 첫 단추라고 생각하며 설레이기도 했다. 사무실도 차리고 싶었고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그 보다는 했던 일의 연장에 무게를 두었다. 혹자는 너무 오랫동안 직업을 가지는 것은 앞으로 나가는 일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충고를 했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 때는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마무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주위의 많은 관심과 애정 어린 헤어짐은 화려한 앨범 속의 사진들처럼 여운이 길게 남겨졌다. 그 때는 마치 추억만 먹고 살면 될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잘 살 거야, 그리고 잘 될 거야’

마음속으로 수 없이 되 뇌인 말이 현실이 된 건 불과 몇 달이 되고 말았다. 그저 분주하게 무엇인가 열심히 살면 된다는 일념으로 여기저기 쫓아다녔다. 다른 친구들은 제일 먼저 발 빠르게 차를 팔더니 평생학습 센터에 몇 가지씩 프로그램 등록을 하고, 어떤 친구들은 여기 저기 해외여행을 다니느라 바빴다. 나름대로의 자기의 길을 택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무미하게 살지?’ ‘봉사도 하고 사회공헌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라며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한 지점이었다.

어느 날 잘 아는 언니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마음에 딱 맞는 일이 있다고 하며 소개를 해 주었다. 무료하기도 하고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욕구에 몇몇 사람들과 사무실을 함께 운영하며 그야말로 사회공헌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일을 위한 준비로 사회적응훈련도 받으면서 점심시간엔 돌려가며 밥도 해 먹고 놀기 반 일 반 현지답사도 가곤 했다. 그 곳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나이 상관없이 오는 곳이라 연세 많은 분들도 있어 댁까지 모셔다 드리는 일이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일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냈다.

물론 지금까지도 몇몇 분들과는 소식을 전하는 처지였지만 어른들 치다꺼리로 바빠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조금씩 내시간이 없어져 의욕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마침표의 시간이었다.

간혹 친구들이 뭐하느냐고 물으면 봉사활동 한다고 자랑을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제 몸 하나 돌보지 않고 무작정 내달린 탓인지 지금껏 속앓이로 앓고 있는 지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위에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병든다는 말이 이것이구나 생각할 정도로 태가 나빠졌다. 어깨 통증이며 시력저하, 온몸 저림 등 찔끔찔끔 건강의 적신호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든지 규칙적으로 활동하면 괜찮겠지 하며 바쁘지 않은 또 다른 일을 하기 시작했다. 모임에서는 뭘 하느라고 참석을 못하느냐며 잠시 쉬라고까지 했지만 알았다고 하고는 접촉을 꺼렸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삶의 곡선은 누구에게나 오르막 내리막을 준다.

어느 날 문득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하던 일을 멈추고 마음을 추스르며 혼자 집에서 명상을 하거나 누워있거나 하면서 바깥출입을 좀처럼 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몸도 그 전보다 편안해지고 어두웠던 표정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건강을 위해 호숫가 산책도 하고,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해 조금씩 책도 읽어가며 시간을 소일했다.

이제야 느끼는 것은 순간의 마침표들은 어쩌면 한 편의 생각하는 날개였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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