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 가장 아쉬운 점은 정치에 대한 대화가 대부분 정치가 개인의 이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선거에 출마한 사람의 과거 전력과 개인 신상에 대해서는 열띤 토론을 벌이지만 정작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비전 제시 부분에 대해서는 견해를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편견 때문인데 정치란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데 필요한 효율적인 장치라는 기본적인 가치를 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모순이 생긴 것은 비단 투표하는 사람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주된 원인은 정치적 판단을 정책이 아니라 지역감정과 개인적 의리에 호소해 온 정치가들의 모습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 결과 작은 나라에서 편 가르기가 횡횡하고 정치적 담론이란 정치가가 어느 계열, 어느 계파, 어떤 색깔인가를 따지는 파벌 싸움으로 전락하게 되고 만 것이다.

『이번에 우리 지역에서 누가 나온데…? 글쎄, 홍길동이 나오지 않겠어… 아, 그 사람 또 나와, 다른 사람 없나? 글쎄 말이야. 맨날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 뭐… 근데, 그 사람, 이번에 지역을 위해 뭘 하겠다는 건가…? 모르지, 아마 당에서 공천 받았으니 나오는 거겠지. 이변이 없는 한 그 사람이 될 거야. 지역에서 학교도 다니고 했으니 그 아성을 누가 깨겠어. 맞아, 중앙에서도 확실하게 밀어 줄 테니 당연히 되겠지. 우리야 투표장 가서 들러리 투표만 하면 되는 거고…』

이와 같은 냉소적인 담론들이 소모적인 이유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선거의 주인은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은 유권자들의 삶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심하고 고심하여 그 고뇌의 결과물을 사람들 앞에 내놓아야 한다. 올바른 의미에서 정치가는 유권자들에게 희생과 헌신으로 일관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출마한 사람의 능력과 미래 비전 제시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가 과거 어떤 계파였고 누구누구 라인이며 어떤 색깔이었는지를 꼼꼼하게 꿰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강조하자면 정치적 담론은 미래지향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정치가를 꿈꾸는 출마자의 소신과 철학이 제대로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굳이 위대한 정치를 꿈꾸지 않아도 좋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하여 어떤 희생을 할 수 있는지, 조그만 것이라도 지킬 수 있는 약속을 내놓는 양심의 출사표가 필요하다. 그가 한 약속이 임기 동안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작은 감동을 느꼈다면 복잡한 설명과 격한 웅변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행복과 웃음을 주는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들, 출마자에게서 시작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퍼져나가야 한다. 출마 하는 사람은 지킬 만한 약속들을 신중하게 제시하고 유권자는 출마자들의 신상명세가 아니라 그가 내놓는 약속의 진실과 허위를 구별하여 정책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바쁜 시간 내서 투표하는 보람은 제대로 된 사람 하나 뽑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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