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만의 문구 개정…공무원 ‘의견 제기’ 길 열린다
“부당한 지시 따라 책임지는 구조 개선 기대”…긍정 평가도
“체감 변화 제한적”…위법‧부당 지시 기준 마련이 관건

【서울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 정부가 국가공무원법에서 76년간 유지돼온 ‘복종 의무’ 문구를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변경하며 공식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공무원은 부당하거나 위법한 지시라고 판단할 경우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심각한 위법성이 있다면 이행을 거부할 수 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12·3 내란 사태 당시 위법한 명령임을 인지하고도 ‘복종 의무’ 조항 때문에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된 데 따른 후속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현행법상 공무원이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원칙은 존재하지만, 이를 명확히 보장하는 규정이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독일은 나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무원의 ‘이의 제기 절차’를 연방법으로 명문화해, 공무원이 명령의 합법성을 의심하면 즉시 문제를 제기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개정으로 위법 명령을 그대로 집행하는 일을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직사회에서도 “시대 변화에 맞는 조치”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최근 젊은 공무원층의 자기 목소리가 두드러지는 만큼 기존 ‘복종’이라는 표현이 조직 문화와 맞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성평등가족부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세대의 공무원 특성을 고려한 방향 조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부당한 지시를 따르다가 사후 책임을 지는 구조에 변화가 생길 것이란 기대도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는 구조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개정 취지에 공감했다.

반면 체감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공직사회는 결국 법과 규정 속에서 움직인다”며 문구 하나가 바뀌었다고 현실에서 큰 변화가 생기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른 부처 사무관도 “지시 거부권을 보장한다고 해도 실제 현장에서 적용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특히 개정 이후 남은 과제로 ‘위법‧부당한 지시’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꼽힌다.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구체적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업무 재량의 범위, 부당 지시의 판단 기준, 이의 제기 절차 등 세부 기준이 명확해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이번 개정이 공직사회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위법 명령의 집행을 방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실제 조직 문화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선 추가적인 제도 정비와 명확한 기준 설정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