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서울뉴스통신】 김부삼 기자 =‘父之讐不與共戴天 兄弟之讐不反兵 交遊之讐不同國(부지수불여공대천, 형제지수불반병, 교유지수부동국)’. 즉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고, 형제의 원수를 보고 무기를 가지러 가면 늦으며 친구의 원수와는 나라를 같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예기(禮記) ‘곡례편(曲禮篇)’에서 이르고 있다.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겪었지만 지난 반백년 간 북한과 대한민국은 ‘휴전상태’이면서도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적 교류 등을 해오며 ‘한민족’이라는 동포의식 아래 체제를 각각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해 지역과 세계 평화·안정을 수호한다’는 내용을 헌법에 명기한데 이어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명기하는 것이 옳다”, “적들의 전쟁의 불꽃이라도 튕긴다면 핵무기가 포함되는 모든 군사력으로 총동원해 징벌할 것”이라고 말하며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이빨’을 드러냈다.
여기 더해 김정은은 “(북한)헌법에 있는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며 “헌법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지난 김대중 정부가 폈던 ‘햇볕정책’, 노무현·문재인 정부가 지향한 ‘대북포용정책’ 등이 북한을 향한 일방적 ‘해바라기 정책, 물거품’이었던 것이 증명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계승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아직도 “우리 북한”이라는 말을 써가며 남침과 북핵 개발을 주도해왔던 김일성·김정일을 평화애호 지도자인 것처럼 표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같은 표현은 다름 아닌 제1야당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나왔다는 것에서 북한이 언제 도발할지도 모른다는 ‘안보 위협’을 느끼고 있는 국민들에게 혼동을 주고 있다.
이 대표는 1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의 적대행위 중단을 요청하는 방언을 하면서 “선대들, 우리 북한의 김정일, 또 김일성 주석의 노력이 폄훼되지 않도록, 훼손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김정은 위원장은 미사일 도발을 당장 멈춰야 한다. 적대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무모한 도발을 지속할수록 국제 사회에서 고립될 것이고,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심화될 것”이라면서도 이같이 밝혔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선 “북한에 본때를 보이겠다면서 ‘평화의 안전핀’을 뽑아버리는 그런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에 대한 적대적 강경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긴장을 낮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강대강 대치로는 평화와 번영을 이룰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옆집에서 돌멩이 던진다고 같이 더 큰 돌 던져서 더 큰 상처를 낸다 한들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라며 “강경하게 대치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싸워서 이기는 것, 기본적으로 필요하지만 싸우지 않아야 한다.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진짜 실력이다.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대통령의 책무라는 사실을 직시하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당장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올린 글에서 “김일성, 김정일이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이재명 대표는 대체 어느 별에서 왔나?”라고 맹비판했다.
하 의원은 “김정은의 터무니없는 도발과 위협은 있는 그대로 비판하면 된다. 그런데 김일성, 김정일을 평화애호가라도 되는 것처럼 묘사하는 건 무슨 논리입니까”라며 “김일성, 김정일이 평화의 사도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최대 위협이었다는 건 초등학생도 다 아는 상식”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하 의원은 “김일성은 수백만의 사상자를 낸 6.26 한국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이고 김정일 역시 권력을 장악한 후 아웅산 폭파사건과 KAL기 테러를 자행하고 죽기 직전까지 연평도 포격사건과 천안함 피격사건을 저질러 우리 국민과 장병들이 희생됐다. 핵무기 개발로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시아와 국제평화를 위태롭게 만든 건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 평화에 반하는 독재자로 규탄하고 있다”며 “이재명 대표의 발언은 김일성, 김정일의 무력도발에 맞서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분들의 명예를 짓밟는 것이다. 즉각 발언을 취소하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앞서 16일 윤석열 대통령도 용산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김정은의 발언에 대해 “북한 당국은 남북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며 “북한 정권 스스로가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 집단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연초에 있던 북한의 포 사격 도발에 대해서도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며 “전쟁이냐 평화냐를 협박하는 재래의 위장 평화 전술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도발 위협에 굴복해 얻는 가짜 평화는 우리 안보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뿐”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6·25전쟁 등으로 이산가족이 된 남측 생존자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4만명도 남지 않은 상황. 가족간 상봉도 지난 2018년을 끝으로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약 250만 명의 민간인과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한국군은 40만명 이상, 북한군은 50만명 이상이 죽었고, 한국 민간인들 또한 100만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모와 자식이 죽었고, 형제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휴전 후 7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은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가 돼 있는 상황이다. 탄압 속에 굶주리고 죽어가는 주민들에게 있어 ‘인도주의적 지원’등은 해야겠지만 그들을 억압하고 또 전쟁을 일으킨 북한 정권의 독재자들을 평화애호자인 것처럼 칭하는 것은 수습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시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