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두고 온 집을 본가라 부른다. 본가를 팔지 않고 그냥 둔 채로 이사했다. 어머니가 보행 능력을 잃은 뒤 본가 가까운 곳에 월세 아파트를 얻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아버지가 생전에 지은 본가로 돌아갈 것이다. 어머니 보행 보조기구를 다섯 가지나 샀는데 모두 바퀴가 달려있다. 단독주택은 문턱이 있어 보행 보조기구를 사용하기 어려워 월세 아파트로 이사한 것이다.

매일 아침 6시 본가에 자전거를 타고 간다. 개에게 밥을 주고, 신문을 가져오기 위함이다. 신문 배달을 아파트로 옮기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은 집을 매일 보고 싶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그런데 아버지는 집과 자전거를 남기셨다. 아버지 자전거로 매일 본가에 간다. 핸들을 잡으면서 아버지의 굳은살 박인 손의 촉감을 느낀다. 우리 집안의 인사는 악수다. 출근할 때, 다녀왔을 때, 저녁 먹고 헬스장 갈 때, 헬스장에서 돌아왔을 때 이렇게 하루 네 번 안방 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아버지 어머니와 악수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악수했지만, 어머니는 한동안 쭈뼜쭈뼜 손을 내밀다가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악수가 되었다. 돌아가신 후 아버지 일기장에서 아들과 하루 네 번 악수하면 그 촉감으로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전해온다. 라는 글을 읽고 감사하여 울었다. 나는 매일 아침 그 따뜻함을 자전거 핸들에서 다시 만난다.

신문 가지러 가는 자전거 길에 가파른 언덕이 두 군데 있는데 내 능력으로는 젖 먹던 힘까지 쏟아야 오를 수 있다. 근육은 한계치를 넘을 때 생긴다. 석 달을 다녔는데도 자전거 언덕길은 정말 어렵다 오를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아파트 관리원들도 볼 때마다 대단하셔요. 라며 탄성을 지른다. 아버지는 평생 동네 길을 자전거로 다니셨다. 그 길에서도 아버지의 가쁜 숨을 느낀다.

두 개의 가파른 언덕길은 허벅지에 근육을 만들어주었다. 그걸 믿고 중단했던 마라톤을 3년 만에 신청하였다. 사실 내 사전에 10km는 마라톤이라고 할 것도 없는 늘 뛰는 거리다. 매년 하프코스를 뛰었지만, 뇌경색이 찾아온 후 몸도 불고 근육이 빠져 자신이 없기에 10km로 줄인 것이다. 그런데 대회 일주일 전부터 발등이 아팠다. 며칠 바쁜 일로 시내를 빠른 걸음으로 다니며 1만 보 이상, 어느 날은 2만 보 정도 걸은 것이 전부인데 발 등 인대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의사에게 내가 마라톤을 해도 될까요? 물으니 ‘운동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면 안 하는 것이 답입니다.’라고 말했다. 마라톤을 포기하는 것이 답이다. 마라톤에 출전하는 것을 아내가 알면 큰일이다. 뇌경색에 더하여 최근 3년 동안 세 번이나 졸도한 적도 있어 온 식구가 마라톤 뛰는 것을 결사적으로 말린다. 주최하는 신문사에서 마라톤 운동복과 등번호를 소포로 보낸다고 연락이 왔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들키지 않으려면 아파트 복도 소화전이 제일 좋다고 한다. 얼른 우편배달부에게 소화전에 슬쩍 넣어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출발지 오산종합운동장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이상하게 학창 시절에도 달리기를 하기 전에는 소변이 마렵다. 출발 전 화장실에 들렀다. 세상에! 화장실 옆에 지인이 있다. 격려차 나왔단다. 기념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었는데 잘됐다.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었다. 출전한 선수는 모두 4,775명, 그중에 10km는 1,361명, 출발 총성과 함께 모두 보무도 당당히 뛰어나갔다. 수많은 사람이 나를 추월하며 달려나갔다. 연습이 부족한 나는 아주 천천히 달렸다. 호흡을 규칙적으로 하면서 오늘 절대 오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오버할 수도 없다. 완주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10km를 제대로 뛰려면 최소한 5km를 스무 번은 연습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연습한 거리는 3km를 다섯 번 뛴 것이 전부다. 정말 말이 안 되는 무리한 출전이다.

오산천변을 뛰는 아주 평탄한 코스였다. 하늘은 푸른 물을 뿌린 듯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어린 시절 고향 강변 풀밭에서 소 풀을 뜯기던 그 하늘이다. 천변에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리며 웃는다. 안개처럼 핀 개망초 군락은 오늘을 위해 준비했다며 긴 목을 뽑아 인파를 맞는다. 하긴 저들이 오늘 같은 4,775명의 환영 인파를 만나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니 그들도 축제였다. 내가 왜 가냐며 꼼짝않고 물을 응시한다는 왜가리는 엄청난 인파를 보고 화들짝 날개를 편다. 한숨에 한 걸음씩이다. 입으로 두 번 날숨을 뱉고 두 발짝, 다시 코로 두 번 숨을 들이쉬면서 두 발짝이다. 이렇게 네 박자의 리듬을 맞추며 규칙적으로 달렸다.

앞서가는 남정네의 뒷머리가 희끗희끗하다. 힘겨워 보인다. 그를 추월할 수 있다는 생각을했다. 그런데 그의 튼실한 하체에 스포츠테이핑이 정교한 무늬로 붙여진 것을 보고 순식간에 단념했다. 테이핑만 봐도 그는 프로다. 난 어림도 없다. 뒤에는 40대 초반의 아버지가 중학생 아들을 채근하면서 달린다. 아버지는 힘겨워하는 아들에게 할 수 있다며 재촉하지만, 아들은 죽을 맛이다. 청소년이 더 잘 달릴 것 같지만 훈련되지 않은 청소년에게 장거리는 버거운 게임이다. 부자는 드디어 걷기 시작하면서 쳐졌다. 부자를 추월하였다. 내가 추월한 최초의 사람이 나왔다.

계속되는 레이스 도중 낙오한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0km에 출전한 총인원은 1,361명, 그중 나는 거의 최고령에 해당된다. 정말 못 말리는 나의 경쟁심리는 여기서도 나왔다. 오늘 몇 명이나 추월하는지 세어보기로 했다. 주로 경험이 없는 10대, 20대의 젊은이들이 쳐진다. 처음에 기세 좋게 뛰어나가다가 2km 정도 달리면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 걷게 된다. 속력은 느리지만, 내리막이건 오르막이건 일정한 속도로 달렸다. 신기한 것은 젊은 사람 43명을 추월하면서 머리 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추월하지 못했다. 그들은 선수이기 때문이다. 절대 쳐지지 않는다. 어른이 그냥 되나! 연륜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은근한 젖은 장작 불길처럼 끊이지 않고 오래 탄다.

달리면서 또 아버지의 자전거가 생각난다. 아버지 자전거로 석 달 동안 언덕을 오르면서 10km 달리기가 가능해졌다. 갑자기 아버지가 보고싶다.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가 갑자기 뿌옇다. 개망초 군락은 은하수처럼 뿌옇게 흐린 빛을 내며 마라톤 길을 낸다. 개망초와 눈물이 만든 은하수 길이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맹기호 수필가.
맹기호 수필가.

약력
1998년 월간 문예사조로 등단
매탄고등학교장 역임 경기수필가협회장
시집 : 『그리워서 그립다』 수필집 : 4인 4색 『틈과 여백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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