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3대 썰렁 관광지 중에 하나가 바로 로렐라이 언덕이라 하지요. 아마도 그 언덕에 있는 동상의 여인상을 보고 한 말 같습니다. 언덕 위에 있는 여인의 동상은 보통의 체구로서 유럽 평균의 여자보다 작아 보여 아주 평범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 인물들의 동상을 보고, 크기를 비교해 보면 매우 왜소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게 크기로 비교하니 이 여인상과 덴마크의 인어공주상,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을 보고 실망했을 것입니다.

로렐라이 언덕은 날카로운 바위가 직각을 이루어 라인강을 향하여 옆으로 두세 번 돌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위 끝 난간에 서면 뱃전에서 바다를 보는 것처럼 라인강을 왼쪽, 오른쪽으로 다른 각도에서 내려다 볼 수 있지요. 멀찍이 ㄱ자, S자로 굽어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면 산 사이에 강물이 고인 듯이 머물러 산하가 평화로워 보입니다. 마치 부여의 낙화암에서 백마강을 내려다 보는 것과 비슷한 정경이지요. 그러나, 낙하암의 높이가 50 m 내외인데 비하여 로렐라이 언덕의 바위는 무려 130 m로서 거의 3 배의 높이라서 아래를 직각으로 내려다보면 으리으리합니다. 그러므로, 로렐라이 언덕이 아름답다기보다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라인강이 긴장감을 주어 짜릿한 놀라움을 주는 것이지요.

그 언덕만 보는 것으로 로렐라이 관광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방파제처럼 강물을 막아놓은 곳의 끝에 또 여인상이 있습니다. 그 여인상도 보고 오면 좋겠지만 길도 멀고 주차하기도 어렵다고 하여 가보지 못했습니다.

더 인상적인 풍광은, 로렐라이까지 가는 동안, 라인강변을 달리며 볼 수 있는 강변 마을들이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로렐라이를 향해 가다 보면 에르바흐(ERBACH)에서 라인강 줄기를 만납니다. 여기서부터 로렐라이까지 가는 30분 정도, 계속 이어지는 마을과 고풍스런 성(城)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들은 대부분 강 위의 언덕에 있는데, 동화에 나오는 그림같은 모습이라서 강변을 바라보느라 눈길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뤼데스하임에서는 리푸트를 타고 포도밭 위로 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그 산 위에도 가본 적이 있는데 여기도 라인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명승지이지요. 이 마을에서는 지금도 포도를 많이 재배하고 와인을 많이 생산합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와인을 만들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지요.

이 라인강을 따라가는 드라이브 길은 양평의 한강변을 달리는 것처럼 아릅답습니다. 강변 양쪽으로 보이는 집들은 대체로 하얀색 벽으로 되어 있어 산뜻하고, 마을마다 중요 지점에 솟은 십자가와 고풍스런 예배당도 조각품처럼 눈길을 머물게 합니다. 로렐라이 언덕은 목표 지점이고, 그 목표까지 가는 과정이 일품이라 할 수 있지요. 강물 위에 떠가는 유람선, 커다란 백조의 여유로운 유영, 강변으로 도열해 있는 가로수와 하얀 집들, 모두가 그림 같은 장면들입니다.

이 로렐라이 언덕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 제주의 돌하르방이 두 개 놓여 있습니다. 제주의 조그만 구멍이 보이는 잿빛 바위(현무암)로 돌하르방 명인이 만든 조각품을 제주시장이 이곳에 기증한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돌하르방이라 우선 반가웠고, 우리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전시한 것 같아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변환경과 어울리지 않아 서구적인 마을에 낯설게 서 있는 이방인 같았습니다. 로렐라이 언덕에 있는 여인상에서는 사진을 촬영하려고 많은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사진을 촬영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돌하르방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별다른 의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마치 빵을 먹는데 김치를 갖다 놓은 것 같았습니다.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예술적인 안목이 부족해 그렇게 봤는지는 모르지만요.

여하튼, 이 로렐라이 언덕으로 몰려오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보면 세계적인 명승지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로렐라이 언덕 위에 있는 동상이 별볼일 없다고, 또, 썰렁 관광지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평가라고 해야겠지요. 이 언덕까지 오는 동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강변 마을, 언덕에서 바라보는 라일강의 풍광은 충분히 찾아올만한 명승지라고 여겨집니다. 이 언덕에서 노을을 볼 수 있다면 또 절정의 절경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오펜바흐로 돌아가기 위하여 해가 기우는 시각에 언덕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30분쯤 달려가 Geisenheim 캠핑지가 있는 마을의 입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몰을 보며 만찬을 들게 되었습니다. 예약하지 않고 들어가니 라인강을 바로 볼 수 있는 가장자리가 아닌 안쪽 자리를 주어 조금 아쉬웠지요. 잠시 밖으로 나와 사진을 촬영하러 강가에 가니 5, 6세로 보이는 소녀가 백조에게 먹이를 주고 있더군요. 아주 큰 고니가 깃을 세우고 소녀의 앞으로 달려왔습니다. 좌우에서 무려 3 마리가 더 달려왔습니다. 내가 본 날아다니는 새 중에 가장 큰 새가 바로 그 고니였습니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산그림자가 강물 속에 서서히 잠기고 있었습니다.


채찬석 수필가.
채찬석 수필가.

약력

수원문인협회 회원, 교육수필가, 종자와 시인박물관 운영위원장

<아동문학평론>에서 동화평론으로 신인상 수상

‘꿈을 위한 서곡’ 수필집 발간 후 이어서 수필집 4권 발간

<수원문학>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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