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수 씨(사진 = 손은수)2025.09.12, snakorea.rc@gmail.com ,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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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 서울뉴스통신】 김재희 기자 = * 퇴직 후 다시 찾은 삶의 무게와 의미

“정년은 기쁨이 아니라 안기쁨(기쁨이 아닌 걱정이 된 일) 이었습니다.”

인터뷰에서 손은수 씨(전남 해남군 북일면 출신)는 담담하게 퇴직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손 씨는 SK그룹 계열 경비회사에서 영업소장으로 30년을 근무한 그는 60세 정년퇴직을 맞으며 비로소 ‘경제와의 단절’이라는 벽 앞에 섰다고 말했다.

“아침마다 출근이라는 무거운 일과가 기다렸는데, 이제는 그것이 사라졌지요. 처음엔 자유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뿐이더군요. 이후엔 허무가 몰려왔습니다.”

얼굴을 봐서는 아직 정년의 나이로 보이지 않은 손은수 씨, 40년 가까운 직장생활은 성실함과 안정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막상 퇴직 이후의 삶은 길을 잃은 듯 공허했다고 말한다.

손 씨는 “내 인생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바로 그때, 오래 잊고 지냈던 ‘취미’가 삶의 구원처럼 다가왔다고 한다.

2025.09.12, snakorea.rc@gmail.com ,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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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으로 다시 시작된 루틴

손 씨의 음악 인생은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새벽에 소꼴을 베러 나갔다가 논두렁에 버려진 낡은 기타를 주워오면서 시작됐다는데, “촌놈이 가진 것 없는 상태에서 그저 통기타에 부황한 거지요. 그 때가 지금 생각하니 1977년 인가?, 독학으로 배우다 보니 제대로 익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기타는 제 청춘의 동반자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산사태물난리’라는 그룹사운드에 참여해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음악은 그 의 삶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결혼, 생계, 직장의 무게가 취미를 짓눌렀다.

2023년 퇴직을 1년여 앞둔 어느 날, 그는 음악을 다시 붙잡았다. 처음 시작은 색소폰이었다. “지역 분위기상 색소폰을 배우게 됐는데 아주 좋았어요. 하지만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죠. 아! 나는 기타리스트였구나.”

그는 다시 기타를 손에 쥐었고, 밴드를 결성했다. ‘외인악단’이라는 이름으로 여섯 명의 단원과 함께 봉사공연을 다닌다. 요양원, 마을회관, 축제 현장에서 기타리스트로 무대를 채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보다는 제 루틴이자 생활의 활력소입니다.”당당한 손은수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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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향교와 전통문화의 울림

손 씨의 활동은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남향교 문화예술단 총무로 활동하며 각종 유교 행사와 전통 의례에도 참여한다. 청년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향교 상벌위원으로 활동하며, 해남향교에서 향사하는 18개 원·사는 물론, 대흥사 서산대제 제관으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통 의례 속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제관으로 참여하다 보면 ‘내 뿌리’와 맞닿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 또한 하나의 루틴이자 취미지요. 누군가는 취미와 전통 활동을 별개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모두가 제 삶의 연장선이라 여깁니다.”손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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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마대사와 그림, 새로운 발견

그러다가, 음악 외에도 손 씨는 새로운 취미를 찾아 나섰다. 퇴직 후 심심풀이로 시작한 그림이 어느새 그의 또 다른 루틴이 되었다.

“그림도 아닌 만화 같은 그림, 처음에는 그냥 옆에 있는 그림책을 따라 그렸습니다. 달마대사를 그려봤는데, 누군가가 ‘그 형상이 계속 그려진다, 이건 당신만의 캐릭터다’라고 하더군요. SNS에 올려봤더니 뜻밖에도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림은 단순한 낙서에서 시작됐지만, 하나둘 쌓이면서 손 씨의 ‘달마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하루 네 점씩, 지금까지 600여 점을 그렸다. 목표는 천 장이다.

“천 개가 되면 그만 두려고 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천 장이 완성되면 제 인생 첫 전시회를 열고 싶습니다. 달마 그림이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퇴직 이후 삶의 기록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거든요.”

전시회를 향한 이 계획은 손 씨의 그림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다. 단순한 개인의 루틴을 넘어 지역사회와 나누는 문화 활동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5.09.12, snakorea.rc@gmail.com ,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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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가 삶을 구원하다

손 씨는 자신의 취미를 ‘루틴’이라 표현한다. 루틴은 단순히 반복적인 습관이 아니라 삶을 붙잡는 끈이자 새로운 시작의 무대다.

“사람은 취미가 없으면 인생에 대해 생각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퇴직 후 허무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음악과 그림 덕분입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제 인생은 무의미한 생명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의 SNS에는 달마 그림과 함께 간단한 제목, 짧은 의미가 붙는다. 만화 같은 낙서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웃음을 준다. 손 씨는 “재능은 없지만, 재주는 있더군요”라며 소박하게 웃었다.

* 앞으로의 계획 – 소설가의 꿈

달마 그림 전시회 준비를 하고 있는 손 씨는 또 다른 취미를 준비하고 있다. 바로 소설이다.

“음악과 그림에 이어 이제는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내 이야기를, 혹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 마지막 루틴이 될지도 모르지요.”

그는 이미 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를 졸업하며 글과 영상에 대한 기본기를 다졌다. 정년 이후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은 이유는 “새로운 취미를 위한 준비”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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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삶, 그리고 마을의 뿌리

손 씨는 1남 2녀를 두고 있다. 아내와 세 자녀 모두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이제는 내가 집에서 가장 한가하다”고 웃는다. 외항선 선박통신사로 5년간 바다를 누볐고 외국에서의 경험, 통신·전기·소방을 전공했던 학창 시절, 그리고 30년 넘는 직장생활은 그의 인생을 단단히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제 인생은 늘 ‘배움’과 ‘일’로 채워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취미와 루틴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두 번째 인생의 방향입니다.”

* 루틴이 곧 삶이다

손 씨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소소한 퇴직 후 일상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취미는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라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라는 것이다.

2025.09.12, snakorea.rc@gmail.com ,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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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백수지만, 루틴이 있는 백수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낙서를 하고, 기타를 연주하고, 봉사공연을 다니며 하루를 보냅니다. 그게 제 행복입니다.”

손 씨에게 루틴은 더 이상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자 또 다른 이름의 행복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달마 그림 1000장을 채운 뒤, 세상과 나누는 전시회만을 생각하며 그 후는 아직 모르는 것일 것이다.

손은수 씨는 말한다. “그림 한 장 한 장이 제 인생의 기록이자 루틴의 흔적입니다. 전시회를 열면, 저처럼 퇴직 후 길을 잃은 분들에게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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