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님과의 인연은 48년전 수원 세류동에 있는 화교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러 갔다가 만나서 지금까지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통성명을 하는 과정에서 고향이 같지는 않지안 6키로 정도 떨어진  곳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각별해졌다  산청군과 합천군의 경계지역인데 K형님은 산청이고 나는 합천이다.
질기고도 아름다운 인연으로, 그 동안의 에피소드를 글로 쓰자면 책을 한 권 내고도 남을 것이다.
오늘은 요즘 세태에  정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꼭 맞는 속담 <소가 웃을 일> 이 너무 많아서 추억을 소환하여 소회를 뱕혀본다.
 비록 직장은 다르고 근무지는 달라도 우리는 전근을 가도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단신부임을 했기 때문에 주말에 집에 오면 만나곤 했다.
 그러구러 세월은 무심히 흘러가 K형님은 정년퇴직을 하고 나는 소위 명예퇴직을 했다.
 그것도 한 날 한 시에....
K형님은 정년을 채우고 만60세에 그야말로 훈장까지 받는 명예로운 퇴직인데 나는 말이 좋아서 명예퇴직이지 50대 초빈에 쫒겨난 것이다. 더 이상 올라갈 데도 없어서 젊은 나이에 실직을 한 것이다.
 퇴직 후 우리는  수원 A대학교 평생교육원 자격증 취득반에서 한문지도사와 약용식물관리사 민간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 후 각자 화서역 앞에 있는 상가의 1층과 5층에 조그마한 평수의 사무실을 매입하여 <한문교육연구원>과 <약용식물연구원> 간판을 걸고 매일 만났다.
 신나게 지내다가 그것도 시들해질 즈음 우연한 계기가 있어서 둘 다 문학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 무렵 나는 돕는 배필이 암선고를 받아 수술 후 긴 투병생활 뒷바라지를 하느라(지금까지 14년째 이어짐) 소홀히 하였고, 다부진 성격의 K형님은 열심히 하여 수필, 시조 장르에 등단하여 문학단체 활동도 열심으로 하고 각종 상도 수상하였다.
 회원으로 있는 수필가협회에서 발행하는 문학지에 우리 얘기를 수필로 썼다고 출판기념회 때 오라고 하셨다.
막상 당일에 장본인은 빙부상을 치루느라 참석치 못하고 나는 책 한 권 받아서 읽어보고 이 글을 썼다.
 반박의 글은 아니지만 내용은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하겠기에 이렇게 장황하게 횡설수설하고 있다. 평소에도 서로 생각이 달라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고 있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 티격태격하는 것으로 비춰 지는 모양이다.
 비근한 예로, 자주 식사를 같이 하는데 공직에 있을 때의 습관 때문인지 맛있는 집을 골라서 다닌다.
 예컨대 봉담으로 식사를 하러 갈라치면 나는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화서역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덕영대로 타고 가다가 월암IC에서 의왕ㅡ과천간 고속도로를 타면 교통신호도 없고 금방 갈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하든지 내 차로 갈 때면 그렇게 실행해 버린다.
그러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K형님은 우회전하여 평동 ㅡ고색ㅡ오목천으로 가지 않는다고 지청구를 하시고 종국에는 화까지 내신다. 그럴 때면 종종 동행하는 조시인은 우스워 죽겠다는 양 깔깔댄다.
 <합천 쇠가 웃을 일이다> 라는 수필의 내용만 해도 그렇다.
 <사돈 남 말 한다>는 속담처럼 아전인수격의 표현이라는 게 나의 주장이다.
 <삼수갑산을 갈지언정 말은 바로 한다> 는 속담에 나오는 '삼수와 갑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한 산골이라 이르던 말로 조선시대에 귀양지 중 한 곳이었다.
 서부경남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쓰는 말로 '삼장 새내'라는 말이 있고 산청군에 속하는 지리산 자락의 삼장면괴 시천면을 이르는 말이다.
 경상도의 대표적인 오지이다.
 이런 곳을 두고 있는 산청에서만 유독 <합천 쇠가 웃을 일이다>라고 한다.
 산청이나 합천이나 깡촌이기는 마찬가지인데 하도 기가 차서 발끈한 것이다.
 이 얘기의 시말을 써보면 이렇다.
 흔히들 <서천 소가 웃을 일이다> 라는 말도 자주 듣는 소리인가 본데 그 뜻을 명확히 하기위해 내가 아는 우보씨의 블로그에 나오는 글을 찾아 읽어 보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허시중 시인
허시중 시인

약력
- 동부로지스(주) 댸표이사 역임
- 민들레지구촌교회 은퇴장로
- 한국가을문학 편집위원장
- 한국미소문학 작가회 운영이사
- 한국문인협회 오산지부 회원
- 한국산림보호 편집위원장
- (주)스카우트 경영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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