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남부 = 서울뉴스통신】 김인종 기자 = 어렸을 때 청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 동네 하늘에는 늘 가난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생 80여 명 중 5명만 중학교에 들어갔다. 다행히 부모님은 나를 오산에 사는 친척에게 맡겨 공부시키려고 오산의 한 사립중학교에 입학시켰다.
그 당시 오산 사람들은 초등학교를 마치면 대부분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한다. 대신 인근 면 지역 학생들이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내 책상 옆에 앉아 있는 서탄면 출신 규민이와 정희, 동탄면 영철이는 내가 충청도에서 와서 말투가 좀 다르다고, 쉬는 시간에는 가만히 있다가 수업 시간만 되면 괴롭힌다. 수업 시간에는 반항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 나를 심하게 괴롭혔던 이름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특히 내 뒤에 앉아 있었고 지금도 동탄에 사는 영철이와의 일은 남다르다. 영철이는 수없이 펜촉에 검정 잉크를 묻혀 내 등을 찌른다.“이제 그만해, 그만해, 그만해!”라고 말해도 신이 나는지 더 찌른다. 교복 상의가 흰색이라 잉크를 한번 묻히면 잘 지워지지 않는다. 왜 교복을 흰색으로 만들었을까? 검은색으로 만들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표백제로 잉크를 빼면 나중에는 옷이 뚫어져 금방 헌 옷이 된다. 너무나 괴로워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도중에 고향으로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영철이는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더 세다. 나하고 영철이가 싸우면 나 혼자와 그 지역 초등학교 출신 수십 명과 싸우는 격이 되기 때문에 함부로 대들 수가 없다. 잘못하면 맞아 죽을 수도 있다.‘호랑이를 만나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이 있다.
2학기가 되면 괴롭힘이 멈출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았지만 그대로였다. 오늘도 잉크를 옷에 묻히고 찌르며 놀려댄다. 화가 너무 많이 나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차렷, 경례.”라고 말하는 반장의 구령 소리가 사라지자마자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며 “야, 밖으로 나와!”라고 말했다. 영철이는 신이 난 듯 나를 쫄랑쫄랑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단단한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마 다른 아이들은 영철이 편을 들면서 내가 KO패 당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한번 해보자. 여기서 지면 죽는다.’영철이가 자신만만하게 달려들기에 온 힘을 다해 한 방을 날렸다. 내 주먹 한 방으로 영철이는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언뜻 바라보니 코피를 줄줄 흘리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것이 아닌가.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1년 동안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 듯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누구든지 달려들기만 하면 한 방에 해치워버리겠다는 듯,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들듯이 서 있었다. 영철이는 일어날 힘도 없는 듯, 송장처럼 한참 동안 축 늘어져 있다 겨우 일어나더니 흙을 털며 교실로 들어갔다. 구경하던 아이들은 싸움이 너무 싱거웠던지 금방 흩어져 교실로 들어갔다. 언뜻 영철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싸움이 너무 싱겁게 끝났다. 1년이 다 되도록 그토록 힘들었던 일이 채 5분도 안 걸려 해결되었다. 정현이가 중학교 1학년 학생 중에서 가장 힘이 센 놈을 한 방으로 날렸다니. 그동안 체했던 가슴이 뻥 뚫리긴 했지만, 왠지 모르는 허전함이 밀려들었다.
‘정현이와 영철이가 싸웠는데 영철이가 정현이한테 한방에 KO 당했다.’라는 소문이 중․고등학교 전체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담임선생님이 알고 나를 싸움쟁이라고 할까 봐 은근히 겁이 났다. 동물의 세계에서 약한 자가 강한 자를 만나면 머리를 조아리는 것처럼, 내 앞에서 모두 그랬고 나를 호랑이로 만들어 놓았다. 잠자는 사자를 깨운 것이다.
그 한방의 힘으로 졸업할 때까지 나를 건드리는 학생이 없어 마음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싸움에서 이겨 전리품을 받은 듯, 2학년 때 나를 반장으로 뽑아주더니, 3학년 때도 그랬다. 또 전교 학생회장에 출마하라고 추천인 서명까지 받아왔기에 마지못해 입후보했지만, 그 지역 초등학교 출신이 아니어서 당선되지는 못했다.
그 후 60여 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그때 받은 깊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겨 주었던 영철이는 다른 사람을 못살게 굴고 괴롭힌 행위를 까마득히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행동과 말이 얼마나 오래가고,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학이나 이사를 오거나, 출생 지역이 다르거나, 말투나 피부색이 좀 다르거나, 체격이 작거나 장애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 텃세를 부리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괴롭히고 따돌리는 습성이 있다. 시골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 심하다. 도시에서 꿈에 부풀어 귀향했는데 동네 사람들의 심한 텃세로 곤욕을 치르다 포기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학교 다닐 때 다른 학생을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한 전력이 발견되어 낭패당하는 일이 언론에 가끔 보도된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할 다문화 시대인데, 우리나라, 우리 동네, 우리 학교, 우리 직장, 우리 모임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맞아줄 수는 없는가.
1년에 몇 번씩 중․고등학교 동창회를 개최하면 나는 으스대기나 하듯이 거의 빠짐없이 참석한다. 너무나 깊은 상처를 남겨주었던 그 친구들은 죄책감이 들어서인지 나오지 않고 영철이만 간혹 나온다. 몇 달 전 친구 결혼식장에서 영철이를 만났다. 중학교 때 나를 괴롭혔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다른 친구들이 옆에 있어서 하지 못했다.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를 이제야 들추어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기 전 언젠가 중학교 1학년 때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말해준 다음 너그러이 용서해 주고 싶다.
약력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수일중학교 교장 퇴임
<<서정문학>> 수필 등단, <<수원문학>> 시 등단
수원문협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