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의 논설주간 (경영학 박사)​
​강준의 논설주간 (경영학 박사)​

【서울 = 서울뉴스통신】 김부삼 기자 =19세기에는 신(神)의 죽음을, 20세기에는 인간의 죽음을 선포한 현대 문명은 이제 그 종착지를 향해 가속하고 있다. 21세기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성의 붕괴라는 심각한 역기능 또한 분명히 자리 잡고 있다.

인공지능, 생명공학, 디지털 기술 등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인간다움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기술의 진보가 도덕의 진보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외형적 성과만을 추구하는 사회 풍토는 인간을 점점 더 비인격적이고 단편적인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다.

숭고한 존재로 여겨졌던 인간은 이제 그 정의마저 흔들리고 있다. 고유의 사고 능력은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이끄는 대신, 때로는 스스로를 비참하게 질책하게 만들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인간이 영위해야 할 진실된 삶은 피상적이고 맹목적인 삶에 밀려나고 있다. 인간의 본질과 존재의 가치는 점차 가벼워지고, 삶은 내용 없는 형식만을 쫓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외형적인 성공과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한다. 그러나 그런 표피적 가치 추구는 결국 인간성의 공허함을 불러온다. 학벌, 직위, 재산과 같은 외적 조건은 인간의 가치를 결정짓는 절대적 척도가 될 수 없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내면의 윤리와 삶의 태도,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서 비롯된다. 형식만을 좇고 본질을 외면한 사회는 결국 텅 빈 껍데기일 뿐이다.

본질보다 기교를 중시하고, 외면의 기술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오늘날의 풍조는 인간 내면의 본질적 가치를 잊게 만든다. 당장은 화려하고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나, 그 끝에는 인간성을 상실한 삭막함만이 남게 된다.

‘아프리카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생명 경외’에서 “나는 살려고 애쓰는 생명체들 속에 있는, 또 다른 살고자 애쓰는 생명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생명체에 대해 동일한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생명을 증진시키는 것을 ‘선(善)’, 생명을 파괴하는 것을 ‘악(惡)’으로 규정했다. 이것이야말로 도덕의 근본이자 절대적 원리다. 그는 심지어 모기조차 죽이지 않으려 했고, 가능한 한 생명을 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그에게 인간이 같은 인간을 해치는 행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종종 ‘존엄’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지만, 정작 그 말의 무게를 삶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생명은 결코 수단이 될 수 없으며, 도구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생명의 존엄함을 진심으로 깨달아야 하며, 생명을 가꾸고 존중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지와 무감각함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생명 앞에서 순수해지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인간성의 출발점이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 육체의 가치를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은 비누 7장 분량의 지방, 중간 크기 못 하나를 만들 철, 찻잔 7잔을 채울 당분, 성냥 2,200개 분량의 인, 그 외 마그네슘·칼륨·유황 등으로 구성된 존재에 불과하다.” 육체의 물질적 가치는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인간이 특별한 이유는 정신적 가치와 생명의 고귀함 때문이다. 어떤 가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지가 곧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다. 따라서 타인의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의 삶은 어떠한 성과나 지위로도 존중받을 수 없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향해 건네는 존중, 그것이야말로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 진정한 윤리는 법률이 아닌 양심에서 비롯되며, 그 양심은 타인을 존귀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이러한 감수성을 상실한다면, 과학도 문명도 그 자체로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도 존중받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오늘의 권력과 우월감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진실을 겸허히 되새겨야 한다. 존중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를 향한 깊은 윤리적 태도이자, 더 나은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 원칙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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