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과 국민들을 속이려는 정치인들에게나 해당되는 일

공석진 시인
공석진 시인

【고양·파주 = 서울뉴스통신】 최재순 기자 = 위선과 진실의 기준은 무얼까? 위선의 사전적 의미는 본심(本心)에서가 아니라 겉으로만 착한 척하거나 또는 거짓으로 현혹시키는 일이다. 위선에 관한 필자의 생각은 위선의 옳고 그름의 진위를 먼저 판단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 기준은 동기와 목적이 중요한 잣대다.

위선을 생각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아마도 정치인들이 아닐까 싶다. 정치인들의 언행은 자신의 영달과 이익에 가장 중요한 동기를 스스로 부여한다. 진심으로 애국심으로 무장하고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 있을지 진심으로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일 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이 한 줄도 쓰지 않은 책을 버젓이 자신의 이름으로 내놓는 일을 보통 국민들은 상상이나 할까? 실제로 필자에게도 모 정치인으로부터 필자의 시 수십 편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서 시집을 내면 안되겠냐는 황당한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었고, 정치 자금을 모금하거나 자신의 지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필자에게 책 한 권의 대필을 부탁한 정치인도 있었다. 이러니 그러한 상상은 공연한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최근 한 단체의 포럼 중 '위선과 진실'이라는 주제로 필자의 문학관에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참석자 가운데 나이가 여든을 넘긴 분이 있었다. 그 분은 예술품 판매상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진위를 확인하려는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평상시에도 누구든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을 하려는 의도를 갖고 불쾌할 정도로 사람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곤 했었다. "문학관에 와서 작품들을 쭉 훑어 봤는데요" 그러면서 앞서 말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듯 탁자에 놓여져 있는 방향제에 꽂혀 있던 장미꽃을 가리켰다. "이 꽃은 조화인데 이것이야 말로 위선입니다"

나는 순간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장미꽃으로 상징하며 필자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분명하여 모멸감마저 느꼈다. 그리고 이어지며 "내가 속한 단체에 문학 박사를 초대해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인인 필자의 면전에서 상대의 마음은 상관없이 툭툭 던졌던 그의 말들은 나의 인내심에 한계를 넘어서고 말았다. "그래서 그 사람은 지금 하고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요?" 중고생 입시학원 선생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는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습성대로 그대로 갚아 주듯 한참을 쳐다보았다.

위선이란 사람 인(人)자와 할 위(爲)자로 구성되어 있다. 위(爲)는 코끼리를 조련하는 모양으로 '무조건 하도록 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야생에 살던 코끼리를 인간이 길들여 인간의 야욕을 위해 길들인다는 것은 분명 인간의 욕망 충족과 이익 창출이라는 악한 목적이 분명하다.

'제주 남원 한 식당 / 화가가 그렸다 해도 믿을 풍경화를 보았다 / [코끼리가 그린 그림, 치앙마이] / 식사를 하는 내내 마음이 쓰였다 / 식당을 빠져 나오며 물었다/ "코끼리가 그린 그림이 맞나요?" / "맞아요" 확신하며 말했다 / "그림 아래에 [동물 학대를 고발합니다] 글을 붙이시면 도움 되실 거에요" / "왜요? 그림 팔아 동물 복지 기금으로 사용된답니다" / 이런 억지가 있을까 / 동물을 학대하면서 동물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다니 / 덮어놓고 맹신하는 사람들로 논리는 죽었다'. 필자가 몇 년 전 제주도 남원의 한 식당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시로 지은 "억지(코끼리가 그린 그림)'이다.

가발은 분명히 가짜다. 하지만 신체의 부족한 부분을 가려 주기 위해 탄생한 보조품일 뿐이다. 또한 여성들이 하는 화장은 민얼굴을 가리지만 미모를 가꾸고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평생의 로망이다. 오죽하면 '여자는 빗과 거울만 있으면 평생을 감옥에서도 살 수 있다'고 했을까? 이건 분명 여성들만이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자기애를 뜻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인간 누구든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 속성인 것이다.

이처럼 가발이나 화장이 앞에서 위선이라고 단정적으로 비난한 조화인 장미와의 공통점은 인간에게 이롭게하는 목적이 같다는 점이다. 위선은 가짜 저서를 발간해서 독자들과 국민들을 속이려는 정치인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자리에 앉아서 대충 훑어보고 자신의 직감을 확신하듯 궤변을 쏟아낸 그의 빗나간 통찰에 필자는 간단한 시 한 줄로 일갈하고자 한다. '망자의 턱뼈처럼 어긋난 교합인 줄도 모르고'. 필자의 시 '슬픈 통찰'의 싯귀이다.

'그러므로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성경 베드로전서에 있는 구절이다. 직업적으로 축적된 노련한 판단력의 과잉으로 위선과 진실을 잘못 해석한 그의 발언을 깨달음으로 삼고, 타인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잣대를 휘두르지 않도록 가슴에 새기고자 하는 타산지석의 필자의 다짐이다.

 

시인 공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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