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가며 기승을 부리면서 날씨가 무척이나 변덕스러웠다. 7월을 지나 8월에 들어서도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후덥지근한 것은 여전하고 꿉꿉한 것은 덤이다. 그래도 새벽에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쐴 때면 제법 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어쨌든 절기로 보면 얼마 전에 입추가 지났으니 저 멀리서 가을이 느릿느릿 다가오나 보다.
2025년 수원의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고 찬란하게 빛났다. 지난 7월 23일 수원 선경도서관 강당에서 수원문학의 60년 역사를 회고하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되었다. 사실 필자는 중요한 장기 공무 출장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해서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후 신문기사와 여러 자료 등을 틈틈이 읽어보면서 여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60년의 역사. 사람의 나이를 대입해 보면 회갑에 해당한다. 요즘에는 의학과 보건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기대수명이 늘어남으로써, 예전에 비해서 그 의미가 희석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도 회갑에 내포되어 있는 일정한 의미는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시해 주기에 다시금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무탈하게 오랜 기간 살아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 주기를 완성하고 새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후자의 경우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문학에서의 건강과 동력은 무엇일까. 과거의 문학사를 상기해 보면,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뜻을 함께하여 모임을 결성하고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문집을 제작했다. 그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사례도 있었지만, 문인들 간의 남다른 협동과 유대감을 통해 뿌리를 탄탄하게 다져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학에서의 건강과 동력은 문인들 간의 협동과 유대감 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지난 『수원문학』 여름호에 수록된 작품을 찬찬히 읽으면서, 수원을 소재로 삼아 애향심이 가득 담겨 있는 작품 몇 편에 눈길이 갔다.
새빛
이재준
도시는 아침마다 새로 태어난다.
낡은 길이 열리고,
골목마다 희망의 씨앗이 심어진다.
오래된 지붕엔 새빛이 내려앉고,
거리의 그림자도 따뜻해진다.
바람엔 시민들의 웃음이 섞여 있다.
손바닥만 한 정원에서 꿈이 자라고,
창 너머 아이 눈엔 햇살이 머문다.
담벼락에 기댄 마음은 사람을 향한다.
낡은 집에 새빛을 더해, 다시 살아나는 일상.
골목 가게엔 다시 불이 켜지고,
기업에선 사람이 모이고, 삶이 돌아간다
청년의 마음엔 집이 생기고,
먼저 손을 내밀고 서로의 마음을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운다.
이 모든 변화의 이름, 새빛.
도시는 새로워지고,
우리는 오늘도 빛나는 하루를 산다.
수원시를 대표하는 캐치프레이즈는 ‘수원을 새롭게! 시민을 빛나게!’이다. 통상적으로 이를 줄여서 ‘새빛’이라고 말한다. 이재준 시장님은 단순히 말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말을 아름답게 조탁하여 그 의미를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위에 인용되어 있는 <새빛>으로, 이 작품을 통어하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새롭게’와 ‘빛나게’이다.
‘새롭게’와 ‘빛나게’에 대응되는 표현으로는 ‘옛 것’과 ‘어두움’ 같은 단어를 떠올려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재준 시장님은 이 작품에서 서로 간의 다름이나 갈등을 말하기보다는 서로를 보듬고 희망을 노래하는 화합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서, 옛 것을 허물고 없앰으로써 새로움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의 이동과 인식의 변화를 통해 기존에 있던 것이 새롭게 빛날 수 있음을 노래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낡은 길이 열리고”, “골목마다 희망의 씨앗이 심어”지고, “오래된 지붕엔 새빛이 내려앉고”, “거리의 그림자도 따뜻해”지는 등의 표현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공동체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바로 새로움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는 수원의 구성원들에게로 전이된다. “시민”, “아이”, “청년”, “우리”는 각자의 거주지, 골목길, 정원, 기업 등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빛나는 삶을 살아간다.
수원시의 캐치 프레이즈를 시적 언어로 승화시킨 이재준 시장님의 <새빛>에 반영된 애향심은 수원시의 가슴 속에서 나날이 새롭게 빛날 것이다.
수원역 검은등뻐꾸기
이중삼
수원역 대합실에서...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귀벌레소리일까
사람들이 자작나무들처럼 보였고 여기는 자작나무 숲속 같았다
내가 검은등뻐꾸기는 아닐까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원대리 숲으로 들어가자
자작나무들이 사방에서 모여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방인들의 집합소 풍경인
그곳까지 흘러간 나는 검은등뻐꾸기처럼 구슬프게 쏘다녔다
그럴 리 없겠지만
이곳에 원대리 사는 검은등뻐꾸기가 나타난 것이라면
누구를 찾는 중일까
아무도 모르게 자작나무 숲에 마음을 탁란한 나를 수소문하여
검은등뻐꾸기가 내 가슴에 알 낳으려고 온 것일까
자메뷰와 데자뷰가 오버랩되는
수원역 대합실에서...
수원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을 꼽아본다면, 아마 수원역이 가장 높은 순위에 있지 않을까 싶다.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수원시민은 물론이고, 수원을 방문하는 타 지역 사람들까지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 곳이 수원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대중교통이 올 때까지 잠시나마 숨을 고르는 쉼터가 되어주는 곳이 바로 수원역 대합실이다.
이렇듯 수원역 대합실은 만남의 장소이다. 수원역 대합실에서는 기차와 지하철 등의 시간을 알려주는 안내 방송이 계속해서 송출되고, 매표소 직원이 표를 판매하는 마이크 소리도 종종 들리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대화 소리 등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시끌벅적하다고 할 수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활력이 넘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중삼 시인님이 <수원역 검은등뻐꾸기>에서 그려내고 있는 수원역 대합실에서의 ‘만남’은 사뭇 다르다. 시인이 마주하고 있는 수원역 대합실은 고요하고 고적하다. 그 이유는 현대의 문명과 문화가 가득하고 번화한 역사(驛舍)를 자작나무 숲속인 자연으로 치환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를 통해 수원역 대합실이 갖고 있는 고정된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자신만의 시각으로 공간을 재해석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이 작품에서 독자의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이 시의 중짐 제재는 ‘구슬프게 쏘다니는 검은등뻐꾸기’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새의 생김새나 울음소리 등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직 시인의 내면에서 유동하는 감정의 흐름만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만으로도 독자의 눈에는 자작나무 숲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귀에는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중삼 시인님의 <수원역 검은등뻐꾸기>는 기존의 수원역 대합실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답습하는 것에서 벗어났다. 즉, 자신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그리고 자연물에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나’만의 공간으로 창출하는 섬세한 관찰력이 신선하다.
수원
주윤주
인문학 중심의 문인들이 있다
향필의 세상 대한의 사랑은 수원
백십구만 수원은 원대 하리라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지정
정조대왕 옹호하는 열 손가락안에
귀감되는 으뜸 수원이라네
창공 아래 푸르른 땅아
멋진 문인들 손 끝에 감아쥔 힘
제각각 생각 주머니에서 열정으로 일군
명품 문인 향한 용솟음 더해가네
정열의 깃발 꽂힌 우뚝 솟은 서장대
똘똘 뭉친 웅장한 문학 도시
위대한 수원성에 누구든 고개 숙여
문학 전파하려 발로 뛰는 날들
글로벌 세계로 도전장 던져
판소리 한 대목에 효심 또한 높여
예 갖춘 바른 통일로 하나 된 인문학
수원의 자랑이라네
전국에는 수많은 도시들이 있다. 우리가 도시 이름을 떠올렸을 때, 그 도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콘텐츠가 직관적으로 연상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어떤 도시들은 과학, 항만, 물류, 쌀, 바이오 등을 지역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삼고 있다. 수원의 경우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을 비롯해서 정조대왕이 남긴 수많은 유·무형의 유산이 수원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6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수원문인협회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윤주 시인님은 <수원>에서 수원을 인문 도시 혹은 문학 도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수원의 인문학적 특성을 선보이거나 강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똘똘뭉친 웅장한 문학도시”, “문학 전파하려 발로 뛰는 날들”, “하나 된 인문학”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문학 공동체가 있었기에 “향필의 세상”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함께하는 문인들이 있었기에 문학 도시 수원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윤주 시인님의 <수원>은 수원의 브랜드를 적실하게 짚어내고, 근본적인 원동력까지 고찰했다는 점에서 시적 착상이 돋보인다.
이번 여름호에서 눈길이 갔던 작품은 이재준 시장님의 <새빛>, 이중삼 시인님의 <수원역 검은등뻐꾸기>, 주윤주 시인님의 <수원>이었다. 이 작품들을 살펴봄으로써 수원의 아름다움과 수원문인협회의 유구한 역사를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수원문학 여름호를 읽은 후에 작품을 선정하고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이에 대한 다소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 글에서 다룬 작품은 세 편이었지만, 곧 간행될 가을호에서는 더 많은 작가님들의 작품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만 줄인다.
약력
수원문협 회원 (2025 여름호- 평론 부문 신인상)
연세대학교 문학박사(고전시가 전공)
현)육군사관학교 국어*철학과 조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