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7억 배분돼도 창작지원은 130억”…복권기금 목적 확장 요구
영국 ACE 사례처럼 복권기금 창작지원 가능해야…일반회계 5,000억 증액도 촉구
“이재명 정부, 이제는 문화예술정책을 주목해야 할 때”

【서울 = 서울뉴스통신】 최정인 기자 = 국가 문화예산이 사상 최대 규모에 이르렀지만 정작 기초예술 창작 현장은 여전히 ‘130억 원’이라는 부족한 지원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기초예술 재정개혁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한국연극 건강검진 2’ 난장토론회가 지난 19일 서울 연극창작센터에서 개최됐다. 이번 포럼은 ‘이재명 정부, 이제는 문화예술정책을 주목하라’는 주제로 연극계의 주요 현안과 정부 정책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행사는 대학로더하기포럼이 주최하고 한국연극협회, 서울연극협회, 한국극작가협회, 한국소극장협회, 한국여성연극협회, 공연예술인노동조합 등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현장에는 연극인과 창작자, 정책 관계자들이 참석해 기초예술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공유하며 열띤 논의를 이어갔다.
사회는 배우 공재민이 맡았으며 △손정우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박정의 서울연극협회 회장 △이종승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위원장 △이훈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문위원 △김도형 서울연극지부협의체 의장 △박장렬 포항시립극단 예술감독 등 6인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한국연극협회 손정우 이사장은 대학로 포럼에서 복권기금 사용 목적 확대와 일반회계 증액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문화예술 분야 예산 중 실질적인 창작 지원에 쓰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문예진흥기금은 연극·무용·음악·전통예술 등 전체 공연예술 분야를 합쳐 약 130억 원에 불과하다. 반면 복권기금·체육기금을 포함해 문예위에 배분되는 기금 규모는 총 3,677억 원에 달하지만, 현행 법체계에서는 이 재원을 ‘공익 목적 사업’으로만 제한하여 순수 창작지원에 투입하기 어렵다.
손 이사장은 “복권기금의 사용 목적을 공익사업에서 순수 창작 지원까지 확장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영국 Arts Council England(ACE)의 사례를 근거로 제시했다. 영국은 문화예술 분야 복권기금 배분액을 지속적으로 늘려 2023–2024 회계연도 기준 약 5,207억 원 규모까지 확대했으며, 이를 정부 예산(Grant-in-Aid)과 함께 기초예술 창작의 안정적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다.

법 개정이 단기간에 어렵다면 일반회계에서의 대폭 증액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손 이사장은 현행 일반회계 300억 원 지원 규모로는 기초예술 생태계 붕괴를 막을 수 없다며 “연극 등 기초예술 창작자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 5,000억 원 수준의 일반회계 증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 역시 현장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국회가 결단하면 충분히 추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문예기금은 현재 적립금 고갈 위기까지 겹쳐 이중의 재정난에 직면해 있다. 문체부 국정감사에서도 2026년 문예기금 고갈이 공식 언급된 바 있으며, 최근 20년간 안정적 수입원 확보 없이 적립금을 잠식해 온 구조적 한계가 원인으로 지적됐다. 특히 기금 수입의 81.7%가 복권기금·체육기금·일반회계 등 정부 내부 수입에 의존하는 불안정한 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안정적 재원 마련을 위한 제도적 개혁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초예술계는 산업·수출 중심 정책이 강화될수록 창작 생태계의 토대가 더욱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K-컬처 성장은 수십 년간 기초예술 창작자들의 실험과 축적에서 비롯되었음에도, 산업 지원에 비해 기초예술 예산은 극도로 축소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는 “창작의 모세혈관이 끊기면 장기적 문화경쟁력이 무너질 수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협력해 법적·재정적 장치를 즉각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복권기금 목적 확장, 체육기금·복권기금의 법정 전입화, 일반회계 증액 등 다양한 방안이 종합적으로 추진되어야만 기초예술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기초예술 창작지원금 130억 원이라는 ‘극단적 왜소화’가 지속될 경우, 향후 K-컬처의 혁신 동력마저 상실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포럼 후반부 자유토론에서는 불공정한 지원 시스템 개선, 산업 중심 정책 기조의 전면 재검토, 창작자 기본소득 논의, 문예기금의 안정적 수입원 마련, 지역·소규모 창작 생태계 지원 확대 등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개진된 가운데 “불공정한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기초예술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 요구로 이어졌다.
연극인들은 기초예술을 지탱하는 예산이 지금처럼 방치될 경우 문화 생태계 전체의 붕괴가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더 이상 문제를 미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포럼은 대학로더하기포럼이 2023년 출범 이후 진행해온 ‘대학로 건강검진’ 시리즈의 일환으로, 예술현장과 정책 사이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공연예술 환경을 만들기 위한 연속 논의의 장이다.
이번 논의들이 향후 국회와 정부의 정책 전환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